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방지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 잇단 부작용…사내 성추행 피해자에겐 비밀유지 서약 받아
#예고 없는 가격 인상, 곳곳에서 부작용
샤넬코리아(샤넬)는 지난 7월부터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샤넬이 모든 고객의 구매 기록 및 구매 패턴 등을 바탕으로 ‘판매 유보 고객’을 지정해 상품 판매를 제한하는 것이다. 판매 유보 고객이 되면 샤넬에서 물건 구매는 물론 샤넬 매장을 방문하는 것도 금지된다. 샤넬은 이 정책을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간접적으로 ‘리셀러’(재판매업자)를 언급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판매 유보 고객은 △반복적인 매장 방문 △상품 다량 구매 등을 한 사람을 지칭한다.
일부 고객은 “사재기 좀 잡으려나 보네요” “업자들(리셀러들) 거르나 보네요”라며 정책을 반기는 눈치다. 하지만 정책 시행 약 두 달 만에 피해 고객들이 나오면서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명품 관련 온라인 카페와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까지 샤넬에서 약 2억 원어치 상품을 구매한 한 소비자가 지난 8월 판매 유보 고객으로 등록됐다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소비자는 리셀러가 아니며 평소 한도 내에서 쇼핑을 했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어떤 이유로 판매 유보 고객에 올랐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매 유보 고객을 분류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샤넬 관계자는 “회사 내부 정책으로서 외부 공개가 어렵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을 알리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판매 유보 고객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자 일각에선 ‘브랜드 갑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샤넬은 정책 관련 부서 근로자들에게 정책 내용을 알리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소연 샤넬노동조합 위원장은 “샤넬은 패션 부문과 화장품(뷰티) 부문으로 부서가 나눠져 있는데,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을 시행하는 패션 부문 직원들에게 이 정책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토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은 샤넬의 예고 없는 가격 인상에서 비롯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샤넬이 단기간에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리셀러들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들이려고 ‘오픈런’(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으로 질주하는 현상)을 했고, 사측은 이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정책을 실시했다고 업계는 봤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샤넬의 경우 ‘샤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셀이 활발하다”면서 “가격을 자주 인상하면 리셀러들은 그보다 더 웃돈을 주고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가격 인상이 자주 이뤄지면 리셀러들에게 그만큼 이익”이라고 말했다.
샤넬은 지난 1일 올해에만 세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앞서 지난 2월과 7월 국내 주요 상품의 가격을 올린 바 있다. 이와 관련, 샤넬 관계자는 “제작비와 원재료의 변화를 고려해 가격을 정기적으로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부티크 경험 보호 정책 자체도 맹점이 있다. 판매 유보 고객으로 지정돼도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제품을 구입하면 샤넬에서도 리셀러 분별이 어려워질 수 있다. 명품업계 한 관계자는 “3대 명품 중 샤넬만 이러한 정책을 하고 있는데, 성급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 정부 개입이 가능해진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기업 자체로 운영되는 규정이 부당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공정위에 약관 심사청구가 가능하며 이후 시정조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 대신 압박…내부 갑질에 피해자 ‘속앓이’
샤넬은 명품업계 최상위 브랜드라는 외부 이미지와 달리 내부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지난해 샤넬 임원이 2008년부터 백화점 샤넬 매장 여성 직원 10여 명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던졌다.
성추행 피해자들은 당시 샤넬 측의 내부 조사 진행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유명 법무법인에 조사를 맡기겠다고 통보했고, 해당 법무법인에서 진술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더 커졌다.
샤넬 노조는 조사 과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샤넬은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 조혜진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사업주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으며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에 따른 어떤 책임을 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힐난했다. 샤넬 측이 법무법인을 통해 성추행 사건을 대응했지만 비밀유지 서약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은 것.
샤넬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사측은 조사 결과에 대한 세부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면서 “다만 철저하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모든 신고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인사위원회는 (임원에게) 사내 규정에 걸맞은 합당한 처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임원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부 처벌 규정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샤넬의 태도에 대해서는 내부 갑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피해자들에게 "직장 내 성추행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것 자체가 갑질 행위라는 것. 법조계 관계자들은 성추행 피해자들이 회사의 요구에 따라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판례에 따르면 비밀유지 서약서는 △구체적으로 영업비밀을 특정해야 하고 △어떤 유출행위를 금지하는지 정해야 하며 △직원이 비밀유지 서약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이해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 하지만 샤넬 내부 성추행 사건은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 힘들다.
조혜원 변호사는 "샤넬이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케 했지만 (피해자들이) 이를 지킬 의무는 없다"며 "회사 경영 문제를 논한 것이 아닌 피해 당사자가 겪은 이야기기 때문에 성추행에 대한 내용이 알려진다고 해도 (샤넬 측에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