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줄고 면허 가격 폭락, 처지 비관 자살 잇따라…거품 붕괴, 변화 필요 지적도
뉴욕의 명물 택시인 ‘옐로캡’. ‘우버’ ‘리프트’ 등 신생기업들의 택시시장 진입으로 기존 ‘옐로캡’ 운전사들이 빚더미에 앉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탕!’
지난 2월 5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뉴욕시청 인근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검정색 리무진 안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차량 안에 있던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더글러스 시프터(61). 직업은 리무진 택시 운전사였다.
지난 44년 동안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그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우울증 때문도, 정신질환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경제적인 궁핍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살하기 두어 시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장문의 글을 남긴 그는 “지난 14년 동안 나는 계속해서 거의 매주 100~120시간씩 일을 했다. 1981년 택시 운전을 시작했을 때는 평균 40~50시간씩 일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못버티겠다”고 말하면서 “나는 노예가 아니다. 그리고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며 비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임대차산업 전문지인 ‘블랙카 뉴스’를 운영하고 있는 시프터의 친구인 닐 와이스는 “시프터는 공과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신용카드의 한도는 이미 초과되어 있었고, 집은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건강보험도 해지된 상태였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과의 인터뷰에서 시프터의 동생인 조지 역시 형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설명했다. 세들어 살던 원룸의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했던 시프터는 결국 택시 안에서 잠을 자야 했으며, 샤워를 해야 할 때면 저렴한 가격을 내고 체육관의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다. 조지는 “형은 거의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했지만 점점 운전을 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 힘들어했다”고도 말했다. 한번은 “벌써 세 시간째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말도 안 된다”라며 동생에게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더글러스 시프터는 뉴욕 시청 앞에 회사의 검정색 리무진 차량을 세워두고 그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프터가 이렇게 정부와 공유기업을 상대로 불만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블랙카 뉴스’에 칼럼을 기고했던 그는 지속적으로 비슷한 주장을 해왔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을 비롯해 현 시장인 빌 드 블라시오 등 정치인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던 그는 “정치인들이 택시산업을 체계적으로 망쳤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는 택시 운전사들에게 저임금 및 높은 벌금 정책으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이건 악몽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신생기업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주는 형식으로 지원을 해왔기 때문에 결국 뉴욕택시조합 전체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고도 말했다.
시프터가 친구인 와이스에게 “부디 내 죽음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우버’나 ‘리프트’ 등의 운영 방식의 부당함과 택시 운전사들의 고충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다. 자살 시간을 러시아워가 막 시작된 이른 아침으로 선택한 것도, 또한 시청 앞을 자살 장소로 선택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뉴욕택시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바이라비 데사이는 시프터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페이스북의 글에서 가장 슬픈 것은 모든 내용이 다 사실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21년간 노동운동을 해왔던 데사이는 지금처럼 절망적인 때는 여태껏 없었다고 말했다. 파산, 압류, 퇴거 명령 등의 절박한 상태에 놓인 택시 운전사들이 당장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우울증에 걸릴 위험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그는 “내 마음의 절반은 짓눌려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금까지 자살을 한 택시 운전사는 시프터뿐만이 아니다. 3월 초에는 30년 동안 뉴욕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했던 니카노르 오치소르라는 남성이 차고에서 목을 매달아 숨졌는가 하면, 5월 말에는 이스트강에서 유 메인 차우라는 남성의 시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말에는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서 압둘 살레라는 이름의 남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택시 운전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아 목숨을 끊은 경우였다. 수입이 줄어든 데다 택시영업면허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될 처지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자 데사이는 “처음에는 그저 한 개인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프터의 죽음이 우리 모두를 각성케 했다”고 말했다.
