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표절 등 ‘시끌’…문체부 “일자리 사업, 작품성 관여 못해” 예술인 “대형기획사 몫이 더 커”
‘우리 동네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공공미술프로젝트는 2020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유형의 미술활동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공간의 품격을 제고하기 위해 시행된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공모사업이다. 투입된 예산은 약 1000억 원이다. 사업 목표는 전국 228개 자치구에 공공미술작품 최소 1개씩 생산하는 것으로 사업 범위와 예산 면에서 모두 역대급 규모였다.
문제는 실행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우리 동네 미술 사업에 대한 우려는 지난해부터 수차례 지적돼 온 바 있다. 전국구 규모에 비해 사업 기간은 5~6개월로 지나치게 짧아 예술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생산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문체부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9월 해명자료를 통해 “(우리 동네 미술 사업은) 2020년 5월부터 권역별 공공미술 교육을 진행하는 등 내실 있게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작품의 질을 위해 공공미술프로젝트 자문위원회와 지역별 자문위원회를 통해 작품의 예술성과 실행 가능성을 보완하도록 조치를 끝냈으며 일부 지역에서 협회나 단체가 주도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선정위원회 구성 시 지역 외부인사가 과반수로 참여하도록 했고 신진작가 등 다양한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라며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각종 잡음이 일었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신촌마을에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품을 빼다 박은 벽화가 공공미술 작품으로 들어섰다(관련기사 [단독] 키스 해링이 왜 거기서…1000억 쏟은 ‘공공미술’ 졸속 논란). 경상남도 거제시와 대구광역시 등 지자체에서는 인건비 차등 지급과 특정 단체 밀어주기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초 2월로 예정되어 있던 사업 마감 기한이 차일피일 밀려 6월로 연장되는 지자체가 속속 나타났다.
그런데 사업이 끝난 현 시점에 문체부 입장이 지난해와 달라졌다. 예술인 일자리 지원과 예술성 모두를 챙기겠다던 문체부는 돌연 “예술성은 나중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 동네 미술) 사업의 목적은 첫 번째로 코로나19 상황으로 어려워진 예술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일자리를 주는 것이었다. 일회성 사업이고 처음부터 예술성을 가지고 (사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미술 사업에서 작품의 예술성을 주요 문제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문체부가 중간에 개입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는 “중간에 기관이 개입해서 ‘잘했다, 못했다’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작품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작품성에 관해 개입할 생각도 없었고 그런 장치가 있지도 않다. 작품성 논란이나 표절 문제는 나중에 (사업이) 끝나고 나서 평가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정 문제가 있으면 그때 철거를 해야 할 것이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별도의 자문위원회를 통해 예술성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에 대한 예술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일요신문과 만난 직업 예술인 김 아무개 씨(33)는 문체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공공미술프로젝트니 작품을 내고 심사를 받으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재난 지원금이니 진행 과정에서 표절 등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 표절작을 내고도 지원금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심사에서 떨어진 예술인의 박탈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 등 지자체 자문단 사이에서는 올해 초부터 이번 사업의 방향성에 대한 권고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는 공공미술위원들이 모여 서울시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공공용지에 세워질 미술작품의 심의 및 자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위원회 구성원은 총 13명으로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 김장언 독립큐레이터, 유석연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윤여경 아트저널리스트, 호경윤 국민대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오진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 최혜영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백기영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최재원 독립큐레이터, 현시원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겸임교수, 임성진 국립현대미술관 보존학과 총괄, 오한아와 김소영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다.
자문단이 지적한 점은 지난 1월 22일 열린 제1차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 회의를 보면 잘 드러나 있다. 이날 회의는 공공미술위원 6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 동네 미술 사업의 지지부진한 속도에 대한 우려로 문을 열었다. A 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로 시작된 사업의 특수성이 있지만 타 시·도 기초 지자체는 추진이 잘 안 되고 있다”며 “자치구가 의식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 디자인정책과에서 조금 더 강력하게 주도권을 갖고 진행하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서울시 역시 25개 자치구의 최종 선정 작품을 당초 계획한 시점에서 한 달 이상 지나도록 발표하지 못한 상태였다.
예산 문제도 지적됐다. B 위원이 “우려스러운 점은 공공미술에서 4억 원이면 상당한 규모다. 작업 사이즈에 비해 예산이 크다”고 하자 또 다른 위원이 “55%가 작가 인건비인데 대표작가에게 과도하게 지급되지 않도록 참여 작가들에게 재분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사업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C 위원은 “이 사업을 통해서 확실히 드러난 건 예술인 지원 정책과 창작 정책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예술인 지원을 할 거면 대상이 되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고, 창작은 경쟁력이 있는 훌륭한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준을 마련해서 표절이 의심스럽거나 작품성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걸러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심의를 맡은 위원들이 작품 선정 과정에서 사업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별다른 개선 없이 우려는 대부분 현실이 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위원은 “예술인 지원이 목적인 사업이었다면 영세한 예술인들을 선정하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어야 한다. 이런 방식의 사업들은 대부분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대형 기획사나 각종 협회에 떨어지는 돈이 훨씬 많다. 예술인 지원으로 1000억 원을 들였다고 하지만 실제로 예술인에게 지급되는 돈은 훨씬 적은 것이다. 졸작을 만들어 놓으면 추후 관리비와 철거비도 들어갈 뿐더러 공공미술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인식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사업을 주최한 문체부도,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맡은 국회도 공공미술 영역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열린 제379회 임시회 중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박양우 당시 문체부 장관은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설명하며 총 3399억 원의 증액사업과 1883억 원의 감액사업이 있다고 밝힌다. 이 가운데 공공미술프로젝트 예산 759억 원은 증액사업에 포함되었다.
전에 없던 규모의 증액이었으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했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만이 박 장관에게 “각 지자체의 여건이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1개 지자체 1개 프로젝트 기준으로 예산이 편성된 점이 우려된다”며 “사전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연내 집행이 가능할까 걱정된다”며 절차가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을 뿐이었다.
한편, 문체부에 따르면 우리 동네 미술 사업은 6월 30일 공식적으로 종료됐으며 94%의 지자체가 사업을 마쳤다. 다만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계획 수정 등을 이유로 여전히 사업을 연장해 진행하고 있다. 7월 이후로는 작품에 대한 모니터링과 작품 아카이빙 등의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