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 전면취소에 시즌 개막도 잠정 연기…“개막일 맞춰 몸 만들어야 하는데…” 불안 호소
코로나19 여파로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시범경기 취소와 개막 연기를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KBO는 3월 1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10개 구단 사장단이 모인 긴급 이사회를 열어 오는 28일로 예정됐던 프로야구 개막일 연기 여부를 논의했다. 그 결과 최대 일주일 이상 개막일을 잠정 연기하고 4월 중으로 다시 날짜를 잡기로 의견을 모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사회는 이날 코로나19 사태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전망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출신인 전병율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를 관련 전문가로 초빙했다. 이어 전 교수의 의견을 청취하고 심도 깊게 논의한 끝에 “팬들과 선수단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개막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순위 경쟁이 한창 정점으로 치닫던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를 포함한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가 이미 모두 중단됐다. 온 나라가 코로나19로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야구만 “우리는 개막을 강행하겠다”고 ‘마이 웨이’를 외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사회 일주일 전인 3월 3일 각 구단 단장들이 긴급 실행위원회를 개최해 리그 정상 개최 여부를 논의했다. 7개 구단 단장이 참석하고 불참한 3개 구단 단장은 외국 스프링캠프지에서 화상 통화로 참여했을 정도로 중요한 회의였다.
이 자리에서 향후 추이를 지켜보되 개막 2주일 전까지는 개막 시점을 확정하기로 했다. 정해졌던 28일 개막을 강행하려면 14일까지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잠잠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대부분 야구 관계자들이 “이사회에서도 사회 분위기상 개막일이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상 처음으로 무산된 개막 전 시범경기
코로나19 여파가 야구계를 크게 흔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하순부터다. 종교단체 신천지의 대구지역 대규모 집회 영향으로 확진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코로나19 위기 사태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더 이상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KBO 리그도 이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일단 선수들을 보호하는 게 최우선 과제. 한국에서 출발한 취재진과 구단 관계자들이 미국과 일본 스프링캠프지에 도착하면 무조건 야구장에 들어서기 전에 체온을 점검하도록 했고, 선수와 대면 접촉이나 인터뷰 시 마스크 착용이 필수였다.
동시에 KBO 사무국과 10개 구단도 자연스럽게 2020시즌 시범경기 개최 여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무관중 경기’를 고려했지만, 각기 다른 구단 선수들의 접촉과 각 지역 이동 과정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KBO는 2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지역사회 감염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선수단과 관중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3월 14일 개막 예정이었던 시범경기 전 일정(50경기)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83년부터 시작된 시범경기가 단 한 경기도 열리지 않고 전면 취소된 것은 올해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이다.
시범경기는 일부 주말 경기를 제외하면 무료로 진행한다. 취소해도 각 구단이 입는 금전적인 타격은 크지 않다. 문제는 선수단의 경기 감각이다. 각 구단은 시범경기를 통해 정규시즌 경기 운영 방식을 다각도로 훈련하고, 선수들은 곧 정식으로 맞붙을 다른 팀 경쟁자들의 실력과 전략을 가늠해 볼 기회를 얻는다. KBO 리그에 새로 온 외국인 선수들이나 갓 입단한 신인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처음으로 전 구단이 체크해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전면 취소’보다 ‘무관중 경기’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무섭게 빨라지자 구단과 KBO는 “팬과 선수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며 취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행여 선수 혹은 프런트 한 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으면 정규시즌 개막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시범경기 취소’ 결정에 더 무게를 실었다. 동시에 해외 스프링캠프와 국내 잔류조 훈련을 소화하는 10개 구단 모두 안전 관리와 구장 시설 방역, 열 감지 카메라 설치 등 코로나19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또 여러 구단이 ‘한국보다 안전한’ 해외 스프링캠프 연장 가능성을 서서히 살피기 시작했다.
연기된 개막 일정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선수들은 기약 없는 훈련만 이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캠프 일정 연장과 귀국 항공편 문제로 일대 혼란
잔여 스프링캠프 일정에도 혼란이 생겼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는 당초 캠프 기간을 늘리기로 결정했다가 돌아오는 비행기가 운항되지 않을 위기에 놓이자 부랴부랴 짐을 쌌다.
