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법관들 정치성향 공개가 사법부 불신 자처” 비판
#형소법 적용 예외 적시 논란
법원은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서울서부지법의 ‘결정’에서부터다. 앞서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2월 3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 군사상·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하는 조항들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이 한 것인데 한 달여가 돼가고 있지만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순형 부장판사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 연구회 출신인 탓에 정치적 판단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법원의 내부망 코트넷에도 이 결정에 대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1월 초 성금석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 제110조·111조의 적용 예외를 명기한 체포(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이 사실인지, 확인 및 진상 규명과 적법한 조치를 희망한다'며 '판사는 법을 지켜야 하는 공직자일 뿐 재판을 하면서 법 위에 서거나 법률 위에 군림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판사와 법원은 입법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할이 ‘서울중앙지법’이라고 법에 명시된 공수처의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청구를,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해 준 것도 해석의 범위를 스스로 넓게 잡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서부지법은 영장을 다 발부해주면서 검찰의 윤 대통령 구속기한 연장 신청은 서울중앙지법이 ‘법에 명시된 권한이 없다’며 불허한 것 등이 법원의 ‘법원 만능주의, 법원 맘대로’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1월 23일 공수처로부터 윤 대통령 사건을 이첩받은 뒤 구속기간 연장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지만 영장전담판사가 ‘법에 보완수사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불허했고, 재신청 역시 허가하지 않았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법은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관할권도 스스로 무시하며 넓게 해석해 영장을 발부했고, 정작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보완수사 시도를 좁게 해석해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냐”며 “법원은 항상 스스로에게만 관대하고 다른 조직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엄격해 문제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애초에 공수처가 수사를 한 명분 중 하나는 직권남용을 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지만, 결국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을 빼고 내란죄만 기소하지 않았느냐”며 “공수처의 수사가 적법한지도 다퉈야 하는 법원이 ‘형소법 제외’까지 적어가며 공수처 수사를 도우려 한 것이 과연 공정하냐는 게 검찰 다수의 시선”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서부지법 사건은 대거 ‘영장 발부’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건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기준’을 보여준 것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법원이 아니라 타 정부기관에서 난동을 부린 세력이 있었다면 과연 법원이 이처럼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을 것인지에 대한 법조계 비판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서울서부지법에 불법 난입해 난동을 벌인 피의자에 대해 검찰 등이 영장을 청구한 것은 58명.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 홍다선 판사와 강영기 판사는 2명을 제외한 56명에게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밖에도 추가로 영장이 발부된 이들까지 합치면 모두 62명에 달한다. 이들 중 20여 명이 낸 구속적부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이나 검찰 등에서 ‘검찰 내에서 난동이 발생해도 저렇게 영장을 내주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법원은 재판정 내 난동 등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도, 경찰이 폭행을 당하고 공무원이 폭행을 당하는 것에는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을 이유로 구속영장도 기각하는 곳”이라며 “다른 조직에는 엄격한 법리를 적용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예민하게 작용하는 게 과연 공정한 것이냐”고 토로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검찰 등 타 기관에서 발생한 난동이었으면 영장 중 20~30%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엘리트 조직의 특성이 있는 탓에 각기 다른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하고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판사와 사법부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에는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해 엄격한 판단이 나온 것 같은데 비상계엄 파동 이후 공정함을 원하는 국민들의 시선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판사들이 다른 사건들과 견주어 볼 때 지나치게 엄격하게 판단해 논란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헌재도 정치 성향 치우침 논란
헌재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에 대한 ‘정치 편향’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0여 년 전 소셜미디어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교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정치권의 공격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재판장인 문 권한대행은 과거 페이스북과 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이재명 대표와 여러 차례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재명 대표와 정치적·개인적 현안에 대해 소통했다.
판사 시절 법원 내 진보 성향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그는 2010년 자신의 트위터에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미선 재판관은 친동생인 이상희 변호사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산하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은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고,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정계선 재판관은 남편인 황필규 변호사는 작년 12월 비상계엄 직후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국 선언에 동참한 점이나, 국회 측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 재단에 근무 중인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를 이유 삼아 정 재판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다가 하루 만에 기각됐지만, 문 권한대행과 이 재판관 등에 대해서도 기피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권에서도 문권한대행과 이·정 재판관이 탄핵심판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헌재는 국회가 추천한 마은혁 후보자 임명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보류한 것이 위헌인지 여부를 오는 3일 선고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자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헌재는 사법에 발을 딛고 서서,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았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몇몇 재판관들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법관은 “그래서 과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판사들이 개인적인 정치 성향을 SNS에 드러내는 것을 우려하고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추진했는데, 이를 놓고 몇몇 판사들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마라’고 반발했다가 작금의 상황까지 온 것 아니겠느냐”며 “법관이 정치적 신념과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이를 드러내면 결국 정치 사건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법원과 헌재 모두 부메랑으로 돌려받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