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조 물고문 등 진술 28년 동안 일관되고 구체적…불법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도 인정돼
이 가운데 이번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7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조항을 보면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 경찰관이 고문, 가혹행위 등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일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됐을 때’ 재심을 열 수 있다. 낙동강변 사건처럼 과거 수사 관계자들의 직무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엔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형사소송법 422조)이 있는데, 이번 심리에선 그 ‘길’의 근거는 공적기관인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부산고법 형사1부는 6차례 심문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심을 열 이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밝힌 근거는 크게 3가지로 △직권남용, 불법체포, 불법감금 △물고문 등 가혹행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이다. 쉽게 말해 과거 수사 경찰이 불법으로 낙동강변 2인조를 체포하고 감금했으며, 물고문 등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데다 수사기록을 조작했다는 점이 인정됐으니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직권남용, 불법체포, 불법감금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 수사 경찰들이 1991년 11월 8일 낙동강변 2인조를 처음 연행할 당시 2인조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행해졌다는 사실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고, 오히려 강제연행된 점이 수사기록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과거 수사경찰은 처음 낙동강변 2인조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로 연행해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살인범행 자백을 받았다고 했지만, 기록에는 처음부터 ‘검거했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당시 수사 경찰은 재심 개시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미란다원칙 고지가 없었고 그게 관행이었다’고 증언했다.
2인조는 경찰에 연행된 이후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사실상 계속 감금돼 있었으며 긴급구속으로 보일 여지도 없다는 점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 경찰들은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관행이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도 앞서의 행위는 구금이고 감금이었다. 수사목적 달성을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 절차의 핵심이었던 물고문 등 가혹행위는 다시 8가지로 사유를 종합해 판단했다. 핵심 내용만 요약하면, 장동익, 최인철 씨의 고문정황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이 첫 번째다. 이들은 검찰로 송치되고 경찰 수사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줄곧 살인사건 혐의를 부인해왔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후에도 각종 탄원서, 당시 수사 경찰을 상대로 한 고소 등을 통해 무려 28년 동안 일관되게 가혹행위 재심사유를 주장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재심청구인들이 진술하는 고문 방법 및 도구, 수사관들의 발언 등만으로도 실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생생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장동익, 최인철 씨의 진술의 신빙성은 수사기록으로도 확인했다. 장동익, 최인철 씨는 현장검증이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직접 현장검증조서 사진을 검토한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장검증조서 53, 54, 55, 56번 사진 등에서는 피해자 대역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고, 장소도 완전히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장동익, 최인철 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재심 사유로 밝힌 현장검증 54번, 56번 사진. 재판부는 피해자 대역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어있고, 장소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진=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 수사기록 발췌
재판부는 낙동강변 2인조가 경찰에 구속되기 50일 전 발생한 다른 고문 사건도 가혹행위가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당시 강도상해 사건으로 구속됐던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그 역시 2인조를 구속한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물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도 물고문 방법과 도구, 수사 경찰관의 발언 등에 대해 진술했다. 재판부는 “매우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재심청구인들의 진술에 버금갈 정도로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A 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출석하고 이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까지 재심청구인, 또는 변호인과 만나거나 진술 내용을 본 적 없는데도 세부적인 사항이 일치한다. 이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가혹행위를 한 경찰들은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피했다. 대부분 당시 수사과정의 적법성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일부 경찰관은 법정에서 자신이 한 구체적인 일은 기억했지만 고문과 가혹행위만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수사관들이 진술을 부인할 뿐 아니라 서로 입을 맞췄다며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일선 경찰서에서 중대사건 용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악습이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다른 관점으로도 고문과 가혹행위를 검증했다. 고문이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 있는지 검증한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행위들을 장동익 최인철 씨가 거짓으로 꾸며내고 검찰에 송치된 이후 28년 동안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주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거나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에 참여한 A 씨와 동료수감자 등에게 허위증언을 종용하고 같은 내용을 진술하게끔 알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당시 수사 경찰관들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해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진술을 할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이를 상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허위 공문서 작성은 당시 수사 검사를 통해 이뤄졌다.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한 검사는 1991년 11월 18일 최인철 씨를 조사하면서 진술거부권을 미리 고지하지 않았음에도 조서에는 마치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것처럼 썼다. 허위공문서작성죄로,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것에 해당한다.
특히 당시 이 과정이 이례적으로 영상녹화로 이뤄졌고 녹취록이 작성됐다. 재판부는 피의자 신문조서 속 실제 신문 내용과 녹취를 비교해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고,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내용은 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가 허위공문서임이 증명된 때에도 해당한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1호의 재심 사유에도 해당한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