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주최 대회 불참·자국 리그 외국인 출전 금지…왕년의 강자 마샤오춘 “LG·삼성 제품 불매” 선동
#중국, 한국 주최 바둑대회 보이콧 선언
1월 23일 사건 직후, 중국기원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판정은 세계 바둑 대회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치는 심각한 사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한국기원이 주최하는 국제 바둑대회 참가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기원 관계자는 “세계대회에서는 참가국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통일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선수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월 25일에는 2025년 중국갑조리그와 여자갑조리그 등에 외국 선수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9단 등 한국 기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다. 중국 측은 이번 결정을 자국의 후진 양성 강화와 공정한 경기 환경 조성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LG배 결과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만약 중국기원의 조치가 그대로 시행될 경우, 지난해 중국갑조리그에서 3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신진서 9단과 1억 8500만 원을 벌어들인 변상일 9단은 막대한 금액의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또한 남녀 20여 명의 한국 기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예상되는 전체 경제적 손실은 1000만 위안(약 2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반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기원은 2월 6일 개최 예정이었던 제1회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 1차전에 불참을 통보했다. 이 대회는 리그전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중국에서는 커제 9단, 쉬자양 9단, 투샤오위 9단이 출전할 계획이었다. 결국 중국 측의 갑작스런 불참 통보에 주최 측은 예정대로 개막하지 못하고 대회 연기를 발표한 상태다.
더불어 17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차전과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진행 예정인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번기의 개최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 내 여론도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왕년의 강자 마샤오춘 9단은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은 정말로 뻔뻔하다. 진정한 바둑 팬이라면 한국 제품, 특히 LG와 삼성 브랜드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펼쳐 커제를 지지해야 한다”라고 선동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의 결말을 지켜보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한국 기사들이 중국갑조리그에 출전할 수 있겠는가. 이기기 위해 심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세계대회 우승자라니 부끄럽다”라며 한국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중국 바둑의 원로 녜웨이핑도 “이번 LG배 결승은 바둑계의 비극이다. 수십 년간 많은 바둑대회가 열렸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커제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한국 측은 더 신중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커제의 기권은 매우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는 결승에 오르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국 측은 그의 노고를 존중하지 않았다. 바둑은 본래 신사적인 스포츠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 측이 대국자인 커제에게 강압적으로 행동한 심판들을 징계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이며 한국 측에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중 양국의 시각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여주며,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한편 당사자인 변상일 9단은 시상식에서 “승부가 찝찝하게 끝나 마음이 불편하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에서는 사석을 어디에 놓든 상관없기 때문에 커제가 그런 점을 숙지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석 관리 규정에 대해서는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룰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부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준우승을 차지한 커제 9단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국기원, 논란이 된 반칙패 규정 폐지 결정
한국기원은 설 연휴가 끝난 2월 3일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사옥에서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관련 중국 측 입장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의 건’을 논의했다. 3시간여의 회의 끝에, 논란이 됐던 사석 보관 규정 변경 등 반외 규정에 의한 경고에 대해서는 누적 반칙패 규정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운영위원회 회의 후 “LG배에서 논란이 된 사석으로 인한 경고 누적 반칙패 규정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어 “중국기원 측과 신속히 협의해 곧 열릴 예정인 농심배와 쏘팔코사놀 대회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앞으로는 모든 세계 대회에서 문제없이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 일본과 적극 협의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기원의 결정이 중국 측에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바둑계뿐만 아니라 양국 간 문화 교류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향후 양국 정부와 바둑계의 대화를 통한 원만한 해결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