삼성은 당초 3월 6일 귀국하려다 시범경기가 취소되자 귀국일을 15일까지 늦추기로 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경북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터라 더 그랬다. 홈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와 2군 훈련장인 경산 볼파크 방역에 다른 구단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 이 때문에 오키나와 훈련 시설과 숙소, 항공편 등 캠프 연장을 위한 제반 사안을 빠르게 해결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LG 역시 11일까지 예정됐던 훈련 일정을 일주일 늘리기로 결정한 뒤 함께 오키나와에 남는 삼성과 평가전을 통해 실전 감각 조율을 서로 돕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이 3월 5일 “한국인 입국자는 14일간 대기 조치한다”는 입국 제한 강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자칫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끊길 것을 우려한 LG는 제3국을 통한 우회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여건상 불확실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빠르게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7일 부랴부랴 귀국했다. 기간 연장은커녕 오히려 기존 계획보다 더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류중일 LG 감독은 “캠프를 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예정보다 빠르게 귀국하게 돼 아쉽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삼성 역시 일본 정부의 한국인 입국 규제 강화 조치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 중단이 잇따르자 캠프 연장 계획을 접고 일정을 앞당겨 3월 8일 귀국했다. 심지어 한국과 오키나와를 잇는 직항편이 7일을 끝으로 결항된 탓에 8일 선수단을 둘로 나눈 뒤 각각 후쿠오카와 미야자키를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훈련하던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KT 위즈도 마찬가지다. 캠프 기간 연장을 적극 검토하고 감독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서로 소통하며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팀들의 스케줄로 훈련 장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고, 숙박 연장과 연습경기 일정 확정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향후 한국인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뒤따랐다.
결국 애리조나주 투손에 머물던 SK, NC, KT는 모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지 상황을 고려해 예정대로 캠프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애리조나 주 메사에 머물던 한화는 심지어 기존에 이용했던 라스베이거스-인천 항공 노선 운항이 잠정 중단되면서 당초 예정보다 하루 빠른 10일로 귀국일을 앞당겨야 했다.
그런가 하면 홀로 대만에서 훈련하던 키움 히어로즈는 항공편 문제로 가장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1군과 2군이 모두 대만 가오슝에서 캠프를 진행했는데, 귀국 직전 대만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고 대만발 한국행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하늘길이 막히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 역시 대만에 있던 두산 베어스 2군 선수단과 함께 아시아나항공에 특별 전세기를 요청했고, 우리 정부와 대만 정부가 이를 승인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10일 귀국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머물던 KIA 타이거즈와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훈련하던 롯데 자이언츠만 캠프 일정을 늘리는 데 성공해 각각 3월 16일과 17일 한국에 돌아온다.
#귀국 뒤에도 야구장 안팎에서 조심 또 조심
이전 같으면 귀국 후 각자 집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 뒤 시범경기를 통해 막바지 개막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다. 그러나 올해는 귀국한 뒤 더 난관이 많다. 시범경기를 대체할 팀간 연습경기까지 금지돼 모든 구단이 자체 훈련장에서 청백전으로 실전 감각을 다듬어야 하는 형편이다. 같은 팀 동료들과 약식으로 치르는 청백전은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한 선발투수는 “청백전은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실제 게임 같지 않다. 실제로 시즌 때 상대해야 할 타자들이 아닌 데다 같은 팀이니 타자들의 부상도 생각해야 해 실전처럼 던지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각 구단은 1군 선수단이 훈련할 만한 공간과 합숙할 만한 장소를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집에서 개별적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팀들은 선수들에게 ‘퇴근 후 외출 금지’와 같은 강제적 지침을 내려 선수단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KT처럼 ‘저녁 모임을 자제하라’는 취지로 선수단에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팀도 있다. LG는 아예 1군과 2군이 경기도 이천에서 비공개로 동반 합숙 훈련을 시작했고, SK는 2군 훈련장 인근에 1군 미혼 선수들을 위한 펜션까지 대여해 선수들의 감염 위험 노출을 최소화했다. 일부 선수들은 가족의 활동 반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귀국 후에도 자택 대신 호텔에 머물며 생활하고 있을 정도다.
