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연평균 700만 달러부터 시작 예상…어떤 에이전트 만나는지가 중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한 스카우트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에 대한 메이저리그 분위기를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이정후가 2023시즌 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지만 기자가 직접 접촉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모두 이정후의 미국 진출 가능성을 100% 확신했다. 물론 2023시즌을 건강하고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는 걸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미국 야구 통계 전문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12월 15일 이정후를 아시아 유망주 전체 5위-타자 2위로 평가했다. 전체 1위는 올시즌 56홈런을 기록하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한 무라카미 무네타카였다. 이정후는 무라카미보다 낮은 순위지만 이번에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 9000만 달러에 계약한 요시다 마사타카의 전체 6위-타자 3위보다 순위가 높았다.
요시다는 173cm의 작은 체구로 지난 7년간 네 차례 이상 20홈런을 기록했고, 통산 타율이 0.327이다. 통산 300삼진 421볼넷을 작성했다. 185cm의 이정후는 지난 6년간 두 자릿수 홈런이 두 차례 있었고, 통산 타율이 0.342다. 통산 281삼진 334볼넷을 기록했다. 이정후의 강점은 요시다보다 무려 다섯 살이나 어리다는 점이다. 프로에서의 성장 속도나 성적을 살펴보면 이정후가 요시다한테 뒤처질 이유가 없다.
팬그래프닷컴은 지난 8월 이정후 관련 리포트를 통해 ‘이정후는 지구상에서 가장 달콤한 스윙을 휘두르는 선수 중 한 명’이라며 이정후의 스윙 메커니즘을 높게 평가했다.
실명을 공개하고 인터뷰에 응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아시아 담당 남궁훈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이정후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카우트 관련 회의를 하다 보면 일본인 선수와 한국인 선수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인으로서 기분이 좋진 않지만 일본과 한국의 아마추어 시장과 프로 인프라를 비교하면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프로 선수의 평가와 몸값으로 연결되고, 일본인 선수들이 예상보다 많은 금액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배경이 된다. 하지만 이정후에 대해선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만약 이정후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정말 많은 팀에서 선수 영입을 위해 포스팅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정후를 휘문고 1학년 때부터 지켜봤는데 그땐 키 크고 마른 체형의 컨택이 좋은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 데뷔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6시즌 동안 엄청난 선수로 성장했다. 이정후처럼 꾸준히 성장하고, 좋은 성적을 기록한 야수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정후만의 강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정후는 어느 정도의 몸값을 받게 될까. 요시다 마사타카가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할 당시 2021시즌 마치고 시카고 컵스와 5년 8500만 달러에 계약한 스즈키 세이야의 계약이 기준점이 됐다고 한다. 남궁훈 스카우트는 이정후와 요시다 마사타카는 다른 유형의 선수라 똑같은 기준점으로 몸값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먼저 이정후가 미국의 어느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느냐가 중요하다. 즉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에이전트가 나서 이정후의 이미지와 몸값을 올릴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좋은 계약을 하기 전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이정후의 가치를 올려줄 수 있는 에이전트를 만난다면 그다음이 몸값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정후의 기준점은 요시다가 아닌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었던 아키야마 쇼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키야마 쇼고는 2015년 일본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 안타인 216안타를 때려냈고, 2017~2019년 3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2019시즌을 마치고 아키야마는 신시내티와 3년 2100만 달러에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아키야마는 신시내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렸다. 2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24 21타점 OPS 0.594의 성적에 그쳤고, 홈런이 1개도 없었다. 계약 3년 차인 2022시즌 개막 로스터 진입에 실패한 뒤 방출돼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트리플A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바람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남궁훈 스카우트는 이정후의 몸값은 아키야마가 받은 연평균 700만 달러에서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출전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팀을 선택해야 한다. 김하성도 올 시즌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게 되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정후도 출전 기회를 많이 잡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팀 선택을 정말 잘 해야 한다.”
