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이어 김재환까지, 김현수는 두 번째 100억대 계약…소문 무성 나성범·양현종 액수에도 ‘촉각’
두산은 "대체 불가 선수인 김재환을 처음부터 '무조건 잡는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며 "계약기간에는 이견이 없었고, 금액은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김재환은 KBO리그 역대 7번째로 'FA 100억 원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됐다.
김재환은 2008년 두산에 입단한 뒤 11시즌 통산 타율 0.296, 1008안타, 홈런 201개, 722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22를 기록하면서 리그 대표 4번 타자 중 한 명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계약 후 구단을 통해 "두산 외에 다른 팀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좋은 대우를 해주신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기쁘기도 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날 LG 트윈스도 "FA 외야수 김현수(33)와 4+2년 최대 115억 원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4년간 계약금 50억 원과 연봉 총 40억 원을 합친 90억 원을 보장 받은 뒤, 그 기간 구단과 서로 합의한 옵션을 달성하면 이후 2년간 총액 25억 원을 자동으로 연장해 받는 조건이다.
2018시즌을 앞두고 LG와 4년 총액 115억 원에 사인했던 김현수는 두 번의 FA 계약을 통해 최대 230억 원을 약속 받게 됐다. 역대 8번째 100억 원대 계약이자 KBO리그 FA 역사상 최고 액수다. 김현수는 "지난 4년간 LG 팬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항상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줄무늬 유니폼을 입을 수 있어 기쁘다"며 "구단과 팬 여러분의 응원과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건우도 100억 클럽 가입, 박해민도 대박
앞서 두산 출신 FA 외야수 박건우도 이들보다 먼저 총액 100억 원 고지에 도달했다. NC 다이노스는 지난 14일 박건우와 6년 총액 100억 원(계약금 40억 원, 연봉 총 54억 원, 인센티브 총 6억 원)에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KBO리그에서 공식적으로 '100억 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선수는 지난해까지 단 5명밖에 없었다. 2016년 12월 최형우(KIA 타이거즈·4년 100억 원), 2017년 1월 이대호(롯데 자이언츠·4년 150억 원), 2017년 12월 김현수(LG·4년 115억 원), 2018년 12월 최정(SSG 랜더스·6년 106억 원)과 양의지(NC·4년 125억 원)다. 3년 만인 2021년 12월 박건우와 김재환이 차례로 100억 원 대열에 합류했고, 곧바로 김현수가 최초로 '꿈의 몸값' 리스트에 두 번째 이름을 올리는 신화를 썼다.
프리미어12와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박건우는 2016년 주전으로 도약한 뒤 6년 연속 3할 타율을 달성한 리그 정상급 외야수 중 한 명이다. 6시즌 모두 500타석 이상 소화하면서 안타 145개 이상을 때려내는 꾸준함을 자랑했다. 통산 타율 0.326는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현역 타자 중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박건우는 또 동기생 외야수 정수빈, 내야수 허경민과 함께 두산 팬이 애지중지하던 '1990년생 트리오'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고교 3학년이던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서 인연을 맺은 뒤 나란히 같은 팀에 입단해 2015년부터 시작된 '두산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정수빈과 허경민은 지난해 두산과 FA 잔류 계약을 하고 팀에 남았지만, 박건우는 NC 이적을 택하면서 13년 만에 두 친구와 다른 유니폼을 입게 됐다.
NC는 박건우에 대해 "타격의 정교함과 파워뿐 아니라 수비와 주루까지 고른 기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임선남 NC 단장은 "내년 시즌 가을야구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박건우를 영입했다. NC가 강팀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박건우도 "믿음으로 마음을 움직여준 NC에 감사드린다. 코칭스태프, 선수단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팀에 빨리 적응하겠다"며 "경기장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NC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겠다"라는 각오를 전했다.
이뿐만 아니다. 삼성 라이온즈 출신 FA 내야수 박해민도 박건우와 같은 날 LG 이적을 발표했다. 박해민 역시 4년 총액 60억 원(계약금 32억 원, 연봉 총 24억 원, 인센티브 총 4억 원)을 받는 'FA 대박'을 터트렸다. 원 소속팀 삼성과 지방의 한 구단도 만만치 않은 금액으로 박해민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LG가 그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해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다.
LG는 올해 김현수, 홍창기, 채은성, 이형종, 이천웅 등 '외야수 빅5'가 활약한 팀이다. 외야 선수층이 다른 팀에 비해 두껍다. 그런데도 박해민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이유는 '대권 재도전'을 위해서다. 4년 만에 영입하는 외부 FA로 공·수·주를 모두 갖춘 박해민을 선택했다. 빠른 발과 타구 판단력이 돋보이는 '슈퍼 캐치'는 박해민의 트레이드마크. 국내 프로야구장 중 외야가 가장 넓은 잠실에서 그의 가치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야구 관계자들은 "지난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 중견수 정수빈의 호수비에 번번이 당한 LG가 박해민의 리그 정상급 수비력으로 맞불을 놓으려는 듯하다"고 해석했다.