뉴욕 택시노동조합 회장인 바이라비 데사이는 동료들의 죽음이 개인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택시 산업의 황금기를 회상하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이런 위기감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실제 뉴욕에서 택시는 한때 일종의 신화처럼 여겨졌었다. 가령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유명한 첫 장면은 오드리 헵번이 택시에서 내리는 것으로 시작하며,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역할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또한 인기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길가에 서서 손을 번쩍 들고 ‘택시~!’를 외치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상징적인 이미지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뉴욕에서는 일종의 ‘골든룰’이 하나 있었다. ‘택시 면허를 취득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따라서 꿈의 도시 뉴욕에서 택시 운전은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업이 됐고, 작지만 행복을 보장해주는 확실한 약속으로 여겨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런 붐을 타고 지난 수십년 동안 뉴욕의 택시는 1만 2000~1만 3000대에 달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택시조합원 사무실 안에서는 이런 황금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다. 조합원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하고, 모두들 지친 듯 맥이 빠져있다. 이런 절망감은 택시를 대체하는 다양한 교통 수단이 대거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대표적인 예가 ‘우버’ ‘리프트’ 그리고 가장 최근 등장한 ‘비아’ 등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이런 신생 기업들이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택시산업의 구조는 빠르게 변해갔다. 2013년 뉴욕에서 운행되고 있던 임대 차량의 수는 4만 7000대였지만, 지금은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10만 대가 넘고 있다. 이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우버’에 등록된 차량들이다. 그 결과 잔인한 배급 전쟁이 시작됐다고 데사이는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이 전쟁이 택시 운전사들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처음 등장한 ‘우버’의 서비스 원리는 간단했다. 어플을 다운받기만 하면 누구나 비싼 택시영업면허 없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으로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택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고, 택시가 필요한 사람들 역시 언제 어디서든 직접 택시를 호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냥 저렴한 것이 아니라, 택시 요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저렴했다.
‘우버’의 가장 큰 경쟁력은 택시 요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급기야 2017년에는 우버 승객 수가 택시 승객 수를 앞질렀다.
사정이 이러니 시장원리에 따라 고객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2013부터 2016년 사이에 뉴욕의 풀타임 택시 운전사들의 연간 총 예약액은 요금이 가장 높은 낮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8만 8000달러(약 9800만 원)에서 6만 9000달러(약 7700만 원)로 하락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우버 승객 수가 택시 승객 수를 앞지르기도 했었다.
이와 관련, 택시조합 측은 ‘우버’와 ‘리프트’ 등이 택시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운행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정부로부터 받는 특별 혜택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택시회사들은 엄격한 안전규정 및 장비규정을 적용받는 반면, ‘우버’는 이를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버’에 등록된 기사들은 범죄 이력이나 건강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영업이 가능하며, 이렇다 할 최대 운행시간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운행 차량의 수에 대한 규제도 없다. 이밖에 택시 운전사들은 택시 운전이 전업이지만, ‘우버’ 기사들은 대부분 부업으로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택시조합원들에게는 불만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버’의 습격으로 인해 택시면허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2013년 130만 달러(약 14억 5000만 원)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택시면허 가격은 그후 계속 하락을 거듭했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13만 달러(약 1억 5000만 원)까지 뚝 떨어지고 말았다.
뉴욕의 택시면허는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고 파는 형식으로 매매가 이뤄진다. 따라서 ‘우버’와 같은 경쟁업체가 등장하자 택시면허의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택시 면허에 투자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택시 운전사 가운데 소유주가 직접 택시를 운전하는 비율이 20%가 채 안 된다는 점도 문제였다. 나머지는 전부 면허를 임대하는 형식의 개인사업자들이기 때문에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택시면허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나 면허 임대료를 지불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운전사들 역시 결국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한때 든든한 노후 대책으로 각광받던 투자 수단이 하루아침에 종잇장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이에 데사이는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규정이다. 영업용 차량의 수를 제한하고, 통일된 요금제도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사들의 현재 위기를 정치인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반면, 이런 사태를 지켜보는 다른 한편에서는 택시업계의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독점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택시산업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품이 꺼졌다는 의미다.
실제 지금까지 뉴욕의 택시는 서비츠 측면에서 승객들의 불만을 받아 왔다. 비싼 요금 외에도 청결 문제, 안전 문제 등이 그랬다. 때문에 ‘우버’와 같은 새로운 경쟁 상대를 통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화’는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정치인들, 특히 한 도시의 시장 개인이 나서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택시조합원들 스스로라는 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