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통해 인생 배웠다”…트리플A 맹활약, 양키스 내야 부진과 맞물려 주목
박효준은 6월 25일(한국시간) 현재 트리플 A 28경기에서 타율 0.343 6홈런 21타점 29득점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메이저리그 콜업 청신호를 밝혔다.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모두 트리플 A 이스트(east)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는데 ‘트리플 A 이스트’는 3디비전 20팀이 속한 트리플 A 최대 리그다. 박효준은 트리플 A 이스트에서 OPS(출루율+장타율) 1.097로 1위, 타율(0.343) 3위, 출루율(0.489) 1위, 장타율(0.608) 5위를 차지했다.
야탑고 시절 1년 선배 김하성을 뛰어넘는 초고교급 유격수로 평가 받았던 박효준은 2014년 116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양키스로 향했다. 이어 루키리그를 시작으로 싱글 A, 상위 싱글 A, 더블 A를 차례로 거쳐 마침내 지난 5월 트리플 A로 올라섰다.
박효준의 맹활약 덕분에 현지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지난 23일 양키스 구단이 박효준을 메이저리그로 콜업해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박효준이 마이너리그에서 뛴 지 7년이 됐고, 양키스의 육성 시스템을 차근차근 밟은 덕분에 트리플 A에서 타격뿐만 아니라 뛰어난 수비 능력까지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박효준이 2루타, 3루타 등 장타와 도루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고, 삼진보다 많은 볼넷을 기록하는 등 양키스에서 매우 흥미를 느낄 만한 선수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박효준한테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현재 양키스 내야수들의 부진과 맞물려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트레이드된 2루수 루그네드 오도어는 올 시즌 타율이 0.211이고, 유격수 타일러 웨이드는 0.217을 기록 중이다.
양키스를 이끄는 애런 분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박효준 관련 질문을 받고 “박효준은 지난 몇 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점차 실력을 키웠다. 그는 분명히 아주 잘해주고 있다”라고 답했다. 현지 매체는 물론 양키스 팬들도 박효준을 콜업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효준은 MLB닷컴 인터뷰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추신수를 꼽았다. 그는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마이너리그를 거쳐 빅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추신수를 롤 모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추신수가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 후 빅리그 데뷔하기 전까지 걸었던 길을 자신도 그대로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전율이 일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효준이 전한 내용이다.
“한국에서의 야구가 ‘주입식’이었다면 미국이나 남미에서 온 선수들이 경험한 야구는 자율 속에서 스스로 준비하는 야구였다. 어떤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든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부지런함이었다. 부지런한 선수는 어떻게든 성공하더라. 그래서 나도 팀 훈련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운동을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때 오전 7시까지 출근한다면 나는 5시 30분이나 6시에 훈련장에 도착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것 같았다. 다른 선수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추신수 선배님이 보여주셨다. 나도 그 길을 가고 싶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면 할수록 추신수 선배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꼈다.”
박효준은 양키스 마이너리그 입성 후 처음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았지만 2년 반 정도 지나선 ‘홀로서기’에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통역이 있으면 자꾸 의지하게 되고 말하는 걸 주저하게 돼 동료 선수들과 벽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혼자 부딪혀보기로 한 것이다. 고생한 덕분에 지금의 박효준은 영어 인터뷰도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구사할 정도다.
처음 마이너리그 무대에 설 때만 해도 자신이 어떤 단계를 거쳐야 빅리그에 올라설 수 있을지 가늠이 안됐다고 말한다.
“루키,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 다음에 빅리그에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또 다른 단계들이 있더라. 양키스의 경우에는 다른 팀에 비해 2, 3단계가 더 많다. 도미니카리그에 2개의 리그가 있고, 그 다음 루키리그도 쇼트, 로우를 거쳐야 하이 싱글 A로 올라 설 수 있다. 그 다음이 더블 A와 트리플 A다.”
싱글 A 시절까지만 해도 선수들 짐은 선수들이 챙겼는데 더블 A 승격 후 클럽하우스 매니저가 선수들 짐을 챙기는 걸 보고 리그의 수준에 따라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에 큰 차이가 난다는 걸 절감했다는 박효준. 리그 시스템과 환경의 차이가 선수들에게 야구를 잘하고 싶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7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참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딘 성장세에 가끔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민했다고 한다. 군대 문제를 비롯해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1년도 못 버틸 것 같았는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버티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거란 믿음을 잃지 않았다.”
박효준은 미국에서 야구하고 있는 선후배들을 ‘존경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고, 거치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절로 존중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도쿄올림픽 승선이 물거품이 된 지금 박효준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빅리그 콜업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경기에 단 한 번이라도 서 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출발하면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서너 번으로 이어질 거라고 말한다. 지금은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목표를 잡고 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최종 명단이 발표된 이후 박효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더니 박효준은 ‘쿨’한 면모를 보이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못하고 못 뽑히는 것보다 잘하고 못 뽑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은 박효준에게 야구보다 인생의 배움을 안긴 시간들이었다. 25세의 마이너리거는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