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도 안전하게”…항공사‧호텔 등은 방역과 비대면, 여행사는 럭셔리 국내 상품으로 승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도 여행은 다시 싹이 틀 것이다. 하지만 그 양상은 코로나 이전과는 사뭇 달라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사진=에티하드항공 제공
#해외수요 국내로, 대신 고급화
한 여행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이란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과 함께 과시성 소비의 측면이 있었다. 최근 해외여행 수요가 줄어든 만큼 명품소비가 늘었다는 통계를 봐도 그렇다”고 말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이 고급화로 흐를 것이라 내다봤다. 고급화는 비대면과 연결되어 있다. 누구나 가는 공공의 장소가 아니라 나만 가는 한적한 곳으로의 선호와 맞물린다.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다고 해도 당분간은 해외여행 대신 고비용의 레저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싼 음식과 화려한 풍경, 이색적인 체험 등의 수요가 많을 것”이라 전망하며 “1차적으로는 요즘 국내 골프투어가 역대급 호황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숙박예약 플랫폼 올스테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전에는 국내여행을 싸고, 짧고, 간단하게 1박 2일 정도 보내다 오는 서브격의 여가로 여겼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해외로 나가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만큼 해외 대신 국내에서 일주일 이상 장기투숙을 하며 럭셔리한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쓰는 돈만큼 국내에서 쓰겠다는 여행자가 많아지면서 국내여행도 고급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국내 풀 빌라와 럭셔리 프라이빗 숙소의 예약률이 역대 최고점을 매월 경신하고 있다. SNS 등을 활용하며 과시성으로 여행을 소비했던 수요의 방향이 해외에서 국내로 전환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최근 “You don‘t need to go far to fine what matters(당신이 무엇을 찾든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새롭게 내걸었다. 해외가 아닌 각국의 국내 숙박 쪽으로 사업 비중을 옮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들은 “비싼 객실이 먼저 찬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특급호텔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할 돈이면 같은 가격으로 국내에서도 충분히 럭셔리하게 즐길 수 있다”며 “호텔업계에서는 스위트객실을 늘리거나 일반객실 리모델링 등을 통해 객실의 고급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로 들어오던 외국인 관광객이 적당한 수준의 시설에 합리적인 가격의 객실을 원했다면 국내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내국인의 수요는 그보다 훨씬 고급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보복성 소비’라고도 부르는데, 해외여행을 못 가는 대신 그 돈으로 국내에서 더 고급스럽게 즐기겠다는 여행자의 심리를 반영한다. 해외여행에서 가성비를 따졌던 여행자들도 국내여행에서만큼은 ‘남다른’ 여행을 즐기려고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호텔업계에서는 해외 수요가 들어오지 못하는 만큼 국내 수요를 잡기 위해선 고급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국내로 몰리고 있다. 제주 우도 모습. 사진=이송이 기자
#여행도 ‘빈익빈 부익부’, 항공료 오르고 단체보단 소규모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시선이다. 항공료만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올라갈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해외 관광청 관계자는 “나가도 된다는 사인이 떨어지면 우선 항공사들과 호텔들은 자리를 채우기 위해, 또 여행사는 현금을 돌리기 위해 당장은 덤핑 상품을 쏟아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버틸 힘이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기존에는 없던 방역, 소독, 각종 위생장치 등으로 인한 원가증가를 피할 수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띄어 앉기를 해야 할 경우 티켓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인원수가 많은 단체 패키지여행보다 소규모 패키지가 선호되면서 항공좌석에 대한 단체수요가 예전 같지 않게 되면 항공료 가격도 자연히 올라간다.
