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승리시 ‘3후보론 탄력’ 패배시 ‘이재명 대세론’…국민의힘 승리시 ‘야권 통합 주도’ 패배시 ‘해체 압박’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월 2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도시재생사업현장을 둘러본 뒤 시장을 찾아 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기세는 오세훈, 구도는 박영선.’
현재 서울시장 판세를 요약하면 이렇다. 비교적 여유 있게 내부 경선과 단일화 과정을 거쳐 올라온 박영선 후보에 비해 오세훈 후보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 당초 오 후보는 서울시장보다는 대통령선거에 뜻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안철수 후보 출사표 이후 당 안팎에서 출마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오 후보는 10년 전 물러났던 서울시장직에 도전하기로 했다.
출발은 어려웠다. 나경원 후보가 이길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뤘다. 오 후보 진영에서조차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하지만 오 후보는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나경원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완만하게 오르던 오 후보 지지율 그래프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결국 오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조차 누르며 야권 단일 후보로 뽑혔다.
오세훈 후보의 파죽지세는 지지율에 그대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3월 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후보는 박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48.9%를 기록하며 박 후보(29.2%)를 19.7%포인트(p) 앞섰다(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0%p). 한길리서치가 3월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 후보는 46.3%로 박 후보(25.3%)를 21%p 앞섰다(신뢰 수준 95% ±3.3%p). 자세한 사안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고하면 된다.
박영선 후보 측은 “어렵지만 절망적인 단계는 아니다.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오세훈 후보의 경우 연이은 컨벤션 효과로 최고점까지 올라갔다. 반면, 박영선 후보 지지율은 바닥을 찍고 반등 기미가 보인다. 이제 좁혀질 일만 남았다”면서 “국민의힘과의 일대일 구도라면 민주당이 쉽게 지지는 않는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최근 여론조사로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결국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도 “재보선은 투표율 싸움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의 수가 더 많다”면서 “지금 두 후보 간에 지지율 격차가 10%p 넘더라도 결과를 알 수 없다. 이를 국민의힘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세훈 캠프는 연이은 승리, 지지율 상승 등으로 분위기는 밝다. 하지만 내부에선 “안심하긴 이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매엔 장사가 없는 법이다. 선거 때 욕을 먹으면서도 왜 네거티브를 하겠느냐. 여권이 계속 오 후보 때리기에 나서면 결국 지지율은 빠질 수밖에 없다. 선거 때까지 그 추세를 최대한 더디게 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했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추모식에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함세웅 신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오 후보 측은 ‘숨어있는 표’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오 후보는 여론조사 상으론 상대방이었던 한명숙 후보를 선거기간 내내 10%p 이상 앞섰다. 하지만 개표결과 0.6%p 차이에 불과했다. 2016년 총선 때 종로에서 정세균 후보와 맞붙었던 오 후보는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론 12.9%p 차이로 패배하기도 했다.
이처럼 양측 모두 지금의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아니다. 오 시장은 방심하지 않고 있고, 박 후보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공식 선거 유세 시작일인 3월 25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울 전역에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박 후보는 오 후보를 ‘낡고, 실패한 시장’으로 규정지었다. 2011년 무상급식 투표 때 시장직에서 물러난 것을 최대한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박 후보는 여러 차례 “아이들의 무상급식조차 반대하는 낡은 정치의 후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오 후보의 내곡동 셀프 보상 의혹도 맹공에 나섰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내곡동에 사저를 추진하려다 여러 논란으로 철회했던 사례와 결부 지으면서 오 후보를 ‘MB 아바타’라고도 공격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번 재보선의 캐스팅보트를 중도층이 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철수 후보보다 오 후보가 상대하기 더 쉽다고 봤다. 지금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등으로 분노한 중도층이 오 후보를 지지하는 듯하지만 이게 투표장으로까지 이어질진 의문이다. 오 후보가 국민의힘에선 그나마 온건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확장성엔 한계가 있다. (중도층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중 누구를 택할 것으로 보는가. 시간이 갈수록 중도층 표심은 박영선 후보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오 후보는 ‘낡았다’는 박 후보 공격에 ‘안정성’으로 응수했다. 앞서의 오 후보 관계자는 “지금 서울 시민들에게 필요한 시장의 덕목은 풍부한 시정 경험이다. 옛날에 시장을 했다는 이유로 낡았다라고 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공감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 후보는 ‘첫날부터 능숙하게’를 캠프 구호로 정했다. 이와 함께 박 후보 배우자 소유 일본 아파트를 철저 검증하겠다고 벼른다. ‘적폐청산 프레임’에 맞서 ‘친일 프레임’을 꺼낸 셈이다. 또한 재보선 원인인 박원순 전 시장 피해자 2차 가해 논란도 쟁점화 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번만큼은 중도층이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LH 사태 후 재보선 성격은 명확해졌다.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3(진보) 4(중도) 3(보수) 중 중도와 보수를 합한 7은 이미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본다. 큰 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오 후보가 경선부터 단일화까지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중도층이 ‘이길 만한 후보’에게 표를 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선거에 ‘올인’하는 것은 그 파급력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여야 지도부 구성, 3지대 정계개편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는 결국 내년 3월 대선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를 ‘미니 대선’으로 부르는 이유다. 여야 모두 기선을 제압해 정권재창출 또는 정권탈환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각오다.
박 후보가 승리하면 LH 사태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은 일단 한시름 덜 수 있다. 지지율 반등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선 ‘레임덕을 경험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외에 또 다른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친문계의 ‘3후보론’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 차기 구도가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후보 패배 시 민주당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강경한 목소리를 내왔던 친문계의 정치적 입지는 줄어들고, 문 대통령 레임덕도 가속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당청 권력의 추가 유력 차기주자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친문계가 더 이상 이재명 지사를 비토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정부 여당은 위기를 맞겠지만 이 지사로선 호재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세론은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더 절박하다. 오 후보가 질 경우 당은 거센 해체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3지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승리로 ‘인공 호흡기’를 달긴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선이다. ‘반문재인’을 기치로 이뤄질 정계개편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끌려 다닐 수 있다. 앞서의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이 신당을 만들면 우리 쪽에서 대거 이탈할 수 있다. 순식간에 당이 사분오열되거나 (윤석열 신당에) 흡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 후보가 승리하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1야당의 정권 교체 프레임이 내년 대선에까지 유효하다는 것을 앞세워 보수 야권 통합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전 총장을 비롯해 3지대 주자들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도 높아진다. 재보선 후 임기가 끝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킹메이커’ 역할론에도 힘이 실리게 된다. 이처럼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승자와 패자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승자독식 게임’이 시작됐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