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능요원으로 휴니드·넥슨서 일해…논문 등에 ‘인턴십’ 빼고 LG화학 경력 기재도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1년 국방부에서 제출 ‘정부 고위층 자녀 병역 이행 현황’ 자료를 인용한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했을 때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들 김 씨는 2008년 7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산업기능요원은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병무청장이 선정한 병역지정업체에서 연구 또는 제조·생산 인력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기업엔 고급 인력을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요원은 군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막고 이를 하나의 스펙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에 따르면 김 씨는 2008년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국내 방산·항공 전문기업 휴니드테크놀러지스에서 일했다. 이후 2010년 6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게임업체 넥슨에서 일했다. 안규백 의원실 자료와 기간이 겹치는 것으로 보아 김 씨는 두 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두 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휴니드에서는 전술디지털정보망 연동통제시스템(Tactical Digital Information, Link Interface Control System)의 백엔드 개발을 맡았고, 넥슨에서는 프론트엔드 개발(Launch, Download Accelerator, Peer-to-Peer Network)과 백엔드 개발(Audio Encryption System)을 맡았다. 이를 통해 C/C++, Python, Java, SQL, HTML 등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알고리즘(algorithm), 자료구조(, Data Structure)를 습득했다고 명시했다.
특이한 점은 김 씨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요원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연세대 출신인 김 씨의 대학 전공은 컴퓨터공학이 아닌 화공생명공학이다. 고학력 공과대학원생들이 스펙을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전공과 비슷한 병역지정업체를 선정하는 것과 대비된다.
게다가 비전공자가 IT·게임 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시는 IT·게임업계에 값싼 산업기능요원 모시기 열풍이 불던 때다. 네이버·엔씨소프트·넥슨 등 기업들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이들이 터를 잡은 판교의 8할은 산업기능요원이 키웠다는 얘기가 돌 정도다.
물론 개인의 흥미나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프로그래밍 언어는 비전공자도 충분히 스펙을 쌓을 수 있기는 하다. 한 개발자는 “어느 곳에 취업하느냐에 따라 준비 기간이 달라지겠지만 평균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준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IT와 무관한 전공자가 해마다 모집 인원이 3명 이내인 방산업체의 시스템 개발에 투입됐으니 학생 시절부터 전공보다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았을 수 있다.
김 씨는 군복무 중 휴니드에서 넥슨으로 옮겼다. 당시 산업기능요원이 IT·게임업계에서 전직하는 것은 다른 업계보다 훨씬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즉 누군가 힘을 빌려 군복무를 한 게 아니라면 김 씨는 IT 분야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군복무를 하던 이 시기는 이명박 정부 때로, 김대기 비서실장은 이 시기에 통계청장,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등 고위직을 두루 거치고 있었다.
링크드인에 따르면 김 씨는 2012년 3월 LG화학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한다. 비슷한 계열로 직업을 선택하는 다른 산업기능요원과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지난 군복무 기간 3년을 허비한 셈이 됐다.
김 씨는 LG화학에서 2012년 6월까지 3개월 근무했다. 이후 10년 동안 LG화학 경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일요신문i’가 입수한 김 씨의 박사논문 ‘감사의 말(Acknowledgment)’에서 김 씨는 LG화학 전지사업본부에서 일하며 2차전지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얻었다고 서술했다.
김 씨는 2019년 미국 정보기술(IT) 업체 IBM 재직 당시 ‘SA 심포지엄 2019’에서 ‘IBM의 차세대 배터리 돌파구’라는 주제로 연설하기도 했다. 이때 김 씨는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전, LG화학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리튬이온 배터리팩 설계에 참여한 바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씨가 LG화학 경력을 활용한 건 한 온라인 매체 ‘서스테이너블 스카이스(Sustainable Skies)의 ‘SA 심포지엄 2019’ 소개 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김 씨가 코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LG화학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팩 디자인을 위해 일했다고 적혀 있었다는 점이 앞서 두 건과 달랐다. 링크드인에 따르면 김 씨는 코넬대에서 2016년 12월까지 있었고 곧바로 IBM에 입사했다. 졸업 후 LG화학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김 씨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LG화학 이력을 돌연 링크드인에서 삭제했다. 삭제 시기는 올해 1~2월 이후로 보인다. 그는 2020년 5월부터 배터리 전문 스타트업 ‘와트리’에서 일했는데, 2년 9개월이 경과한 시점까지 LG화학 이력이 존재했다. 김 씨가 LG화학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논문 등의 소개 글이 김 씨가 LG화학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할 수 있다.
‘일요신문i’는 이와 관련한 답변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자메시지에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