항공사 관계자는 “차세대 비행기라 불리던 에어버스 380도 단종되기 시작했다. 초대형 비행기는 이제 생산이 중단될 것이다. 대형 비행기가 소형비행기보다 안전하다는 인식도 코로나와 함께 사라졌다. 더불어 비즈니스 클래스의 선호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비행기를 갈아타는 장거리 환승비행은 코로나19 검사 등 그 복잡성 때문에 기피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항공 관계자는 “아시아 국가 가운데 높은 수준의 방역 대응에 성공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몇몇 소수 국가 단위로 상호 여행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 나라 사이의 이동이 폭발할 것”이라며 “이 경우에도 저비용항공사(LCC)보다는 대한항공처럼 풀서비스캐리어(FSC)의 인기가 더 높을 수 있다. 단거리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데다 소비할 수 있는 해외여행지가 한정되어 있어 좀 더 안락한 좌석과 기내식, 면세품 등의 서비스, 사고 시 사후처리가 더 좋은 쪽으로 소비자의 선택이 향할 것”이라 내다봤다.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에티하드항공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여행 첫날부터 31일 이내 코로나19 양성 진단을 받은 경우, 최대 15만 유로(약 2억 1000만원)의 의료비용과 하루 최대 100유로(약 14만 원)의 격리비용을 지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LCC의 입지가 더 약화되고 경영 상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결국 파산하는 LCC가 늘어나며 항공료는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기 이전처럼 다시 오를 수도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백신이 개발되면 억압되어 있던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란 낙관적인 전망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해외여행 재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많다. 몇몇 국가가 방역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나라,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 남미 등의 개발도상국가가 코로나19에 안전해지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주를 제외한 여행지가 당분간은 열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 여행사 대표는 “백신이 선진국 위주로 돌아간다고 볼 때 국력이 약한 저개발국가에 백신의 영향력이 미치려면 몇 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본다. 그 사이 자본력 약한 항공사나 해외전문 여행사도 대부분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해외여행은 사치, 패키지 사 줄어도 죽진 않는다
자영업자 등이 쇠락하고 경기가 어려워지며 일반 시민들이 아예 해외여행을 갈 경제적 여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해외여행이 사치성 소비로 인식되며 코로나 전 3000만 명에 육박했던 여행소비자 층도 크게 약화될 거란 시각이다. 힘든 시기가 지나 해외여행이 다시 대중화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수요가 부족한 해외전문 여행사들, 특히 대형 여행사의 패키지를 판매하던 소형 대리점들이 사라지며 패키지 시장도 크게 약화될 거란 분석이다.
또 사람들은 패키지는 되도록 피하고 소그룹으로 다니며 대도시보다 자연 속으로 떠날 것이라 전망했다. 또 건강이 우선인 실버 세대에서 아예 해외여행 기피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한 소규모 여행사 대표는 “최대한 비대면과 비접촉을 선호하는 경향은 여행에도 예외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대형 관광지를 최대한 회피하고 상호 비감염 여부가 확인된 소규모 그룹 중심으로 복잡한 번화가나 대형 관광지 중심의 여행보다는 자연 위주의 한적한 곳으로 떠나는 캠핑이나 드라이브 스루를 접목한 여행상품이 그나마 팔릴 것”이라며 “게다가 개별 여행이 증가하는 추세가 더욱 뚜렷해질수록 소규모 여행사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복잡한 번화가나 대형 관광지 중심의 여행보다는 자연 위주의 한적한 곳으로 떠나는 캠핑 등이 인기다. 사진=이송이 기자
이런 흐름에 따라 대형 패키지 사 역시 구조조정과 규모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패키지 사 관계자는 “보유 자금과 브랜드를 앞세웠던 하나투어, 모두투어, 롯데투어 등 대부분의 대형 패키지는 위기관리에 실패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자구대책 없이 오로지 정부 지원금만 바라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해외 시장이 축소되고 항공사로부터 받는 인센티브와 각종 지원금이 사라진 상황에서 패키지 사는 장기적으로 몰락할 것”이라 전망했다.
보험도 문제다. 이 관계자는 “패키지 상품은 보험을 필수로 들어야 하는데 코로나19 진단 시 이를 보장해주려면 보험료가 올라가고 상품가격도 덩달아 올라가게 되어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해도 국내 시장에서 패키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패키지 사 관계자는 “개별여행으로 다니려면 기본적인 언어 이해와 함께 식사와 교통 등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하고 가이드 도을움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개별여행이 불가하다. 패키지여행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패키지 여행사 관계자는 “가족 단위나 친구 단위의 소규모 여행이 패키지의 장점을 가미해 프리미엄 여행상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소규모 여행이라도 여전히 직접 예약하거나 여행을 리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층이 있고 이를 패키지 사가 프리미엄 상품 형태로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관련 상품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는 가이드가 필요한 탐험, 산악, 트레킹 등 특정분야의 전문여행사와 메이저급의 여행사만 살아남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앞서의 패키지 여행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졌던 시장이 기존 흐름을 찾으려면 항공 운항 재개와 현지 인프라 수급까지 적어도 2년은 필요하다. 여행업은 기본적인 하드웨어만 구축하면 나머지는 전부 인력으로 움직이는 만큼 회복은 빠르겠지만, 백신이 나온다 해도 부작용과 적응 기간을 따졌을 때 바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관광 수요는 전처럼 많지 않을 전망”이라며 “다만 업무나 견학, 출장 등의 상용 수요가 회복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항공권 판매와 기업과 공무원 대상의 B2B 영업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단거리·소규모·고급화 정도로 요약된다. 중론은 향후엔 최근 10년과 같은 해외여행 환경은 다시 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젠 여행시장에서도 ‘내일 일은 모른다’라는 말이 지배적이 됐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