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번질 경우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영향줄지 관심…KT·현대차 “따로 드릴 말씀 없어”
검찰이 KT와 현대차그룹 간 거래 의혹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용성진)는 지난달 박성빈 전 스파크앤어소시에이츠(스파크) 대표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재계에서는 검찰이 KT와 현대차그룹의 일련의 '거래'에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구현모 KT 전 대표가 현직에 있을 당시 구 전 대표의 형이 설립한 에어플러그의 지분을 현대차가 2019년과 2021년 281억 원을 투입해 매입했다. 에어플러그는 지난해 8억 6600만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총 자산은 21억 5300만 원 수준. 또 KT는 2022년 자회사인 KT클라우드를 통해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동서인 박성빈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던 회사 스파크 지분 전량을 206억 8000만 원을 투입해 매입했다. 인수 당시 스파크의 자본 총계는 5억 2400만 원에 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시민단체로부터 KT 의혹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 없이 마무리되는 모양새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KT 일감몰아주기 의혹이다. 구현모 전 대표가 KT텔레캅의 일감을 시설관리업체이자 전직 KT 임원이 설립한 KDFS에 몰아주고 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를 진행한 결과 지난 8월 KDFS의 황욱정 대표를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당시 현직 KT 임직원 기소는 없었다.
검찰은 추후 구현모 전 대표 등 윗선으로 수사를 이어가기로 했지만 수사를 지휘하던 이정섭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 부장검사가 지난 9월 수원지검 2차장 검사로 승진 인사 발령이 나면서 수사 동력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왔다.
KT 관련 의혹은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소유분산 기업의 이권 카르텔을 지적했다. 이후 연임이 유력시되던 구현모 전 대표가 차기 대표에 최종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자진 사퇴했다. 이후에도 차기 대표이사 후보 1인에 오른 윤경림 전 사장도 자진 사임했다.
이정섭 차장검사의 빈 자리를 채운 용성진 부장검사는 시민단체가 고발했던 KT 관련 의혹 가운데 KT·현대차 거래 의혹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순환출자 구조인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이번 수사 향방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주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구현모 전 대표가 2020년 KT 수장으로 오른 이후 접점을 확대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현대오토에버 대표이사로 KT 출신인 서정식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해 선임했다. 현대오토에버는 정의선 회장이 지분 7.33%로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린 곳이라 정의선 회장의 지배구조 개선에 재원으로 사용될 것으로 주목받는 곳이었다. 서정식 대표는 2007~2014년 1월 KT에서 상무까지 올랐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것은 2018년이다. KT도 같은 해인 2021년 현대차 출신 윤경림 전 사장을 영입했다.
특히 KT와 현대차그룹은 2022년 75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맞교환하면서 관계가 깊어졌다. KT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 1.0%, 1.5% 확보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KT 지분 4.6%, 3.1%를 확보했다. 당시 KT와 현대차그룹은 사업적인 시너지를 위해 지분을 맞교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KT는 2022년 3월 정기주총 당시 최대주주 국민연금(7.99%)의 반대에 따라 박종욱 사내이사 선임이 무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2023년 3월 임기 만료인 구현모 전 대표 연임을 위해 우호세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중론이었는데, 그 역할을 맡아줄 곳으로 현대차그룹에 손을 내민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다. 주총에서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을 사용할 수 없지만 자사주를 매각하면 해당 지분을 가진 소유주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KT가 같은 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사주를 강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있는 현대차그룹 역시 우호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지분 맞교환을 통해 7.7%의 KT 지분을 확보하면서 오너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특히 KT가 지분을 확보한 현대모비스는 2018년 순환출자 구조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크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순환출자를 끊기 위해 현대모비스의 사업 부문을 분할하고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정의선 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가 이득을 보고, 현대모비스가 손해를 보는 합병이라며 반발이 일어나 수포로 돌아갔다.
눈길을 끄는 것은 KT·현대차그룹 지분 맞교환 직전인 지난해 8월 자회사를 새로 설립해 현대모비스의 몸집을 축소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가능성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2018년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순환출자 해소에 나설 경우 KT가 현대모비스 주주로서 ‘백기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이런 배경 탓에 검찰의 KT 수사가 현대차로 번질 경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차질이 예상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KT와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수사과 관련해서 따로 전할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