텍사스, 계약 철회 않고 세 차례나 수정안 보내 ‘상처’…“그래도 A안은 메이저리그 잔류”
2월 16일, 투수와 포수조가 먼저 시작한 텍사스 레인저스 스프링캠프 첫날, 가장 큰 화제는 오승환이었다. 텍사스와 계약했다고 알려진 오승환이 캠프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텍사스 전담 기자들과 한국 취재진들도 그의 행방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텍사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베테랑 투수 영입과 관련해 발표할 내용이 없다”고 밝히며 의문은 의혹으로 번졌다. 그날 현장에는 한국 취재진 3명과 5명 정도의 텍사스 전담 기자들이 함께했다. MLB.com의 T.R.설리번 기자가 대니얼스 단장에게 “이곳에 한국 기자들도 있으니 다시 한 번 묻겠다. 우리가 말하는 베테랑 투수는 ‘오(승환)’인데 당신이 말하는 선수도 같은 인물이냐”라고 물었고 대니얼스 단장은 “맞다”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존 대니얼스 단장의 답변 뉘앙스는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메디컬 테스트 결과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18일, MLB닷컴과 댈러스모닝뉴스 등 현지 매체들은 ‘텍사스와 오승환의 계약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댈러스모닝뉴스에서는 오승환의 계약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에서 팔에 당혹스러운 문제가 나타났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누구나 예상했던 문제이지만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승환의 에이전트인 스포츠인텔리전트 김동욱 대표가 나섰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취재 중인 몇몇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19일 기자를 포함해 2명의 한국 기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먼저 텍사스 구단에서 공식 발표를 안 하고 있지만(텍사스 구단은 오승환 관련해서 존 대니얼스 단장의 ‘발표할 게 없다’는 말 외엔 공식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텍사스 구단의 계약 수정안을 선수 측에서 최종적으로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오승환의 MRI에서 팔꿈치 염증이 발견됐다. 그러나 그 염증은 2014년 한신 타이거즈 입단할 때도 있었고, 201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 때도 발견된 부분이다. 즉 선수도 알고 있는 부분이고, 지금까지 투구하면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상황이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도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의 부상을 안고 있다. 그게 야구하는 데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곧장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이라면 선수도, 구단도 계약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오승환의 염증 부위는 그런 수준에서 거론될 문제도 아니다.”
오승환의 팔꿈치 염증은 한신 타이거즈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했을 때도 발견된 문제였다고 한다. 두 팀은 그 염증에 대해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텍사스에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구단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즉시 계약 철회를 하지 않고 우리한테 세 차례나 수정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그 부분을 선수는 굉장히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깔끔하게 없던 일로 하면 되는 것을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수정안을 보내 상처를 입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김 대표는 텍사스 구단의 계약 수정안이 선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선수의 의료 정보가 현지 기자들을 통해 알려진 부분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텍사스 구단은 오승환 측에 어떤 내용의 계약 수정안을 보낸 것일까. 세 차례라고는 하지만 처음 수정했던 내용에서 큰 변화를 주진 않았다고 한다. 텍사스 구단은 보장 금액을 대폭 낮추고 그 나머지를 대부분 옵션으로 돌렸다. 김 대표는 “오승환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라면 문제 삼지 않고 계약을 이행하겠지만 36세의 나이에 위험 부담을 안고 계약을 맺긴 어렵다”면서 “선수가 팔꿈치 염증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면 그 수정안이라도 받아들여 계약을 마무리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 물론 미국 언론에도 오승환의 팔꿈치 염증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를 본 건 선수 측이다. 향후 다른 팀과 계약을 진행할 때 분명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의 한 대학 야구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는 오승환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은 복수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오승환의 불펜피칭을 지켜보기 위해 훈련장을 방문했다. 오승환은 모두 30개의 불펜 투구를 소화하며 자신의 건강함을 입증했다.
오승환은 모든 훈련을 마친 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뒀던 속 얘기를 끄집어냈다.
