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집단처럼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얘기해…이번에 물러서면 의료 체계 붕괴 막을 수 없다”
―의대 증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국민들이 ‘응급실 뺑뺑이(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돌다 숨지는 사건)’, 소아 진료대란, 지방에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못 받는 문제 등이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그런데 최근 비급여 진료로 동네 병원 수입이 급증하면서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들이 그만두고 동네 병원으로 빠져나갔다. 그 증상이 급격하게 심각해졌다. 지금 같은 추세가 앞으로 1~2년만 계속되면 지방은 대학병원 말고는 중증 응급환자를 볼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다. 수도권도 조금 더 지나면 대학병원 말고 중환자 응급환자 진료 기능이 거의 붕괴하는 상황이 올 거로 생각한다.”
―의사 단체는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숫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가 뭔가. KDI 연구, 보건사회연구소 연구, 홍윤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연구 등이 모두 2050년을 기준으로 최소 2만 2000명에서 최고 2만 8000명이 부족하다는 연구를 내고 있다. 의사들은 동네 의원에 대한 접근성이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이야기다. 지방 소도시만 내려가도 동네에 의원이 부족하다. 군 단위로 내려가면 인구당 동네 의원 숫자는 (대도시에 비해) 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의사를 재배치하면 된다고도 한다.
“이미 의사들은 자기 진료에 익숙해져 있고, 숫자도 부족하다.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의사 수에 비해 동네 의사가 많은 것은 맞다. 그러나 저희 팀에서는 대한가정의학회와 동네 의원 숫자가 어느 정도 돼야 만성질환, 고혈압, 당뇨병, 천식 등의 합병증을 줄이고, 그로 인한 사망률과 진료비를 줄일 수 있는지 조사했다. 인구 1만 명당 10.7명 정도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10.7이라는 숫자는 대도시 동네 의원 숫자다. 대도시 빼고 나머지 지역은 동네 의원도 부족한 상태인 셈이다. 그리고 (동네 병원에서) 10년 근무한 의사를 어떻게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를 보라고 하겠나.”
―(정부의) 2000명 증원 숫자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지.
“부족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의사 수요는 2050년까지 6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2050년까지 다 배출시키려면 2040년까지는 입학 정원을 늘려야 된다. 15년 동안 6만 명을 늘리려면 매년 4500명을 증원해야 한다. 그러니까 2000명 증원은 부족하다.”
―2000명을 증원하면 의대 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상교육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6명이다. (의대가 아닌) 일반 대학은 한 명당 21명이다. 만약 2000명을 늘리면 교수 1인당 숫자가 2명대가 된다. 그래도 일반 대학보다 10배 정도 교수가 많다.”
―의사 겸직을 하는 교수들이 많다.
“(강의도 하고) 진료도 한다고 하지만, 1년에 학생 교육을 20~30시간 더할 만한 시간이 없겠나. (학생 수 대비) 교수 숫자가 많다.”
―의사 수입을 낮춰야 한다고도 했다.
“메디게이트 구인광고 사이트에서 지역별로 서울·경기·부산·대전·전남·경남 등의 의사 구인광고 350개를 조사했다. (의사 연봉) 평균은 약 4억 원으로 나왔다. 근무시간은 주 44시간 기준으로 환산했다. 성과급과 당직비 등은 제외했다.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다.”
―의대 증원으로 의사 공급을 조절, 연봉을 자연스럽게 낮추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가게 만들 방법이 없다. (연봉 평균이 4억 원인 상황에서는) 응급환자나 중환자를 보는 의사의 월급을 5억 원 이상은 만들어줘야 한다. 교수하고 종합병원 의사의 월급을 5억 원 이상으로 만들면, 국민들이 의사 인건비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돈이 아마 20조 원이 넘을 거다. 지금보다 보험료와 진료비를 약 20%를 더 내야 할 거다. 지금도 대한민국 의사 월급은 전 세계 최고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장들이 “학생 정원 증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를) 가깝게는 2020년부터 했다. 이전에도 의대 증원을 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때마다 의사들이 (정부를) 찍어 눌렀다. 이야기를 못 하게.”
―번번이 정부가 물러난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때는 지금처럼 의사 부족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의사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데 당장 눈에 드러나는 문제는 없었다. 지금처럼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진료대란 같은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시급하지 않다고 생각한 거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의사 겸직 해제 등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대) 비대위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다. 겸직 해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비대위 집행부가 내는 의견이지 (교수들) 전체가 합의한 의견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의견을 물어보거나 그런 적은 없다. 그리고 (겸직 해제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국민들은 소위 진료대란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어떤 구체적인 대안도 내놓고 있지 않다가 전공의들이 파업하니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정책 결정을 내린다고 (공지한) 시점이 올해(2024년) 2~3월이었다. 1년 전부터 이야기했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사회적 합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뒷다리 잡는 핑계같이 보인다. 2020년에도 그렇고, 불리한 정책을 이야기하면 늘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
―의료계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
“(국민들이 그동안) 의사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를 체감했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고 짧게 진료받고 나온다. 지방에 계신 분들은 서울로 올라온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으면 왜 그런 일들이 생기겠나. 2020년 파업 상황에서 의사들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실망감도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또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버리고 휙 떠나버리는 그런 모습, 대안 없이 의대 증원에 반대만 하는 모습, 국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발언들, 의대 교수들이 ‘학생과 전공의가 불이익을 받는 상황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식의 성명서를 내는 모습, 파업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없는 모습, 무슨 조폭 집단도 아니고 국민과 환자를 대변하는 전문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들의 행위로 인해서 고통받고 불이익을 받는 국민에 대해 최소한의 미안한 감정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게 누적된 거다.”
―의협 비대위가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거다. (의료계) 오피니언 리더들은 문제가 생기면 늘 정부를 비난하고 환자를 비난했다. 의사 업계 내부를 굉장히 강경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의사들의 생각이 국민하고 유리됐다.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그러니까 의사들이 대한민국은 의사가 안 부족하고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 정부는 나쁜 놈들이고, 무식하게 정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이 가능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 거다. 벼랑 끝 전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정부의 태도가 적절하다고 보는지.
“이번에 못 늘리면 앞으로 10년 안에 늘릴 수 있을지 20년 안에 늘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의사를 못 늘리는 동안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어가거나 고통을 겪을 거다. 그런데 지금 의사협회가 주장하는 것은 의대 증원 결정을 백지화하라는 거다. 일부 교수들이 증원 규모를 탄력적으로 500명 조정하는 한에서 합의하자고 하는 것은 대표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에 의협 집행부나 전공의 협의회에서 (이런 중재안이) 나온다면 그때는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대표성 없이 산발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에 정부가 반응을 보이면 의사협회나 전공의협의회는 폐지하라고 더 달려들 거다.”
―의대 증원 이외에 공공의대 설립 같은 인력 분배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이 아니다. 필수의료 패키지를 내놨다. 이를 들여다보면 지역 의료 문제나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들이 다 들어가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일 필요는 있다.”
―의료 공백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학병원들이 외래를 줄이고, 경증 환자 입원과 수술을 줄이고, 중환자와 입원 환자 진료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 대학병원 중환자 비율은 50%밖에 안 된다. 지금 남아있는 의사 인력을 중환자 진료에 집중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나.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겠나. 그런데 지금 정부는 물러서기 굉장히 어렵다. 이번에 의사들에 또 무릎을 꿇으면 복지부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정책과 기존에 못 해왔던 정책들을 하지 않고서는 지금 대한민국 의료 체계가 붕괴하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워낙 기형적인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