그라운드와 더그아웃 위생 관리도 철저하다. 귀국한 구단들이 국내에서 ‘3차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각 야구장에선 선수들과 관계자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체온을 잰 뒤 손 세정제를 사용해야 입장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선수들은 실내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선수단을 제외한 외부인의 1루 더그아웃 출입은 전면 금지되고, 취재진 인터뷰도 정해진 장소에서 미리 요청한 선수에 한해 최소 2m 이상 거리를 둔 상태로 이뤄진다.
이뿐만 아니다. 늘 ‘팬 퍼스트’를 마음에 새겨야 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이지만, 당분간은 팬들과 사인이나 사진 촬영 같은 대면 접촉이 전면 금지된다. KBO와 10개 구단이 이미 야구팬들에게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한 덕에 선수들을 보러 각 구장을 찾는 팬들의 수 역시 현저히 줄었다.
#개막일 미정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도 커져
이 같은 현실적 문제 외에도 선수단이 호소하는 또 다른 불안감이 하나 있다. ‘스타트 지점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다. 선수들 대부분은 정규시즌 개막 시점에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훈련 스케줄에 따라 몸을 만든다. 각 팀 주전급 선수들에게는 이를 위해 저마다 오랜 기간 쌓아 온 루틴이 있다. 한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 타자는 “타격은 ‘업 앤 다운’이 있어서 캠프가 끝나갈 때쯤에는 오히려 운동량을 늘려 몸을 힘들게 하고 컨디션을 다운시켜 놓는다”고 했다.
따라서 ‘개막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이들이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할 결승선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캠프지에서 만난 선수들은 “시범경기가 취소된 것보다 시즌 개막일을 알 수 없다는 게 더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많은 시즌을 치러보지 않아 아직 노하우가 부족한 선수들은 더 그렇다. 한 프로 3년 차 내야수는 “원래는 개막일과 시범경기 일정이 딱 정해져 있으니 ‘이때 시작이다’ 하는 마음으로 의욕이 확 치솟는다”며 “그런데 올해는 시즌이 시작되는 날을 모르니 싱숭생숭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KBO 리그 2년 차 마무리 투수는 “지난해 캠프에서 오버페이스를 하다 정작 시즌 때 그만한 구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올해는 일부러 천천히 구속을 올리면서 시즌 때 진짜 좋은 공을 던지기 위해 준비했는데, 일정이 어그러지니 답답하다”고 했다. 이어 “불펜인 나보다 선발 투수들은 더 힘들 것”이라며 “늘 개막일에 맞춰 투구 수와 컨디션을 올릴 수 있게 준비하는데, 개막이 늦어지니 또 그 사이에 공을 얼마나 던지며 기다려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부담이 되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다.
일단 올해는 2020 도쿄올림픽까지 열리는 해라 KBO도 4월 중순까지를 개막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매주 실행위원회와 이사회를 번갈아 개최해 사태 추이를 살핀 뒤 개막 시기를 결정할 것이다. 선수단 운영과 입장권 예매를 비롯한 경기 운영 준비 기간을 고려해 최소 2주 전에 (날짜를) 확정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경기 일정이 예상보다 더 밀릴 경우엔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 편성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대안 중 하나로 꼽혔던 ‘경기일정 축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구단별로 144경기를 모두 치르겠다는 방침은 확고하다. 따라서 4월 중순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지 않는다면, 경기 수를 줄이는 대신 ‘무관중 경기’를 선택해 일단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정규시즌 개막전은 향후 확정될 개막일자에 이미 잡혀 있는 대진대로 치른다. 3월 28일부터 개막일 전날까지의 일정은 추후 일정으로 다시 편성될 예정이다.
류대환 총장은 “계속 대구 인근 지역에 환자가 많은 흐름이 유지된다면, 시즌 초반에는 삼성의 일정을 원정경기 위주로 재편성해야 할 수도 있다”며 “만약 개막 이후 선수단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나오면 리그는 2주간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10개 구단이 공히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다짐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