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프먼은 평균 구속, 디르롬은 10구 연속 100마일 넘겨…랜디 존슨 선발임에도 102마일 찍어
라이언이 100마일의 벽을 넘어선 지 27년이 지난 후 이보다 시속 10㎞나 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탄생했다.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이다. 그는 신시내티 레즈 시절이던 2010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전광판에 무려 시속 106마일(171㎞)이라는 구속을 찍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구속 측정시스템에도 시속 105마일(169㎞)이 나왔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이었다.
채프먼 이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소속이던 조엘 주마야가 2007년 시속 104마일(167㎞)의 강속구를 뿌린 게 최고였다. 그러나 잇단 팔꿈치 수술로 짧게 활약하다 종적을 감춘 주마야와 달리 채프먼은 100마일을 넘나드는 강속구를 꾸준히 던졌다. 2020시즌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고 돌아온 직후에도 곧바로 시속 102마일(163㎞) 직구를 던졌을 정도다.
2014시즌에는 직구 평균 구속이 시속 100.3마일(161㎞)로 측정돼 ‘최고’가 아닌 ‘평균’ 구속 100마일을 넘긴 사상 최초의 투수로 기록됐다. 2015년 7월에는 한 경기 투구 수 18개 가운데 15개가 시속 100마일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빅리그에서는 100마일 넘는 공 571개가 나왔는데, 그 중 335개(59%)를 채프먼 혼자 던졌다.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들조차 채프먼의 공을 받는 데 어려움을 호소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스탯 캐스트(타구와 투구 정보 기록 시스템)’ 최고 구속 순위에는 ‘채프먼 필터’가 생겼다. 채프먼의 구속이 상위 50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채프먼을 제외한 다른 투수들의 구속을 찾으려면 이 필터를 사용해 채프먼의 기록을 먼저 걸러내야 한다. 다만 그런 채프먼도 세월의 흐름에 조금씩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 처음으로 직구 평균 구속이 100마일에 미치지 못했고, 이후에도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적인 투수들보다 훨씬 빠른 공을 던지고 있다.
시속 10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대부분 보직이 채프먼과 같은 소방수다. 100개가 넘는 공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는 체력 안배를 위해 공 하나마다 전력을 다하기 어렵다. 선발투수로 활약하면서도 시속 102마일(164㎞)의 광속구를 뿌린 랜디 존슨이 ‘괴물’로 불렸던 이유다. 로저 클레멘스, 바톨로 콜론, C.C. 사바시아, 케리 우드 등도 선발로 시속 100마일을 넘긴 투수들이다.
최근에는 뉴욕 메츠 제이컵 디그롬이 MLB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선발투수로 꼽힌다. 불펜이 아닌 선발투수 최초로 직구 평균 구속 100마일을 기록했고, 지난해 5월 3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는 경기 개시 후 10구 연속으로 100마일 이상의 구속을 찍는 기염을 토했다. 다소 늦은 26세 나이에 빅리그에 데뷔했는데도 꾸준히 구속이 상승한 점도 놀랍다.
올해 혜성처럼 나타난 그린이 디그롬을 능가하는 구속을 보여줬지만, 디그롬은 세 차례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등 제구와 경기 운영 면에서도 빅리그 톱 클래스로 꼽히는 투수라는 게 큰 차이점이다. 지난 19일(한국시간) 은퇴를 선언한 사이영상 투수 제이크 아리에타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엘리트 투수를 봤지만, 그 중 최고는 디그롬이었다”며 “디그롬이 야구공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다른 모든 이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다. 앞으로 15년간 더 건강하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그롬이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어깨뼈 부상을 당해 아직 등판하지 못하고 있는 게 메츠 입장에선 큰 아쉬움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