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이 계속 우리 편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악인전’ 스틸컷.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영화판에서 ‘마동석’이란 이름 석 자가 갖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주먹은 뜨겁고 마음은 따뜻한 캐릭터. 주로 액션영화에서 그가 등장하면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마동석이 주먹 하나로 평정하는 씬은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이른바 또 다른 MCU)에서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만큼 오는 15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악인전’ 역시 유사한 흐름이 예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마블리가 다 해 주실 거야”란 막연한 기대와 예상이 초장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좀비 이빨 말고는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의 옆구리가 웬 호리호리한 연쇄살인마한테 뚫리기 시작하면서다.
그것도 그냥 마동석 캐릭터가 아닌 경기~충남 지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대형 폭력조직의 두목 장동수(마동석 분)의 옆구리다. 하나의 씬 만으로 “이번 영화에서 마동석은 인간이구나”라는 것과 “저 연쇄살인마는 미친놈이구나”라는 것을 한 번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악인전’ 스틸컷.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악인전’의 특이한 점은 연쇄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의 희생자를 만들기 위해 여성이나 어린 아이 등 약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영화에서 범행의 단적인 예를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으로, 관음적인 시선으로 스크린에 펼쳐졌던 여성의 고통이 없다는 점은 다소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극중 연쇄살인마 K(김성규 분)는 말 그대로 무차별 살인마다. 그가 왜 살인을 하는지, 극중에서는 어떠한 참작할 만한 사유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K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영화는 그래야 할 이유나 생각할 만 한 거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한 ‘악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장동수는 자신을 습격한 간 큰 살인마 K의 뒤를 쫓으며 강력반 형사 정태석(김무열 분)과 손을 맞잡는다. 더 큰 악인을 잡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악(장동수)과 선(정태석)이 공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원태 감독은 7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악인전’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액션 느와르 장르의 기본 공식은 선과 악의 대결인데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선악이 완벽히 구분되지 않고 악이라는 게 항상 존재하는 세계”라며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깃거리를 찾던 중 연쇄 살인사건 등 2005년 당시의 여러 사건들을 종합해 ‘악인전’을 만들게 됐다”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영화 ‘악인전’ 스틸컷.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극중에서 가장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것은 마동석이 맡은 장동수의 캐릭터다. 악인과 손을 잡긴 하지만 정태석은 어디까지나 형사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선역이다. 범행의 동기나 자기만의 개똥철학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연쇄살인마 K는 흔들리지 않는 악역으로의 역할을 마감한다. 무자비한 폭력조직 두목이면서도 조직원은 물론 민간인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흘리고 있는 장동수의 모습이 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동석은 “장동수는 제가 ‘마동석 화(化)’ 시킨 캐릭터 중에 가장 극단까지 갔던, 엣지까지 가는 센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과 상의했던 부분은 정태석과의 케미스트리”라며 “사실은 서로 싫어하는 사이인데 점점 일을 같이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타이밍이 생기는데, 그걸 어느 정도 수위에서, 어느 정도의 톤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디테일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태석과 공조하면서 폭력조직 두목으로서 ‘악인’의 모습과 정태석이나 그의 팀원들에게 물들어 가는 인간적인 모습의 완급 조절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마동석은 김무열과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극중 장동수와 정태석의 첫 1대 1 대전 씬을 찍던 중, 마동석이 김무열의 가죽 재킷을 잡고 집어던지는 과정에서 재킷이 마동석의 손아귀 모양대로 찢어졌다는 것. 재킷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결국 찢어진 부분을 기우고 나서 촬영을 마저 할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였다.
영화 ‘악인전’ 스틸컷. 사진=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이에 대해 김무열은 “(그 때) 정말 무서웠다”고 몸서리를 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 15kg를 증량하고 스크린 앞에 섰다. 김무열은 “(마동석과의 액션씬에 임하는) 제 마음가짐이 표현된 것이 15kg 증량”이라며 “그렇게라도 (마동석으로부터) 제 자신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서 목을 두껍게 만들었다. 최소한 (맞을 때) 턱이라도 안 돌아가게 하려고”라고 우스갯소리를 덧붙이기도 했다.
김성규 역시 마동석과 김무열의 열연에 묻히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동기나 살인의 패턴이 규정되지 않는 무자비한 연쇄살인마 K로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해 낸 김성규는 “장르적으로 굉장히 스피드하게 달려가기 때문에 그에 못지않게 ‘어떤 분위기를 가져야 정태석, 장동수와 같이 균형을 이뤄서 갈 수 있을까’ 라고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그의 범행 동기를 유추할 만한 어떤 명확한 단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기가 가장 어렵고 고민스러웠다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세 명의 배우들이 각자 깊이 고민한 만큼 영화 속 세 캐릭터들은 무서우리만치 완벽하게 스토리에 녹아들고 있다. 그만큼 어느 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감응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성공적으로 캐릭터들을 온전하게 분리해 낸다. 특히 장동수의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마지막의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복불복’이었던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다소 실망했어도, 스크린에서 마동석의 얼굴만 보면 자동적으로 안심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영화가 될 것. 110분, 청소년 관람불가. 5월 15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