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역으로 국내외 호평…“인물 설정 결코 희화화돼선 안 된다 생각 타협 없었죠”

“‘오징어 게임2’가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저희 담당자와 작품 반응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제의 사진을 발견했고, 일정 때문에 부랴부랴 나서는 길에 그 사진을 담당자분께 DM(쪽지)으로 보낸다는 게…. 저 자신도 납득되지 않는데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올라가 버렸더라고요. 항간에는 제가 부계정이 있어서 그쪽에 올리려다 잘못 올라갔단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계정 하나 외엔 없습니다. 당연히 그 사진은 바로 지웠고, 문제의 영상도 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휴대전화를 만지기도 싫을 정도예요.”
이 논란만 제외한다면 박성훈은 단연 ‘오징어 게임2’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특전사 출신으로 완전한 여성이 되길 꿈꾸는 트랜스젠더 조현주를 연기한 그에겐 ‘오징어 게임2’ 공개 직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호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국내 시청자들에겐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악역 전재준으로 익숙했던 그가 180도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작품 공개 전부터 이목이 집중되던 차였다. 어떻게 ‘전재준’에게서 ‘조현주’를 뽑아낼 수 있었을까. 박성훈은 그 시작이 2021년에 출연했던 KBS2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희수’였다고 지목했다.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유독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을 많이 받게 되는 트랜스젠더 입장이지만, ‘오징어 게임2’ 속 현주는 살인 서바이벌 게임 속에서조차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전 시즌의 파키스탄 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처럼 ‘인간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그를 연기하기 위해 박성훈은 황동혁 감독이 귀띔해준 전사를 바탕으로 실제 트랜스젠더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더해 캐릭터의 레이어를 쌓아 올렸다고 한다.
“황 감독님이 알려주신 현주의 본명은 ‘조현준’이에요. 현주가 특전사를 선택하게 된 계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LGBTQ(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편견이 배경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주도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 왔을 거예요. 그러다 ‘차라리 특전사를 가면 더 남자다워 질 수 있지 않을까, 남성성을 지키면 괜찮아질까’ 하면서도 ‘하지만 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데’라는 고민이 20대 초반 현주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소용돌이쳤을 거고요. 고 변희수 하사의 사건처럼 현주도 굉장히 많은 벽들에 부딪히고, 여러 편견 속을 살아야만 했을 거라고 감히 생각했죠.”

“절대로 현주가 희화화되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과도한 음성의 변화나 과장된 제스처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감독님께서도 매우 동의해주신 부분이고요. 제가 워낙 목소리가 저음이라 (여자처럼) 많이 꾸미면 감정의 진실성이 떨어지게 느껴져서 감독님과 함께 적당한 톤을 잡아나갔죠. 특히 현주가 목숨을 걸고 게임하는 긴박한 상황에선 목소리가 꾸며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그런 순간들에 현주의 꾸밈없는 목소리와 제스처가 나와야 진짜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다만 트랜스젠더는 현주의 여러 특징 가운데 일부이고, 전체적으로는 그가 가진 리더십이나 인간애적 면모, 현주가 어떻게 사회와 사람들을 바라보는지 이런 것에 더욱 집중하고자 했죠.”
이타적이고 담대한 성품을 가진 현주는 전 시즌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이 그랬듯, 시즌 2의 결말에 이르기까지도 주변인을 믿고 지키려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성 확정 수술을 받고 꿈에 그리던 태국에서의 새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살인 게임의 상금이 꼭 필요하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시즌 3에서는 그런 현주의 ‘이타심’이 과연 ‘이기심’으로 변질될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인간애를 발휘할 것인지가 성기훈의 최종 행보와 함께 국내외 시청자들의 가장 큰 관심이 모이는 지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한편으로, ‘오징어 게임2’로 박성훈에겐 “또 다시 이름을 잃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따라 붙기도 했다. 이제까지는 전작인 ‘더 글로리’에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악역 캐릭터 ‘전재준’의 이름이 본명보다 더 많이 불렸었다. 전재준의 그림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이번엔 당분간 ‘조현주’로 기억될 예정이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남을 만한 캐릭터를 완성한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박성훈 역시 이 기분 좋은 ‘이름의 상실’을 만끽할 참이라고 웃어 보였다.
“저는 사실 전재준에게 참 감사해요. 이전까지는 저라는 배우를 설명하려면 여러 수식어가 필요했거든요. ‘왜, 어떤 작품에 나온 어떤 애 있잖아’라고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전재준 세 글자만으로 저를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수식어가 생긴 거니까요(웃음). 참 뜻깊고 감사한 일이죠. 어떤 분들은 제가 전재준의 이미지를 빨리 탈피하고 싶어서 완전히 반대되는 역할인 현주를 선택했다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징어 게임2’ 공개 초반에 후기를 찾아보니 ‘재준 언니’ ‘전재순’이라고 불러주셨는데(웃음), 나중엔 ‘현주언니, 현주 누나’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두 이름 다 저한테는 선물 같은 이름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