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장치 개발 삼명공조 ‘기술 탈취·개발비 미지급’ 주장…1심 승소 한화 “생산능력 부족 확인, 스스로 양산 포기”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화그룹 빌딩.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11월 8일 인도 언론에 따르면 한화디펜스가 자주방공포미사일시스템(SPAD-GMS) 사업의 가격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가격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의 방해 등으로 2년째 지지부진했던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최대 무기공급국인 러시아는 한화디펜스의 ‘비호복합’ 도입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재평가를 요구해왔다. 이에 인도 국방부가 국산화 등을 포함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사업 수출 규모는 3조 원으로 추산된다. 저고도로 침투하는 항공기, 헬리콥터, 드론(무인기) 등을 요격할 수 있는 ‘비호복합’ 104대, 탄약운반 차량 97대, 지휘용 차량 39대, 미사일 4928발, 포탄 17만 2260발 등이 발주될 예정이다. 올해 방산 해외 수주로는 최대 규모다. 특히 국내 방산업계는 이번 계약을 발판으로 세계 2위 무기 수입국인 인도 시장 공략에 고삐를 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2018년 10월 한화디펜스의 비호복합은 인도 국방부의 단거리 대공유도무기 도입 사업에서 성능 테스트를 유일하게 통과했고 가격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러시아 방산업체인 알마즈 안테이와 KBP툴라가 내놓은 ‘퉁구스카’, ‘판치르’와 경쟁 끝에 얻은 결과다.
한시름을 덜게 된 한화디펜스 국내에서는 예상치 못한 소송전에 휘말려 있다. 이 소송은 비호복합 냉방장치를 개발한 삼명공조가 제기했다. 삼명공조는 한화디펜스에 인수되기 전 두산DST가 냉방장치 개발에 대한 재료비만 지급하고 개발비는 지급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자사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입장을 밝힌다. 삼명공조는 자사의 동의도 없이 제3의 회사인 ‘케이에스씨’에 기술을 전달해 제품 양산에 나선 것은 ‘부정경제방지법’을 저촉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한화디펜스는 2016년 5월 두산DST를 인수하면서 재판의 당사자가 됐다.
2010년 당시 두산DST는 삼명공조를 비롯해 협력업체들로부터 개발제안서를 받아서 평가했다. 이듬해 3월 삼명공조는 공식적으로 개발업체로 선정됐다. 이후 성능 테스트용인 ‘부품개발시제’와 실제 전차에 장착해 종합 군수지원 평가를 받는 ‘장착시제’를 납품했다. 30mm 복합대공화기에 탑재된 냉방장치는 기술시험평가와 운용시험평가를 통과했다. 2013년 12월에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규격화 승인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양산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다. 진동·충격 시험에서 3차례 불합격하면서 양산 공급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삼명공조가 채권자들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한화디펜스 채권에 대한 2건의 채권압류·추심명령과 1건의 채권가압류가 발생했다. 이후 삼명공조는 방위사업청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케이에스씨에 제품 전량을 넘기고 대금을 받았다.
비록 양산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삼명공조는 개발비 미지급, 기술 탈취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삼명공조가 두산DST와 기술 개발과 관련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료비와 개발비를 명확히 분리해 소명하기 쉽지 않은 셈이다. 이 때문에 견적서 제출요청서와 발주 계약서, 개발제안서 등을 참고해 계약의 전 과정을 추론해서 증명할 수밖에 없다. 이는 1심 재판의 주요 쟁점이기도 했다.
한화디펜스는 재판 과정에서 “발주계약에 따라 삼명공조에 지급한 4억 4581만 원에 개발비가 포함됐다. 특히 개발업체는 제품 양산을 통해 이익을 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투자비용을 더 내는 것이 방산계약의 특성”이라며 “두 회사가 체결한 양산계약은 개발위탁계약이 아닌 제조·생산 계약으로 기술자료는 생산되지 않는다. 특히 생산능력이 부족했던 삼명공조가 스스로 양산을 포기했다. 양산을 맡은 케이에스씨는 삼명공조의 도면을 700건 수정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명공조는 “두산DST가 개발계약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제품을 양산할 때 개발비 등을 보상해주겠다며 약속했고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양산계약서를 작성할 때 인건비, 시험비 등의 개발비를 제외한 채 재료비로만 발주서 단가를 일방적으로 책정했다. 당시 수년간 개발에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으며 경영 상황이 악화됐기에 그 돈이라도 받는 것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도면이 약 690장이다. 도면에 재료 이름 등을 기재하지 않은 것을 케이에쓰시가 수정했을 뿐”이라고 재판부에 변론했다.
한화디펜스 비호복합은 인도군 시험평가 결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무기로 선정돼 인도 대공유도무기 도입 사업의 최종계약을 앞두고 있다. 사진=한화디펜스 제공
삼명공조는 양산업체 선정에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두산DST가 이틀간의 조사로 케이에스씨를 양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삼명공조의 기술을 무단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인력 빼돌리기도 쟁점 사안 중 하나다. 삼명공조는 자사 소속이었던 A 부장이 비호복합 작업공정도를 탈취해 2014년 5월 19일 케이에스씨로 이직했다며 형사 고발했다. 당시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A 씨가 비호복합 작업공정도를 무단 반출한 증거를 확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이직하기 전인 4월경 두산DST가 이미 케이에스씨에 설계도면을 제공했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1심 재판 과정에서 한화디펜스와 케이에스씨는 2014년 5월 31일에 설계도면을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4월경에 설계도면을 받아서 자체적으로 작업공정도를 작성한 것으로 판단한 검찰의 입장과 배치된다. 삼명공조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결과가 너무 다르다”며 “도면만 갖고 있던 두산DST가 케이에쓰시를 통해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작업공정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1심 재판에서는 한화디펜스가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한화디펜스가 제품에 관한 사양서를 삼명공조에 교부했고 그 내용대로 냉방장치 개발이 진행됐다. 양산단계에서 점검했듯이 3차례나 진동·충격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삼명공조 기술만으로 양산할 수 있는 제품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삼명공조만의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지난 10월 15일 삼명공조는 1심 재판에서 패소하자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와 관련,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