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청구인 적격 문제 입장 추가 설명 요구…일부 재판관 절차적 흠결 제기 가능성
#이례적으로 빨랐던 심의
단심제의 헌재는 ‘결과’가 가지는 의미나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심리를 신중하게 하는 게 원칙이다. 기수 중심의 법조계 문화 탓에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일부러 후배부터 발언을 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헌재가 사뭇 달랐다. 최 권한대행은 “여야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난해 12월 31일 마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보류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월 3일 최 권한대행의 임명 보류에 대해 국회를 대표해 권한쟁의를 청구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여야 합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원내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헌재는 1월 22일 열린 첫 변론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곧바로 2월 3일 선고할 것을 예고했다. 최 권한대행 측은 “합의 여부를 더 따져봐야 한다”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지만 헌재는 이조차 3시간 만에 기각했다.
하지만 선고가 다가오면서 헌재의 ‘졸속 심리’가 화두에 올랐다. 최 권한대행의 잇단 증인 신청을 기각한 것은 물론 우원식 국회의장의 권한쟁의 청구 과정도 ‘적법성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원식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회로 청구했지만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이에 최 권한대행 측은 선고 이틀 전인 1일 “우 의장의 단독 심판 청구는 부적법해 각하해야 한다”는 서면을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회 대리인단이 “의결 없이도 가능하다”는 입장임에도 법조계에서 ‘헌재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에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문항을 놓고, 여야 합의 등을 명분 삼아 임명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인용)하려 했다가 일부 재판관들의 반발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특히 이번 권한쟁의 심판은 최 권한대행에 대한 권한쟁의를 인용하려면 재판관 과반(5명)의 찬성이, 헌법소원에 대해 ‘임명 보류가 위헌’이라고 선고하려면 6명 이상의 찬성이 각각 필요하다. 현재 8명의 구성 속에서 2~3명의 재판관이 ‘변론 재개’를 요구하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헌재는 2월 3일 오전 급하게 선고를 연기하며 국회 측에 “6일까지 청구인 적격 문제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헌재가 ‘9인 재판관 구성’을 너무 서두르다가 절차적 흠결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헌재 근무 경험이 있는 A 변호사는 “헌재가 3일 선고를 예고했다면 설 연휴 직후인 31일 즈음에는 이미 밑에서 분석을 마친 보고서가 다 올라간다”며 “선고를 예고해 놓고 보고서도 다 받은 상황에서 선고를 미룬다는 것은 일부 재판관들이 ‘왜 제대로 다 변론을 진행하지 않았느냐’며 반발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헌재는 다수결로만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1~2명의 재판관만 반발해도 선고 지연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서 스스로 이렇게 절차적 빈틈을 노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청구인 적격 문제를 빠뜨렸다면 그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 연구관으로 근무한 바 있는 B 변호사는 “우원식 의장이 권한쟁의 심판을 낼 때,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적법’한 것인지는 무조건 다퉜어야 하는 부분”이라며 “언론에서 지적이 나오자 이를 뒤늦게 확인하고 수습하기 위해 변론재개를 선택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헌재 공세 강화가 윤 대통령 선고에 미칠 영향
일각에서는 헌재에 대한 ‘정치적 공세’가 강화되는 것이 되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을 중심으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야권 인사들과의 친분’이 계속 거론되는 상황이다. 정치 편향을 이유로 헌재의 심리에 대해 공세가 계속될수록 헌재 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결정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지점이다.
앞선 A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에도 8명의 재판관이 모두 탄핵 인용을 결정한 것은 재판관 중 ‘소수 의견’이 향후 다른 평가를 끌어내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우려까지 감안한 것”이라며 “문제는 지금 헌재는 정치적으로 더 큰 공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 역시 재판관들이 결정에 따른 부담을 고려해 가급적이면 헌재 재판관들이 전원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헌재가 ‘최 권한대행의 마은혁 후보자 임명 보류는 위헌·위법’이라고 결정하더라도 윤 대통령 탄핵 심리 참여가 쉽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헌재는 마 후보자 임명 보류에 관한 권한쟁의심판을 오는 10일 재개하기로 했는데, 한두 차례의 변론 일정을 예상한다면 2월 말이나 3월 초 중 선고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진보 성향인 마 후보자의 임명이 3월 중에나 가능한데 이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막바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 사건 변론에 거의 참여하지 않은 채로 결정에만 참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여지가 높다.
자칫 심리를 다시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 이전에 진행됐던 증거 조사 등을 다시 하는 절차’를 밟도록 돼 있다. 헌재는 통상적으로 사건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간략하게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을 활용했지만 윤 대통령 측이 이를 거부할 경우 전체 일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앞선 B 변호사는 “문형배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4월 18일 이전에 선고하고 싶은 헌재와 그 뒤로 미루면서 최대한 시간을 벌고 싶은 윤 대통령 측의 첨예한 입장 차이가 마은혁 후보자의 임명 보류 권한쟁의 심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며 “헌재 재판관이 8명이나 있는데 이런 지점들을 왜 놓쳤는지, 헌재가 왜 스스로 권위를 깎아먹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