“(메이저리그 계약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 예상 못했다. 계약을 하기로 약속하고 (입단 직전에) 어긋난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적지 않은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 오승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됐음에도 대학 야구장을 빌려 훈련하는 상황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듯했다. 오승환은 “한신 타이거즈 때부터 지금까지 해외에서 야구하며 팔이 아파 공을 던지지 못했던 적이 없었다”면서 “몇 년간 부상 없이 뛰었던 선수들도 MRI상에선 가벼운 염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마운드에서 건강한 모습을 증명해내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승환은 “한순간에 팀을 잃은 미아가 됐다”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분명 마음고생이 심하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몸 만드는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오승환의 훈련 일정은 스프링캠프 때 투수들이 소화하는 프로그램과 비슷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에라도 팀이 결정되면 합류하자마자 훈련이나 시범경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몸을 만들고 준비해야 시즌을 맞이하는 데 차질이 없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이미 7차례나 불펜 피칭을 소화한 그한테 팔꿈치 염증의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이날 불펜 피칭을 지켜본 한 스카우트는 기자에게 “오승환이 최근 MRI 검사에서 나타난 팔꿈치 염증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무산됐다고 들었는데 오늘 불펜 피칭에서는 그런 문제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오승환이 마운드에서 건강하고 효율적인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며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승환과 오승환의 에이전트는 기자들에게 KBO리그로의 복귀를 언급하기도 했다. 오승환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고 말했고, 에이전트 김동욱 대표는 “오승환이 많이 지쳐 있다. 한국 복귀도 생각 중”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오승환이 KBO리그에서 뛰려면 무조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오승환으로선 일단 기다려야만 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비롯해 서너 팀에서 오승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경기 들어가 불펜 투수 중 부상자라도 발생한다면 당연히 오승환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로선 현재 어떤 입장도 나타내기 어렵다. 선수 측에서 정식으로 입단을 염두에 둔 협상을 제안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오승환이 시범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라도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마운드에서 건강함을 증명한다면 텍사스 레인저스가 오판했다는 걸 제대로 알릴 수 있게 된다. 그도 아니면 삼성으로 복귀해 72경기 출장 정지를 받는 동안(해외 원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람에 KBO로부터 정규 시즌 경기 수의 50%에 출전할 수 없다) 몸을 회복해서 후반기부터 마운드에 오르면 된다. 인내와 기다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승환이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텍사스 전담 기자들이 한글 번역기 돌린 사연 “도대체 뭐가 문제야!” 텍사스 레인저스 스프링캠프에는 대여섯 명의 텍사스 전담 현지 기자들이 상주한다. 그중 오승환이 MRI상에서 팔꿈치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쓴 ‘댈러스 모닝뉴스’의 에반 그랜트 기자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기사를 쓴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실 우린 오승환의 팔꿈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한 내용은 잘 몰랐다. 한국 미디어들이 쓴 글을 보고 팔꿈치에 염증이 있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오승환의 에이전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난 그런 내용의 한국 기사를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이해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내게 오승환 몸 상태와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전까지는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았나. 구단은 이후 2주가량 단 한 번도 오승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자 입장에선 당연히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거길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단이 발표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난 그 부분이 팔꿈치인지, 어깨인지, 아니면 지난 시즌에 있었던 햄스트링 부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에반 그랜트 기자에게 다시 물었다. 오승환이 한신 타이거즈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 때도 팔꿈치 염증이 발견됐지만 전혀 무리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갔는데 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는 그 부분을 문제 삼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텍사스는 원래 메디컬 테스트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다. 그래서 오승환 측에 계약금을 좀 더 낮춰서 협상하려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텍사스가 오승환을 데려오지 못한 이유를 추측해 본다면 한신이나 세인트루이스에서 받았던 메디컬 테스트의 결과보다 지금 나타난 팔꿈치 염증에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팀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텍사스가 오승환의 팔꿈치 염증을 너무 염려했던 것일 수도 있다.” 에반 그랜트 기자에게 오승환이 정상적으로 불펜 피칭을 소화했던 부분도 귀띔했다. 그는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오승환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