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전 임직원, 유명 성우 등 토지 우회 투자 정황…“비일비재하지만 제재는 쉽지 않아”
사회 유명 인사들이 타인의 이름으로 충남 아산시 일부 토지를 매입, 그 수익을 나눠가졌다는 정황이 제기됐다. 사진은 한 아파트 단지 모습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최준필 기자.
A 씨는 지난 2016년 2월 부동산업자인 B 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약 1만 5000평 크기의 일부 토지를 2021년 12월까지 임대키로 한 것. A 씨는 이 토지에 대규모 캠핑장, 체육시설 등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현행법에 따라 A 씨는 가장 먼저 이 토지에 설립된 건물의 용도를 야영장시설로 변경하는 ‘건축물 용도변경 허가신청’을 아산시로부터 승인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산시는 이를 불허했다. 이 토지는 이용·개발을 제한하는 ‘계획관리지역’이었거니와 관광지 조성을 위해 시가 추진하고 있는 ‘강당골 가꾸기 사업’ 부지 인근이었기 때문이다. 시는 난개발 등을 우려했다. 이에 A 씨는 2016년 7월 시의 불허가 결정과 관련해 대전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시가 건축물 용도변경 허가신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법원 판결 이후 임대인 B 씨가 A 씨에게 별다른 고지 없이 급작스레 계약을 해지, 토지를 아산시에 매각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이를 두고 “시는 행정소송 패소의 대한 부담이 있던 만큼 토지 매입에 나선 것으로 보였다”며 “B 씨의 경우 이 토지가 토지거래허가제 지역으로 설정되면서 10년 넘게 토지 매각에 애를 먹었다. 때마침 시가 매각대상자로 나타나면서 매각을 속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차 계약 내용상 B 씨가 매각 등 기타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B 씨는 A 씨에게 5000만 원의 합의금을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B 씨는 이에 대한 준수 없이 오히려 A 씨에게 땅을 비우라는 내용의 토지인도와 부동산점유이전금지가처분 소송 등을 제기했다. A 씨는 B 씨가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답변서를 준비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A 씨는 토지의 서류상 명의는 B 씨로 설정됐지만 실질적인 소유권은 제3자에게 있다는 정황을 인지했다. A 씨가 임대한 토지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12년 서로 다른 다섯 명이 해당 토지의 가등기권자로 설정됐다. 이들 다섯 명 중 두 명은 B 씨가 A 씨에게 과거 ‘주주’(투자자)라고 칭했던 인물들이었다.
심지어 B 씨는 최근 A 씨와 통화 중 “내가 그쪽(A 씨)과 합의할 내용이 아니다. 그 땅은 사람들(주주)이 투자한 돈을 갖고 매입한 곳이다. 수익이 발생하면 그 사람들에게도 돌려주기로 했다. 공증서도 다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거다. 헌데 나한테 돈을 빌려줬다가 오랜 기간 동안 이익이 없어 (그 사람들이) 감정이 안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A 씨가 임대한 일부 토지의 등기부등본. 가처분과 가등기권이 설정됐다. 이들 관계자들은 부동산실명법 위반 의혹을 사고 있다.
결국 B 씨는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타인으로부터 투자금을 받고 2005년 자신의 이름으로 이 토지를 매입, 최근 매각에 성공하면서 그 수익을 분배한 의심을 사고 있다. 토지 실소유자들이자 투자자들은 B 씨의 이름으로 부동산 명의신탁을 저지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토지 취득세 등의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B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B 씨는 “전원주택을 설립하기 위해 토지를 매입했다가 공사비용이 많이 들어 곧바로 강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A 씨와 임대차계약을 맺었는데 A 씨가 토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광지를 조성하겠다며 매입의사를 밝힌 아산시에 팔았다”며 “부동산 명의신탁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돈을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A 씨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B 씨와 투자자들을 고발한 상태다.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B 씨 등의 부동산 명의신탁 사례가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자산이 늘어나면 누진과세가 붙다보니 이를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을 하는 사례가 많다. 더군다나 사회 유명인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염려가 크기 때문에 명의신탁이 좋은 재테크 방식”이라며 “일부 대기업이 직원들 명의로 땅을 매입해 논란이 일었던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한 부동산업자는 “일례로 가족명의로 아파트나 땅을 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재는 사실상 쉽지 않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돈을 받은 사람과 지급한 사람 사이의 자금 이동 증거나 증여 여부 등을 확인, 증명해야만 이에 대한 제재가 가능할 텐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부동산업자는 “대부분 문제제기가 들어올 것을 감안해 자금출처와 관련한 자료를 미리 준비해 놓는다”며 “아파트 매입 같은 경우는 관련 부처에서 해당 자료를 보고 은연중에 다 인정하고 넘기는 식”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은 현행법에 따라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자에게 부동산가액의 3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명의신탁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명의수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