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 사는 마을 노인 5명 살해…귀향 후 이웃들과 갈등 속 점점 망상과 분노 키워
체포된 용의자 호미 고세이. 사진=ANN 뉴스
2013년 7월 21일 일본 야마구치현. 14명이 사는 산간마을에 갑자기 두 채의 집이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불탄 자리에서는 70대 남녀 3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다음 날 정오. 같은 마을 80대 남성과 70대 여성도 각각 집에서 살해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5명 모두 둔기로 머리를 여러 차례 가격을 당해 즉사했다”고 한다.
그 무렵 마을에 사는 한 남자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경찰은 이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용의자의 집 유리창에는 다음과 같은 벽보가 붙어 있었다. “불을 붙이고 기뻐하는 촌놈.” 이를 두고 사건 발생 초기, 일본 언론들은 “방화 살인을 암시하는 벽보” “엽기적인 행각”이라며 크게 보도했었다. 하지만 훗날, 이는 ‘범행 예고장’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난다.
사건 발생 6일째. 경찰은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산길에서 속옷 차림과 맨발로 앉아 있는 용의자를 발견하고 신병을 확보했다. 체포된 용의자는 호미 고세이(당시 63세). 그는 살해 및 방화혐의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올해 8월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됐다.
관련 사건을 계속 취재해온 저널리스트 다카하시 유키는 최근 일본 주간지 ‘프라이데이’ 기고문을 통해 마을 노인들로부터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다름 아니라 “호미의 집에 붙어 있던 벽보는, 사실 사건이 발생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부착돼 있던 것”이라고 한다. 즉, 많은 미디어가 오해하고 있었지만 벽보는 ‘범행 예고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 마을에서는 “또 다른 화재사고가 났었고 그날 이후 호미의 집에 벽보가 계속 붙어 있었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증언에 의하면 “당시 불을 지른 사람은 호미에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호미는 “벽보에 적은 ‘불을 붙이고 기뻐하는 촌놈’은 나를 험담했던 마을사람을 뜻하며, 유리창에 벽보를 붙인 까닭은 단지 그 사람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용의자의 집 유리창에 붙여진 벽보. “불을 지르고 기뻐하는 촌놈”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NHK 뉴스
호미가 대량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건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결과 “호미가 망상장애를 앓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며, 도발행위, 집단괴롭힘을 한다고 믿었다”고 발표했다.
저널리스트 다카하시는 “확실히 취재를 거듭해도 마을 주민들의 도발행위나 집단괴롭힘 등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문만큼은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고 덧붙였다. 그에 의하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호미는 ‘도둑놈의 아들’로 불렸던 것 같다.
호미는 사건의 무대가 된 마을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자리를 구하러 상경, 미장이로 일하다 44세에 부모의 간병 때문에 귀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40대로 비교적 젊은 층에 속했던 호미는 귀향 후 마을부흥 운동을 제안했으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고 만다.
또한 “인근 주민들의 집수리 같은 일을 할 요량으로 ‘심부름센터’를 차렸지만 잘되지 않아 휴업 상태였다”고 한다. 도시에서 돌아온 남자와 고향에서 꾸준히 농사일만 해온 노인들 간에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한 의견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호미는 점점 마을 일에서 배제됐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완전히 고립상태에 빠졌다. 배제와 고독은 남자의 정신을 갉아 먹다 이윽고 잔혹한 사건으로 번지고 말았다.
“소문만 있고, 소문만 있고, 시골에는 오락 따윈 없어. 오직 험담밖에 없어.” 경찰이 산중에서 발견한 휴대용 녹음기에는 호미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 일본 잡지 ‘주간포스트’는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골마을. 게다가 오락이라고 하면 텔레비전 정도인 환경에서 마을 사람들은 온갖 소문이 ‘즐거움’이었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화려한 도시생활을 알지 못하고, 평생 조용히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노인들은 농밀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다만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의 스트레스 탓인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험담을 함으로써 하루하루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것이 일상화됐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살해된 5명의 노인 시신이 발견된 곳. 사진=아사히신문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못 진실인 것처럼 좁은 지역을 휘저었다. 실제로 마을주민인 한 노인은 “소문의 대상이 된 건 호미뿐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누군가에 대해 소문을 지어내고 있었다”는 얘기다. 가령 “저 녀석도 도둑질을 했지”라는 험담부터 “원전에 반대하는 주제에 전기를 많이도 켜놓는다”는 수군거림까지.
노인은 “이것이 마을의 특성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은 현대 인터넷에서의 터무니없는 모함과 욕설, 비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일본 매체들은 ‘야마구치 연쇄방화사건’을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 인간관계를 둘러싼 병리현상과 비교해 보는 시각도 많다.
호미가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이며, 방화까지 한 ‘최악의 범죄자’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주변 이웃들이 노골적인 적대감과 악의를 보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백안시하고, 괴롭힌다는 망상을 더해가며 분노를 키웠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마을에서 고립된다는 것이 남자의 정신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비단 시골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도시에서도 고립상태에 놓인 사람이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구감소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쩌면 ‘고독’을 타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추리소설 ‘팔묘촌’과 닮아 화제 ‘야마구치 노인 살해사건’은 주민 절반 이상이 노인인, 이른바 한계취락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대형 사건으로 인해 인구수는 더욱 줄어들어 이제는 손에 꼽힐 정도다. 이사 간 주민도 있어 현재 마을에는 3가구 6명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사건의 무대가 된 마을은 차 재배를 통해 부흥의 길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편,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이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팔묘촌’과 흡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 ‘헤이세이(일본의 연호·1989년 1월~2019년 4월)의 팔묘촌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참고로 팔묘촌은 광기에 휩쓸려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 살인마(아버지)의 피를 이어받는 ‘나’가 미신과 저주에 대한 믿음이 지배하는 팔묘촌으로 귀향해 연쇄살인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