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성적부진 겪으며 오히려 정신력 강화돼…2~3년 안에 빅리그 오르고 싶다”
마침내 덕수고 출신 심준석의 미국행 최종 행선지가 결정됐다. 심준석 측은 16일(한국시간)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계약에 사인했다고 발표하면서 오는 24일 미국으로 출국해 26일 피츠버그 홈구장인 PNC파크에서 정식 입단식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계약금은 100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심준석의 행선지와 관련해서 다양한 보도가 나왔다. 그중 피츠버그행이 가장 유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소문대로 심준석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과 인연이 많은 피츠버그 입단을 결정했다.
'일요신문i'에서는 피츠버그와 계약 합의를 이룬 심준석을 만나 미국 메이저리그(MLB) 무대에 도전하게 된 과정과 계약과 관련된 뒷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마침내 행선지가 정해졌네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마냥 설렙니다(웃음). 팀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좋은 팀으로 가게 돼 기쁘고, 가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이전에 보던 모습과는 달리 표정이 밝은데요?
“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는 이런저런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 내려놓고 최대한 즐기면서 훈련하고 있는 부분이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피츠버그 외에도 여러 팀들이 심준석 선수한테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피츠버그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피츠버그에선 지난해 구단 고위 관계자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제 경기를 지켜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지속적으로 저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고, 에이전트와 아버지도 저한테 가장 잘 맞는 팀이라고 말씀해주셔서 피츠버그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인터뷰할 때마다 ‘덕수고 심준석’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번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 심준석’이라고 말하니까 어색하긴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과 자부심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KBO리그 신인드래프트 이후 덕수고를 비롯한 타 팀 선수들 중 일부가 프로팀 지명을 받았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프로팀에 입단하고 마무리 훈련을 함께하는 모습을 지켜본 심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다 잘되길 바랐어요. 특히 덕수고 친구들이 프로에 많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수시로 문자하면서 응원과 격려를 주고받았습니다. 친구들도 제 미래에 대해 궁금해 했어요. 어디로 가는 건지, 미국 가는 게 잘 진행되고 있는지 많이 물어봤는데 제가 정확하게 대답해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구두로 모든 합의를 마쳐야 하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그냥 잘될 거라고만 말했던 것 같아요.”
덕수고 출신의 심준석은 최고 구속 157km/h를 기록하는 우완 파이어볼러다. 1학년 때 이미 150km/h를 넘긴 구속으로 인해 MLB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그로 인해 2022년 3월 MLB 슈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대리인 계약을 맺었다. 2022년 9월에 진행된 2023 KBO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전체 1순위 후보로 꼽혔지만 심준석은 드래프트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서 미국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KBO리그에 지명된 선수들과 달리 심준석의 피츠버그행 발표가 늦어진 건 해마다 1월 15일 시작되는 메이저리그 국제 아마추어 계약 사이닝풀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활약 중인 조원빈도 2022년 1월 15일 이후 계약이 확정되었다. 심준석은 최근 피츠버그와 구두로 합의를 마쳤고 16일 공식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고2 때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어요. 아마추어 선수로선 대단히 큰 용기를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만큼 MLB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MLB 영상을 챙겨 보며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더 열심히 노력해 큰 무대에서 야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KBO리그도 크고 어려운 리그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눈이 자꾸 MLB에 가 있더라고요.”
―아쉬웠던 건 MLB에서 뛰고 싶다고 말한 이후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고1과 달리 고2, 고3 성적이 점점 떨어졌거든요. 부상 등의 표면적인 이유 말고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었나요?
“선발로 나가지 못하다 보니 불펜에서 기회를 기다리다가 경기 상황에 따라 공을 던지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됐어요. 아마 제가 감독님이나 코치님한테 신뢰를 드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더 잘했더라면 등판 기회도 뒤따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KBO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하게 되면 유소년 발전기금 등 모든 학교 지원금이 5년간 중단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부분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미국) 가는 게 민폐인가?’ ‘학교에 피해가 크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저로 인해 후배들이 운동하는 데 지장을 받을까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MLB의 거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의 보라스 코퍼레이션과의 계약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아마추어 선수가 미국의 대형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은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거든요.
“저는 아직 학생이고 청소년일 뿐인데 웬만한 프로 선수들 못지않은 시선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전 그조차 관심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성적 부진으로 인해 심준석 선수에 대해 물음표를 갖는 스카우트들도 있었거든요. 고3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초조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요.
“덕분에 정신력이 강화됐습니다. 저도 모르게 위축된 부분이 있었는데 정신적으로 약해지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여론이 어떠하든 제가 할 일 하고, 열심히 훈련하고, 애쓰다 보면 제 진가가 드러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심준석은 좋은 성적을 냈던 고1 때와 달리 그렇지 못한 고2, 3학년 때의 차이에 대해 “고1 때는 ‘못 던져도 되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분위기였다면 이후엔 ‘주목받고 있으니 정체되면 안 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졌다”면서 “나도 모르게 눈치 보면서 야구를 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신에 대한 편견을 직접 깨주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피츠버그란 팀은 유독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심준석 선수한테 도움이 될까요?
“그럼요. 지금 피츠버그에서 뛰시는 선배님들과는 같은 리그에서 만나기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많은 조언을 받고 싶어요. 선배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고 계시기 때문에 저도 그 팀에서 뛸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루키리그에서 뛰게 될 텐데, 미국 생활하는 데 가장 걱정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런 건 없어요. 루키리그에서도 구속이 160km/h이 나오는 투수들이 수두룩하다고 들었어요. 그런 선수들과 부딪히다보면 오히려 배울 게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준석 선수의 장점에 대해 설명한다면?
“강한 직구랑 마운드에서의 자신감입니다. 앞으로는 그 장점을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사회인 야구선수 출신으로 심준석 선수의 야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거예요. 제가 잘할 때나 못할 때도 묵묵히 지켜보시면서 응원해주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좋은 선수로 잘 성장해야 할 것이고요.”
심준석은 목표를 묻는 질문에 강한 어조로 “2, 3년 안에 빅리그에 오르고 싶다”고 말한다. 그도 잘 알고 있다. 그 목표가 현실로 이뤄지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하지만 그 목표 안에는 자신감과 욕심도 숨어 있다. “이 선수는 가능성이 있다” “성공할 수 있는 선수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바람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