이정후한테 오는 3월에 시작되는 WBC대회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쇼케이스’가 될 전망이다. 남궁훈 스카우트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본선 1라운드부터 대회를 보러 다니기 때문에 WBC대회가 오픈된 큰 규모의 쇼케이스 무대가 될 수도 있다”면서 “한국 대표팀이 8강을 거쳐 4강에 올라 미국 마이애미로 향한다면 이정후한테 엄청난 기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궁훈 스카우트는 이정후의 보완점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흔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타자들한테 가장 중요한 게 빠른 볼 대처 능력이라고 말한다. 이정후가 삼성 수아레즈의 154km/h의 공을 제대로 스윙했을 때 파울이 돼서 네트 뒷면을 때리는 걸 보면 빠른 볼 대처가 되는 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르고 더러운 공이다. 150km/h 이상의 빠른 볼이 타자의 발목으로 꺾이고 자연 싱커가 되는 공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공은 KBO리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공이라 이정후가 미국 진출 후 가장 큰 숙제가 될 수 있다.”
‘빠르고 더러운 공’에 적응하려면 많은 출전 기회가 보장돼야 하는 터라 이정후가 향후 팀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는 게 남궁훈 스카우트의 설명이다.
이정후가 야구인 2세라는 점도 메이저리그에선 관심을 갖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등 아버지와 아들이 전·현직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야구인 2세 이정후는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것.
동부지구 내셔널리그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 A 씨는 이정후가 김하성처럼 고척돔 인조 잔디를 경험한 부분이 천연잔디의 메이저리그 구장에 적응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고척돔 인조 잔디는 수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곳으로 알려졌다. 고척돔에서 활약한 이정후가 중견수로 빼어난 수비를 보인 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한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다. 무엇보다 샌디에이고에서 수비로 인정받은 김하성이 고척돔 인조 잔디를 경험한 선수라는 사실과 이정후도 키움 히어로즈 출신이라는 점 등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스카우트 A 씨는 이정후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경우 연봉 8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정후의 기준점은 김하성이 될 수 있다. 김하성이 메이저리그 1년 차 때는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2년 차 때인 2022시즌에 공격과 수비 면에서 월등한 성적 향상을 보였다. 김하성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파악했고, 그걸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정후는 모든 지표에서 김하성보다 앞서 있는 선수다.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와 4+1년에 최대 39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그렇다면 이정후는 이보다 더 높은 몸값을 형성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정후의 연봉을 1000만 달러로 예상한다.”
스카우트 A 씨는 외야수가 부족한 메이저리그 팀들이 이정후한테 관심을 드러낼 것이고, 한국 선수한테 관심이 없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아키야마 쇼고한테 돈만 지불한 신시내티 레즈, 그리고 요시다 마사타카를 영입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정후한테 관심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이정후한테 적극적으로 반응할 팀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팀과 김하성이 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꼽았다. 샌디에이고 A.J. 프렐러 단장이 평소 동양인 선수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도 중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의 스카우트 B 씨는 요시다 마사타카의 몸값을 ‘오버 페이’라고 단정 지었다. 미국 현지 언론에서도 보스턴이 요시다에게 지불한 5년 9000만 달러는 두세 배 정도의 오버 페이라고 지적했다는 것.
“이정후가 요시다의 몸값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에선 요시다의 몸값이 실력에 비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의견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요시다가 2023시즌에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린다면 이정후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정후가 미국으로 넘어 온다면 많은 구단들이 관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우리 팀도 이정후한테 관심이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척돔 구장을 찾아가 이정후를 직접 관찰했고,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했다.”
스카우트 B 씨는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 한국인 스카우트를 고용하는 팀들은 모두 이정후한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포스팅 시스템이 진행된다면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키움 히어로즈는 스프링캠프를 미국 애리조나 다이아몬스백스 훈련장에서 치른다. 스카우트들은 이구동성으로 “키움 훈련장에 이정후를 보기 위해 많은 스카우트들이 몰려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면 한 시즌을 더 치러야 하지만 벌써부터 그 관심이 뜨겁다 못해 데일 정도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