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들 돌연 ‘잡코인 솎아내기’ 나선 이유

잇따른 상장폐지…금융위 신고 수리 과정서 잡코인 많으면 평가에 불리

[일요신문]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잡코인' 정리가 한창이다. 투자자로서는 투자자산이 사라지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거래소들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다.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자율적인 선택이라며 발을 빼고 있지만, 사실상 금융위원회와 은행의 공통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6월 2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의 시세가 표시돼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6월 16일 현재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한 가상자산 거래소 20곳 중 11곳이 지난 5월 28일 정부의 시장관리 방안 발표 이후 코인 거래 지원 종료(상장폐지)를 안내하거나 거래유의 코인을 지정했다. 금융위는 최근 가상자산 사업자(암호화폐 거래소) 등이 자체 또는 관계회사가 발행한 가상자산의 매매·교환을 중개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후오비 코리아와 지닥은 각각 '후오비토큰'과 '지닥토큰'처럼 거래소 이름을 딴 코인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거래소 플라이빗은 원화 마켓만 남겨두고 테더(USDT)와 비트코인(BTC) 마켓은 5월 31일자로 문을 닫았다. 거래소 에이프로빗은 6월 1일 원화 마켓에서 뱅코르(BNT), 비지엑스(BZRX), 카이버(KNC) 등 총 11개 코인을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11일 거래 지원 종료를 공지했다.

지난 6월 11일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업비트가 가상자산 30종에 대해 투자유의 대상 지정 및 원화거래를 종료했다. 거래대금 규모로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래소 코인빗은 같은 달 15일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기습적으로 상장폐지(8종)와 유의 종목 지정(28종)을 알렸다. 이 거래소 원화 마켓 전체 상장 코인(70개)의 절반에 달한다.

거래소들은 ‘내부기준 미달’과 ‘투자자 보호’를 거래 중단 이유로 내세운다. 발단은 역시 9월 25일까지 시한인 금융위 신고다. 신고가 수리돼야 영업이 가능하다. 은행 실명확인 계좌가 반드시 필요한데 은행연합회 가이드라인에는 거래소가 취급하는 코인의 안전성 평가가 포함돼 있다. '잡코인'이 많을수록 거래소는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다.

거래소 업계 한 관계자는 “5월 28일 이후의 상장 폐지는 은행과의 소통 과정에서 잡코인을 솎아내려는 작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업계 다른 관계자도 “김치코인 등 잡코인이 국내에 많았던 건 사실”이라며 “사업자 신고할 때 보유 코인 목록도 내야 하기 때문에 신고 전에 코인 상장폐지가 더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