국가대표 1번 타자인 박해민은 올해 출루율 타이틀을 차지한 기존 리드오프 홍창기와 리그 최강의 테이블세터를 이룰 수도 있다. 류지현 LG 감독은 "시즌 종료 후 구단과 코치진, 데이터 전력분석팀이 모여 워크숍을 했다. 거기서 '박해민이 우리 팀에 오면 팀 전력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나성범 KIA 이적? 100억 클럽 대기 중
김재환과 박건우의 뒤를 이을 다음 '100억 클럽' 가입자도 이미 번호표를 뽑고 대기 중이다. NC 출신 FA 외야수 나성범이다. 사실 NC의 최우선 협상 대상자는 박건우가 아닌 나성범이었다. 나성범은 NC 구단의 역사를 함께 쓴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다. NC에 창단 첫 골든글러브를 안겼고, 첫 가을잔치와 첫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모기업이 풍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NC는 나성범과 어렵지 않게 계약할 것으로 보였다. 올해 FA 중 최대어급인 나성범이 따로 국내 에이전트를 구하지 않고 스토브리그에 나선 점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했다. 이동욱 NC 감독은 "나성범은 'NC의 나성범'이다. 우리 선수로 생각하고 있다"고 팀과 구단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 단장, 감독을 모두 교체하고 새출발하는 KIA가 두둑한 지갑을 들고 시장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광주 진흥고 출신인 나성범이 고향팀 KIA와 6년짜리 초대형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가설은 NC가 박건우 영입을 공식 발표하면서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나성범의 이적이 공식화된다면, NC 팬은 창단 후 가장 충격적인 결별을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투수 FA 양현종(전 KIA)도 아직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양현종은 원 소속구단 KIA 잔류가 유력해 보였지만, 협상 과정의 잡음이 외부로 흘러나오면서 잠시 난기류를 형성하기도 했다. 물론 오랜 기간 KIA의 간판 투수였던 양현종은 여전히 광주를 최종 목적지로 여기고 있다. KIA 역시 양현종의 과거 공헌도와 현재 위상을 고려해 적지 않은 금액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형 계약이 성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올해 FA 시장에선 예상을 뛰어넘는 이합집산이 벌어질 조짐이다. 수십억 원이 오가는 FA 시장에서 '더 많은 몸값'을 마다할 선수는 없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점점 희귀해지는 시대라 더 그렇다. "FA 시장에 '무조건'은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 나성범이 NC를 떠날 가능성이 크고, 과거 두산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현수와 양의지는 이제 LG와 NC 선수로 더 친숙하다.
FA 제도 도입 후 최초의 이적 사례를 남긴 선수도 해태(KIA의 전신)에서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이강철(현 KT 위즈 감독)이었다. 그는 1999년 11월 삼성과 3년 총액 8억 원에 사인하면서 리그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한 달 뒤인 12월에는 역시 LG 간판 스타였던 FA 포수 김동수가 역시 삼성과 3년 총액 8억 원에 사인했다. FA 제도가 서서히 프로야구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 후 지난해까지 이적에 성공한 선수는 총 45명. 특히 FA 몸값 광풍이 일던 2016년과 2017년엔 2년 연속 7명이 팀을 옮겨 역대 최다 이적 기록을 썼다. 2018년에도 선수 4명이 좋은 조건으로 새 둥지를 찾았다. 활발하던 이적 시장이 주춤해진 건, '몸값 거품 경계령'이 떨어진 2019년부터다. 대부분의 구단이 지갑을 닫았고, 이적 선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해 팀을 옮긴 FA 선수는 '역대급' 최대어였던 포수 양의지(두산→NC)가 유일했다. 2020년 역시 내야수 안치홍만 KIA에서 롯데로 소속 팀을 옮겼다.
지난 시즌에는 이적 선수가 다시 3명으로 늘었지만, 한 팀(두산)에서 FA 7명이 우르르 쏟아진 영향이 컸다. 두산이 내부 FA 전원을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하지만 올해는 벌써 A등급 FA 중 두 명이 이적을 발표했고, 더 많은 FA들이 활발한 이적 협상을 펼치고 있다. 소문은 빠른 속도로 방향을 틀고, 그때마다 몸값은 더 커진다. 김재환의 4년 115억 원 계약도 다른 FA들의 '민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많은 구단이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A등급 선수들에 가려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B·C등급 FA 선수들에게도 서서히 협상 테이블이 열리는 모양새다. 국가대표 출신인 내야수 박병호와 황재균, 외야수 손아섭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35세 이상(박병호)이거나 FA 재자격(황재균·손아섭)을 얻어 A등급을 피했다. '에이징 커브'나 높은 보상금 등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마음 급한 구단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새로운 전력 보강 카드를 찾고 있다. 요동치는 FA 시장이 만들어낸 '도미노 효과'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