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확대에 반발, 감단근로자 지위 여전해 모순…시행 앞두고 인원 감축·초단기 계약 사례도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이른바 ‘갑질금지법’으로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10월 2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은 아파트 경비원이 수행할 수 있는 관리 업무의 범위 설정이다. 본래 아파트 경비원은 근로기준법상 ‘감시·단속적 근로자(감단근로자)’로서 경비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즉 원칙적으로 경비 외 업무는 모두 위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소, 분리수거, 택배관리, 주차관리 등 관리 업무가 전체 업무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경찰청이 올해부터 이를 단속하겠다고 밝히자 경비업체를 중심으로 대량 해고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편으로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는 갑질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부 관리 업무가 합법화된다. 경비 업무 외에 △청소·환경관리 △재활용 분리배출 정리·단속 △주차관리(위험·도난 발생 방지 목적을 전제로 한) △택배물품 보관, 이상 네 가지 부수업무가 허용된다. 이를 제외한, 입주민 택배 배달이나 대리주차(발레파킹), 관리사무소·입주자대표자회의 관련 동의서 서명 받기, 입주민 심부름, 위험한 작업 등은 모두 금지된다.
만약 경비업체가 관리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지시할 경우 경비업 허가가 취소된다. 또 갑질 방지를 위해 입주민에게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정명령이 내려지고, 미이행시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는 “공동주택 경비원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유도하고, 공동주택의 상생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경비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비원들을 위해 마련한 개정안이 오히려 경비원들의 근로환경을 더 열악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용된 네 가지 업무를 기존에 하지 않던 아파트도 있고, 추가 수당을 받으면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정안은 이들 업무를 모두 경비원 업무에 포함되도록 일괄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돈을 받으면서 하던 일이 이제 무상노동이 된 것”이라며 “세심하게 규정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한규 빛고을경비원연합회 대표는 “쉴 틈 없이 일하는 데다 주민과 마찰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업무 범위를 두고 갈등이 예상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면서 경비원에게 일종의 책임성만 부여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관리 업무가 늘면서 사실상 근로기준법상 일반근로자가 됐지만 고용노동부(고용부)에서 감단근로자로서 지위는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단근로자에게는 근로기준법에서 제시하는 주52시간제, 주휴수당, 연장·휴일가산수당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개정안이 경비원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하지만 정작 임금 및 근로환경 개선에 이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아파트경비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관계자는 “고용부에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본다”며 “아파트 경비원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감단근로자 승인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부는 다음 주 중 아파트 경비원의 감단근로자 승인 여부와 관련해 ‘겸직 판단 기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고용부가 감단근로자 승인을 일괄적으로 제외할 경우 오히려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불안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반근로자로서 임금상승률은 35~4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인건비 상승은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입주민 등의 반대로 경비원 인원 감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인 남우근 공인노무사는 “고용부 입장에서는 그동안 승인하던 것을 갑자기 제외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면서도 “관리 업무가 많은 사례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방치할 경우 경비원이 임금체불을 주장하며 법적 분쟁을 거는 일이 늘어날 것이고, 법원 판단에 의해 감단근로자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부 현장에서는 일반근로자로 전환을 염두에 두고 대량 해고가 발생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24명이었던 경비원 수가 최근 12명으로 줄었다. 경비원 1명이 기존 업무의 2배 수준인 3개 동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경비원 A 씨는 “촉탁직은 벌써 다 해고했고, 다음 주에 개인면담을 실시한 뒤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법안 개정에 대해 은연중에 얘기하면서도 경비원 개인의 업무상 문제인 것처럼 둔갑해 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단기 계약을 활용해 법안 적용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은 3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한다. 즉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이용해 불이익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10월 21일 개정안 시행을 눈앞에 두고 1개월 수준의 계약마저 나타나고 있다. 경비원 B 씨는 “경비원한테 스스로 인원 감축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 경우도 있고, 9월 말에 만기인 동료에게 21일짜리 재계약을 시키기도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관리 업무 준수를 내부에서 알아서 해결하게끔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복수의 노동계 관계자는 “아파트 경비원은 교대제라는 근무환경과 고령이라는 특성, 초단기 계약에 하루하루가 좌우되는 상황이라는 점 등의 이유로 조직화되기 어렵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해고가 발생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관리 업무 허용, 일반근로자 전환 등과 관련해 현장에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장에 충격이 생기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들과 적정선을 논의해왔다”며 “제도 개선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최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원 감축 등) 우려 때문에 관련 주체에 전문적인 컨설팅을 통해 해고 없이 상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개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 개선은 바람직하지만 인건비 부담을 빌미로 인력을 줄이는 날벼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입주민들과 관리사무소 역시 법의 취지에 맞게 경비원의 노동을 존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모두 더 나은 환경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