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가결 당론 정하고 ‘민주당 이재명 부결 내로남불’ 비판…민주당 “우리도 이상직·정정순 땐 가결”
#하영제 체포동의안 통과 파장
3월 30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하영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표결에 부쳤다. 표결 결과 재석 281명 중 찬성 160표, 반대 99표, 기권 22표로 가결됐다.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지 7일 만이다. 앞서 3월 20일 창원지검은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 의원은 2020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약 2년간 경남도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공천을 도와주는 대가로 예비후보자로부터 7000만 원을 받고 보좌관 등으로부터 5750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표결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수사 중 나온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가결을 요청했다. 한 장관은 “혹시 동료 의원이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는 것 아닌가 우려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돈을 받았다고 말하는 하영제 의원 육성 녹음,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폐쇄회로(CC)TV 등 객관적 물증이 많다”며 “하 의원의 일부 보좌직원들과 브로커 등이 하 의원으로부터 직접 부탁받거나 공천 청탁에 대한 대가로 자금을 주고받았다고 명확히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적 유불리나 상황론을 걷어내고 법과 상식을 기준으로 국민 눈높이만을 두려워하며 사건을 보고 판단해 달라”고 강조했다.
하영제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불구속 수사가 무죄 추정이라는 헌법 정신에 맞고 국민의 방어권을 보호한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지역 활동을 위해 속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보장하는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표결 이전부터 하 의원은 문자메시지뿐 아니라 전화를 걸어 동료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검찰의 주장은 많이 부풀려졌다’는 취지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고 한다.
무기명 투표이긴 하나 민주당에서 가결표를 적지 않게 던졌을 것으로 계산된다. 가결을 사실상 당론으로 한 국민의힘과 정의당 의원 110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3월 30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불체포특권 포기가 당론과 진배없는 상황임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는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이미 선언했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민주당 가결표를 두고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무도한 수사에는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로 그 입장을 뒤집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제출된 2건의 체포동의안(노웅래·이재명) 모두 부결시켰다.
한 장관은 체포동의안 가결 후 기자들을 만나 “(민주당 노웅래·이재명 의원을 포함한) 3번의 체포동의안 설명을 똑같은 기준으로 했다”며 “(앞선 표결과) 결과가 달라진 것은 저한테 물으실 게 아니라 안에 계신 의원들께 물으시라”고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꼬집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하영제 의원은 검찰 수사가 부풀려졌다고는 하지만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또 여당 의원이 야당 의원처럼 조작 수사나 표적 수사를 통해 정치 탄압을 받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의원들이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았겠나”라며 “우리가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일 때 이상직·정정순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야당일 때 부결시킨 노웅래·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과 전혀 다른 사안이다. 특히 두 의원은 하 의원과 달리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을 모두 통과시켰다. △2020년 회계 부정 및 불법 선거자금 등의 혐의를 받던 정정순 당시 민주당 의원 △2021년 이스타 항공 관련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민주당 출신 이상직 의원 △2021년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은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은 국회에서 가결됐다.
국민의힘에서 부결표를 던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특정 의원이 ‘불체포특권 포기 대국민 서약’을 진두지휘했다. 동료 의원 등에 대놓고 칼을 꽂겠다고 할 정도로 나선 이유가 뭐겠나. 공천을 받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면서 “국민의힘 의원 115명 가운데 58명만이 서명에 동참했다. 절반가량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지 않거나, 하영제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부결을 한 여당 의원들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표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 측은 (체포동의안) 찬성과 가결이 당론인 것처럼 입장을 말해왔지만, 하영제 의원 본인의 신상 발언과 지속적인 읍소, 개별 연락에 동정·이탈표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체포특권 폐지 공론화
체포동의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치권에선 이를 공론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3월 2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불체포특권은) 문제가 있는 제도”라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독재·군사 정권을 거치면서 불체포특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없으면 안정적인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 때문에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조항이) 헌법에 들어갔다. 지금은 여건이 많아 달라져서 폐지 문제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는 개헌과 직결되기 때문에 올해 중 개헌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2월 27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불체포특권 폐지는 이 대표의 불과 1년 전 대국민 약속”이라며 “정의당 의원들은 ‘불체포특권 폐지’라는 당론에 입각해 표결에 임할 예정”이라며 “만약 오늘 민주당이 정치 탄압이라는 논리로 이 약속을 저버린다면, 앞으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영원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불체포특권 관련 비판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군사 정권과 다를 게 뭐가 있나. 검찰을 앞세워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며 “반면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여야가 합의해서 ‘50억 클럽 특검법’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에 합의했다. 그제야 검찰이 이른바 ‘50억 클럽’ 대상자로 지목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