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성적표 부진에 폐배터리 재활용 등 신사업 성과 낼지 미지수
현대글로비스가 지난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적을 내놓았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5조 6832억 원, 영업이익 1조 5540억 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매출은 4.8%, 영업이익은 13.6% 감소했다. 4분기만 놓고 보면 매출 6조 5174억 원, 영업이익 3507억 원으로 각각 4.3%, 21.3% 줄었다.
2022년 대표이사로 선임돼 지난해부터 현대글로비스를 온전히 이끌고 있는 이규복 대표로서는 아쉬운 성적표다. 주가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최고 23만 원까지 상승했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이규복 대표 체제에서 20만 원을 돌파한 적이 없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와 기아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터라 현대글로비스의 부진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로부터 직접 얻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가 넘는다. 아울러 그룹사 일감까지 더하면 내부거래 비중은 70%를 웃돈다. 특히 지난해 그룹 계열사의 일감몰아주기 비중은 74.3%(전년 71.7%)에 달했지만 실적은 부진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규복 대표의 자질론이 나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20%를 가진 최대주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규복 대표는 부진한 실적과 주가 등 현재 상황을 반전하고자 여러 가지 경영 전략을 내놓고 있다. 그중엔 시장 흐름을 역행하는 모습도 보여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용 선박을 대거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자동차용 선박 확보에 실패한 현대글로비스는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실적 성장에 애를 먹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용 운용선박은 2021년 말 사선 32척, 용선 52척에서 지난해 2분기 기준 사선 32척, 용선 40척으로 12척 감소하면서 늘어난 물량을 놓쳤다.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6~10척의 용선 확보를 시작으로 자동차용 운용선박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문제는 현대차와 기아의 ‘피크아웃’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실제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 판매대수는 올해 들어 둔화하고 있다. 현대차가 지난 1일 공개한 1분기 누적 세계 판매 대수는 100만 2608대로 전년보다 1.9% 줄었다. 기아는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한 76만 529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성장 둔화 가능성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양진수 현대자동차그룹 경제산업연구센터 자동차산업연구실장(상무)는 지난 1월 한국자동차기자협회(KAJA) 신년 세미나에서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성장이 전년 대비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 실장은 “지난해 완성차 업체들의 공급이 정상화되며 미국과 서유럽 중심으로 대기수요가 실현됐고 인도시장이 고성장을 지속하며 회복세를 견인했다”며 “올해는 주요 시장의 대기수요 소진과 금리인상 영향이 상반기에 집중됨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복 대표가 내세우는 신사업 전략에도 의문이 따른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3월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에 △폐전지 판매 및 재활용업 △비철금속제품의 제조 및 판매업 등을 추가했다. 이규복 대표는 당시 주총에서 “올해 전기차(EV)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가시적인 사업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국내, 인도네시아, 미국, 유럽 등 지역별 특성에 맞는 셀 스크랩 및 폐차장 전처리 거점 및 설비 구축작업을 준비해 실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확대는 사실상 정해져 있는 미래라 배터리 관련 기업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테슬라 등의 실적 부진으로 당분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올해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