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식량·백신 필요하지만 코로나 탓 직접 방문 가능성 낮아…문재인 대통령 ‘대형 이벤트’ 임기 말 호재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됐다. 정전기념일인 7월 27일 청와대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7월 28일 로이터통신은 한국 정부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며 코로나19가 가장 큰 변수”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화상 정상회담이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 맞는 ‘언택트 방식’인 셈이다.
청와대는 로이터통신 보도를 부인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논의 중이라는 외신 보도는 이미 밝혔듯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 7월 27일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 정상 간 대면 또는 화상회담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도 “논의한 바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4차 남북정상회담을 암시하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급반전이다. 2020년 6월을 전후로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의 강도 높은 ‘담화문 정치’와 더불어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등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극단적으로 경색됐다. 여기다 2020년 7월 탈북민 재월북 사건과 더불어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최근까지도 북한은 이런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런데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던 통신연락선을 복원함에 따라 남과 북은 다시 화해무드를 형성할 초석을 다진 모양새다. 그간 ‘배척 일변도’로 문재인 정부를 외면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돌연 태세를 전환한 셈이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부인했지만, 복수 정치권 관계자와 대북 소식통 사이에선 이미 4차 남북정상회담을 예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남북관계에 반전 기회가 온 만큼 물밑에서 정상회담을 포함한 획기적인 카드가 연이어 논의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7월 30일 통화에서 “획기적인 카드라고 하면 결국 정상회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면서 “이에 따른 조치로 북한이 원하는 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2020년 2월부터 국경을 전면폐쇄하면서 경제 상황이 피폐해졌다”면서 “이런 조치에도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그는 “국경 봉쇄에 따른 경제 상황과 방역 시스템이 임계치에 달한 모양새”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주민들이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영상이 중국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보고된 북한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0’에 멈춰 있다. 주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것과 확진자 수가 없다는 가설 중 하나는 거짓인 셈이다. 후자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북한의 백신 수급 상황 역시 최악 수준이다. 이와 더불어 국경봉쇄 이후 식량난이 극심해지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에게 부족한 것은 곡물과 백신이라는 게 이 소식통의 분석이다. 김정은은 6월 열린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이 미달한 것으로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면서 ‘군량미와 전쟁비축미를 풀라’는 특단 명령을 내렸다. 이례적으로 북한 식량난을 공식 석상서 인정한 셈이다.
다른 북한 소식통은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비롯한 급반전 무드는 북한의 결심이 서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면서 “4월부터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확인된 가운데 연락선 복원이 이뤄지기까지 양 정상이 적잖은 공감대를 형성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남측에 제시하고 있는 안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것으로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 대북제재 국면에서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사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식량난을 해결할 곡물, 코로나19 백신 등에 대한 지원 여부가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키를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식량과 백신 지원을 대가로 정상회담에 응한다면 김정은은 현재 마주한 여러 과제를 원샷에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복수 소식통 발언을 종합하면 김정은을 정상회담으로 끌어낼 필요충분조건으로 꼽힌 것은 곡물과 백신에 대한 지원 대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도 임기 말 4차 남북정상회담은 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 정치 이벤트를 주도하며 지지율 상승과 레임덕 지연을 노려볼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야권 대선 주자들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점은 덤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깜짝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야권 대선 주자의 상승세를 억누름과 동시에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임기 초·중반 남북정상회담은 대통령 지지율을 수성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면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은 그야말로 정국 돌파 마스터키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정상회담 방식이다. 1~3차 남북정상회담은 판문점, 평양, 백두산 등 다양한 풍경을 배경에 깔고 이뤄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원하는 건 김정은이 서울을 답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면서 “김정은이 서울에 온다면 그야말로 역사적인 이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1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김 위원장의 남쪽 답방은 남북 간 합의된 사항으로 언젠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면서 직접적인 기대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복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의 서울 답방 가능성을 낮게 봤다. 앞서의 소식통은 “김정은 서울 답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평시에도 서울 방문 가능성이 굉장히 낮았는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현 상황엔 더 그렇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 답방 시나리오를 비롯한 대면 방식 정상회담이 진행될 경우 적지 않은 실무단이 남측 인사와 접촉하게 된다. 외부인 다수와 만남 자체가 김정은에겐 부담이다. 혹시라도 코로나19를 옮겨가는 것은 아닌가 불안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이다. 아마 회담에 대한 물밑작업이 이뤄질 경우 ‘언택트 방식’을 도입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언택트 방식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그 자체로는 신선도를 갖출 수 있겠지만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서 “회담까지 가는 길엔 수없이 많은 협상이 전개되는데, 영상통화 한 번에 북한의 요구를 받아주는 방식의 협상은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한국 측 공무원 피살사건 등에 대해 김정은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경우엔 되레 정치적 이벤트의 의미가 빛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는 “앞서 언급한 사건들은 남북관계 경색을 이유로 풀어지지 못한 숙제”라면서 “이 문제들을 흐지부지 넘긴다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론 반응이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회담들과는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