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이뤄낸 환상적인 ‘모자’ 케미스트리 “양동근, 저를 진심으로 만들었죠‘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강애심은 ‘오징어 게임2’에 캐스팅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캐스팅 확정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하며 “내가 잘못해서 작품에 마가 끼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는 그는 대본 리딩 날에야 겨우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시청자들은 강애심을 시즌 2에서 처음 보게 됐지만, 그는 황동혁 감독이 만든 이 세계에 생각보다 더 일찍 빠져들었다고도 덧붙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알리 역을 연기했던 아누팜하고 제가 독립영화를 같이 찍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누팜이가 ‘저 오징어 게임 찍고 왔는데 재미있었어요’ 그랬는데, 사실 전 폭력적인 장르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제목도 처음 듣고는 ‘오징어가 뭐야, 재미없다’ 이러고(웃음). 나중에 이슈가 되고 나서 보게 됐는데 2편까지 보면서도 피가 낭자한 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안 볼래, 안 볼 거야’ 하다가도 곁눈질하면서 다 봤죠(웃음). 끝까지 다 보고 나니 이런 작품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사람 간에 계급 격차가 있고, 사람을 말처럼 취급하는 내용을 ‘위엣것들’이 꼭 봐야 한다(웃음)!”
배우로서 연기 무대에 올라 제법 오랜 시간을 누군가의 엄마로 보냈던 강애심은 ‘오징어 게임2’에서도 ‘강인한 엄마’ 장금자로 분해 절절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철이 들어도 한참 들고 남았을 장성한 아들의 도박 중독 탓에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살인 게임’ 한복판에 뛰어들 정도다. 모든 빚을 갚고 맘 편한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지금은 죽거나 죽여야만 해방될 수 있는 이 게임 속에 함께 참가한 소중한 아들 용식(양동근 분)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 됐다.

“금자가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참전하려는 아들 용식이를 막죠. 사실 그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용식이는 내 아들이잖아요. 내가 열 달이나 배 앓고 낳은 아들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인 게 당연하죠. 금자는 잔 다르크도 아니지만 만일 자기 스스로 남을 위해 희생한다면 명예욕을 위해서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로서 이 작품에서 부여되는 금자의 성격상 반드시 아들을 우선하는 게 맞는다고 봤어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용기가 있는 엄마는 짝을 이뤄 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죽게 되는 ‘둥글게 둥글게-짝짓기 게임’에서 용식의 손을 놓치고 만다. “엄마랑 함께 가야 한다”며 울부짖던 아들이 자의인 듯, 타의인 듯 엄마로부터 등을 돌려 다른 짝과 함께 방으로 도망치듯 달음질하던 그 장면에서 금자의 얼굴에는 여러 겹의 그림자가 덧씌워진다. 아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나 슬픔, 또는 원망일 수도, 죽음에 대한 체념일 수도 있는 이 얼굴에 대해 강애심은 “결코 분노나 원망일 수는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때 제 표정에 원망은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아요. 그저 ‘일단 아들은 살았어, 그럼 난 이제 어떡하지? 누구를 찾아야 하지?’라는 고민으로 끝났죠. 사실 원래 찍은 장면은 금자가 용식이를 향해 그냥 가라고 하는 거였어요. 나는 완전히 포기하고, 아들이 간 것만을 바라보는 표정이었는데 이병헌 씨가 같이 모니터링하면서 저 장면이 ‘붉은 수수밭’의 공리 같다고 해주셔서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황동혁 감독님이 나중에 오셔서 다시 찍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마 너무 초연해 보여서였던 것 같아요. 금자는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그저 인간이니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거든요.”

“참가자들이 게임을 더 진행할지 말지를 고르는 두 번째 투표에서 금자는 용식이에게 ‘X’를 누르라고 하지만 용식이는 O를 누르죠. 그러고선 엄마한테 ‘나 사실 빚이 더 있어’하는데 촬영할 때 그 대사가 저한테 ‘확’ 오더라고요. 원래 그 장면에선 슬픔보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웃음). 양동근 씨는 정말 제가 진심으로 연기하게 해줘요. 사실 자신에게만 몰입하다 보면 초점이 자기한테 안 오는 신에선 대충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양)동근 씨는 정말 진심으로 저를 대해주니까, 저도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오는 거죠.”
1981년 연극 ‘더 넥스트’로 데뷔한 뒤 배우로서 40여 년간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강애심에게도 ‘오징어 게임’이 일으킨 신드롬은 그야말로 ‘신세계 별천지’였다. 작품 공개 전 홍보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K-콘텐츠에 열광하는 해외 팬들을 만난 것도 처음 겪는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오는 6월 27일, 시즌 3의 공개를 앞두고 생존자 가운데 한 명으로서 엄마 장금자가 보여줄 활약상에도, 배우 강애심이 보여줄 ‘연기 차력쇼’에도 국내외를 막론한 기대가 모이는 가운데 그의 포부를 살짝 들어봤다.
“제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아예 안 해요. 동근 씨가 앱도 깔아줬는데 아직 용기가 없어서 들어가 보질 못했어요. 그래도 작품 댓글은 몇 개 봤거든요. 분명히 좋은 댓글도 많았는데도 ‘할머니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지겹다’는 말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나 몰라(웃음). 그래도 호평 댓글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이분 에미상 탈 것 같다’는 것! 아마 시즌 3까지 가면 시상식을 한 번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