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차세대칩 ‘윌로우’ 공개 이후 급등세…적정주가 산정 어려워 신중론도 비등
지난해 12월 9일 구글이 차세대 양자컴퓨터 칩 ‘윌로우(Willow)’를 공개했다. 구글은 이 칩이 슈퍼컴퓨터가 10조 7000억 년 동안 수행해야 할 계산을 단 5분 이내에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불가능의 벽을 넘어선 셈이다. 고전적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이 “거의 30년 동안 추구해 온 양자 오류 수정의 핵심 과제를 해결했다”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증시에서 관련주들이 폭등했다. 지난해 12월 초 3달러에 거래되던 리게티 컴퓨팅(RGTI) 주가는 2일 20달러까지 폭등했다. 같은 달 디웨이브(QBTS) 주가도 3달러에서 10달러까지 급등했다. 퀀텀컴퓨팅(QUBT)은 7달러에서 22달러까지 치솟았고 30달러 초반이던 아이온큐(IONQ)도 50달러까지 상승했다.
그런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지난 1월 7일(현지시각) ‘CES 2025’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까지는 2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같은 달 10일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양자컴퓨터가 유용한 패러다임이 되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의 생각”이라고 거들었다. 두 IT 거물의 발언에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폭락했다.
신중론의 근거는 이렇다. 일반 컴퓨터는 원자보다 작은 전자(電子, Electron)를 다룬다. 양자컴퓨터는 전자보다 더 작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단위인 양자(量子, Quantum)로 구동된다. 양자를 다루려면 별도의 물질이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회로다. 구글의 윌로우도 초전도체를 통해 작동한다. 초전도체는 극저온 환경이 필수다. 엄청난 장비와 비용이 필요하다. 상용화까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 신중론의 골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자컴퓨터 업계가 반박에 나섰다. 인공지능(AI) 역시 오랜 기간 과학계의 숙제였지만 2022년 혜성처럼 나타난 챗GPT로 혁명적인 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구글의 양자컴퓨터 칩도 불과 3년 만에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는 점도 강조했다. 두 거물의 발언을 달리 풀면 10년이나 20년 안에 양자 컴퓨터 관련주의 시가총액이 수조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월 15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급반등한다. 퀀텀컴퓨터가 55%, 아이온큐가 33%, 리게티가 22%나 급반등했다.
양자컴퓨터 관련주가 꿈틀거린 것은 구글의 발표가 이뤄지기 전인 지난해 11월부터다. 국내에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양자컴퓨터 주식을 사들인 것은 구글의 발표 이후다. 주가가 상당히 오른 시점에 매수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지난 1월 15일 종가기준 시가총액은 아이온큐가 85억 달러, 리게티 컴퓨팅이 30억 달러다.
지난 1월 7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아이온큐 주식 보관금액은 30억 9000만 달러로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미국 주식 5위였다. 리게티 컴퓨팅은 7억 5008만 달러에 달했다. 시가총액 대비 보유액을 보면 서학개미들이 양자컴퓨터 관련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추론이 가능할 만하다. 특히 아이온큐는 윌로우가 택한 초전도체 방식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다. 양자컴퓨터 권위자인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공동창업자이고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등이 아이온큐 투자자다.
지난 1월 15일 반등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올해 최고가 대비 리게티 컴퓨팅은 50%, 퀀텀 컴퓨팅은 40%, 아이온큐는 20%가량 하락했다. 구글의 발표 이후 이들 주식을 샀다면 상당한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매출이나 이익 면에서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 적정주가 산정이 어렵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주가가 움직일 정도로 변동성이 크다. 돈의 힘으로 주가가 급등하다 보니 매물이 쏟아지면 주가가 급락하는 구조다.
증권가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부쩍 늘었다. 기대만으로 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는 평가다. 2021년 메타버스, 2000년의 인터넷 버블 붕괴 때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11월 이후 AI 관련주가 급등했지만 엔비디아 등 AI 운영을 위한 데이터센터에 기업들의 관련 투자가 증가함에 따른 수혜주들이 많았다. AI 수혜주는 주가 상승이 매출과 이익 증가세와 함께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번 양자컴퓨터 관련주와 차별화된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실제 신기술의 수혜 여부보다 시장의 투기적 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초 양자컴퓨터 관련주가 최고가를 기록했던 시점은 나스닥이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시기와 겹친다. 이후 미국의 고용지표 호조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를 중단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고 이는 증시 거품에 대한 경계로 이어졌다. 2만을 넘었던 나스닥 지수는 지난 1월 13일 한때 1만 9000선 아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12월 물가지표가 예상보다 많이 오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금리 우려가 완화됐고 1월 15일 나스닥은 크게 반등했다. 나스닥의 움직임이 양자컴퓨터 관련주의 주가 흐름과 일치한 셈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 가격 추이다. 비트코인 등 현재 주요 가상자산들은 모두 블록체인 기술 기반이다. 현재 기술로는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화가 핵심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연산 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현재 가상자산들의 암호체계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양자컴퓨터 관련주와 가상자산의 움직임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트럼프 후보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적극 후원한다고 공언하면서다. 구글의 윌로우 칩 발표 이후 하락세를 보였지만 낙폭이 크지는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나스닥과 마찬가지로 지난 1월 6일 10만 달러를 회복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나타나며 증시가 주춤해지자 나스닥과 함께 미끄러지다 15일 반등세를 보였다. 양자컴퓨터에 대한 기대가 비트코인을 누를 정도는 아닌 셈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구글 윌로우 발표 이후 해외 언론들은 연구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양자컴퓨터 상용화까지는 많은 과제들이 남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양자컴퓨터 관련주들이 폭등할 때도 소식을 많이 다루지 않았다. 정작 윌로우를 개발한 구글(알파벳A) 주가는 지난해 12월 15%가량 오른 이후 횡보하고 있다. 구글과 함께 양자컴퓨터 분야의 양대 강자로 꼽히는 IBM 주가는 윌로우 발표 이후 오히려 내리막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