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소주는 입에도 안 댔을 만큼 몸 관리…리그 우승도 코리아컵 3연패도 원해”
선수로서 열다섯 번째 시즌이다. 그만큼 시즌을 준비하는 경험도 쌓였다. 그는 "이제는 이런 과정들이 익숙하다"면서 "지금 몸을 힘들게 만들어야 시즌을 끌고 가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은 조금 일찍 시작한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몸 상태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을 더 힘들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지난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김인성이었다. 포항의 코리아컵 2연패를 이끌었다. 라이벌팀 울산 HD와의 결승, 1-1로 맞선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교체로 투입되면서 솔직히 '내가 골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팀이 이기기만을 바랐다. 서울에서 하는 중립 경기장에 팬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기지 못한다면 충격이 컸을 것 같았다. 승부차기도 너무 하기 싫었다. 울산 골키퍼가 조현우이지 않나."
긴 커리어에서 머리보다는 발로 포인트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결승골만큼은 헤더로 넣었다. 그는 "생각을 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점프를 해서 머리를 갖다 댔다"면서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내가 어떻게 움직였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나중에 여러 번 돌려보면서 '아 내가 이렇게 했구나' 생각할 정도로 짜릿했다"고 말했다.
코리아컵 결승전 상대가 울산이었기에 더욱 눈길이 쏠렸다. 포항과 울산의 맞대결은 '동해안 더비'로 불리며 열기가 뜨겁다. 오랜 기간 양팀은 주요 길목에서 만나며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그런 와중에 김인성은 양팀에서 각각 뛴 경험이 있다. 현 소속팀은 포항이지만 2016년부터 6시즌 동안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
"포항 입단 초기에는 내가 뛰면 울산 팬분들 사이에서 야유도 나왔다는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나는 울산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포항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단이 라이벌이라고 해서, 내가 지금 포항에서 뛴다고 해서 울산을 싫어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조금은 다른 마음이긴 하지만 나는 두 구단에 대해 모두 좋은 감정이 있다. 다행이 울산 팬분들도 나를 아주 미워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일부 팬 문화에 대한 아쉬움은 숨기지 않았다. 최근 FC 서울 미드필더 기성용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비슷한 이야기를 해 관심이 집중됐다. 김인성은 "가끔 팬들이 경기를 마친 선수단을 붙잡아 놓고 격하게 질타하는 모습이 있다"면서 "팬들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기에 이해는 한다. 하지만 웬만하면 경기 중에 해주셨으면 한다. 아니면 리그 마지막 경기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 경각심을 일깨우려 하시는 것이지만 누구보다 선수들 자신들이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장면들은 결과적으로 팀에게는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이기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남부럽지 않게 우승을 경험한 김인성이다. K리그1, 코리아컵,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등 국내 무대에서 들어 올릴 수 있는 트로피는 모두 차지했다. 그는 "운이 따라줬던 것 같다"면서 "초등학교 때는 우승이 쉬운 줄 알았다. 그때 우리 학교가 대회를 휩쓸었다. 다들 그런 줄 알았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우승 못 한 친구들이 많더라. 프로에서도 잘하는 선수라고 다 우승을 해본 게 아니더라. 이제는 우승의 소중함을 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시즌을 마무리하며 코리아컵 트로피를 들었다. 그는 3년 연속 우승을 바라본다. 지난 연말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마무리됐으나 다시 한 번 포항과 손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신)광훈이 형이 후배들에게 '연봉 모자란 것은 보태줄 테니 포항에 남아서 같이 하자'는 말을 했다는 것을 기사로 봤다. 나에게도 같이 하자는 말은 했지만 연봉 얘기는 없었다(웃음). 2년 연속 우승하면서 선수들과 정말 합이 좋았다. 감사하게도 팀에서 좋은 제의를 주셨고 나도 감독님, 선수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재계약을 했다."
이번 시즌 더 많은 기대를 받는 포항이다. 지난 수년 동안 겨울마다 우려가 뒤따랐다. 좋은 성적의 기반이 됐던 주요 선수들이 국내외로 이적해 나갔던 탓이다. 그럼에도 포항은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왔다. 김인성은 "포항이라는 구단에서 뛰어보니 일단 환경이 좋다. 최신식, 호화로운 시설은 아니더라도 웨이트장이 잘 갖춰져 있다. 훈련하는 운동장도 잘돼 있다"며 "포항만의 분위기도 있다. 선수들이 팀으로서 함께 어울리는 문화라고 해야 할까. 그런 끈끈함이 있다. 또 포항 팬들만의 응원하는 힘이 있는데 선수들에게도 에너지가 확실히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타 구단 근무를 경험한 구단 관계자는 "포항은 잔디 운동장 3개를 가지고 있다. 관리가 편하기에 선수들이 운동하기 좋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다만 올해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김인성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이 대거 재계약을 맺었다. 김인성은 "감독님과도 2년째이기 때문에 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 어떤 포지션에 서서 어떻게 플레이하길 원하시는지 잘 인지하고 있다. 거의 한국인에 가까운 외국인 선수인 완델손도 주장으로 팀을 잘 이끌어준다. 나도 이번 시즌이 기다려진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스피드가 주 무기인 김인성. 여전히 손색없는 신체 능력을 자랑하지만 그도 베테랑 반열에 들어섰다. 어느덧 신광훈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됐다. 그럼에도 이번 전지훈련 기간에도 팀 내 체력 테스트에서 2위에 올랐다는 후문이다. 이에 그는 "정확히 순위는 모른다. 뛰는 운동을 할 때 나보다 선수들이 앞에서 뛰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조를 나눠서 테스트를 했는데 내가 있는 조에서는 맨 앞에서 뛰었다"고 설명했다.
뛰는 것은 자신 있다는 김인성은 "광훈이 형 보면서 버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만 몸 상태 유지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
"축구를 하면서 결과에 대해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과정을 잘 만들어 놓는 데에 집중하려고 한다.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운동은 당연한 부분이고 몸에 안 좋을 수 있는 음식을 참는다든지, 잠을 일찍 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 과정들을 잘 만들어 놓고 게임에 임한다면 결과가 좀 좋지 않더라도 스스로 잘 준비했으니까 후회가 없다."
선수생활 중 후회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김인성이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시기는 있다. 20대 초반 러시아 명문 CSKA 모스크바에서 뛰던 시절이다. 그는 K리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해 당시 실업 리그 소속이던 강릉시청에서 뛰다 테스트를 통해 러시아 무대로 진출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명단에 들어 벤치에 앉아 눈앞에서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등 슈퍼스타들의 플레이를 지켜본 바 있다.
"프로 무대 경험이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러시아에 갔다. 가서 그냥 햄버거로 끼니 때우고 피자 사먹고 하면서 몸 관리를 하나도 안했다. 이상하게 몸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이후 K리그 성남에 입단해서야 몸 관리를 배웠다. 김한윤, 현영민 등 선배들을 지켜보며 도움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카페 가면 케이크 3조각씩 시켜 먹고 그랬다(웃음)."
음주도 경계한다. 그는 "술이 근육에 정말 좋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소주는 마신 기억이 없다. 맥주도 입에 대는 정도다. 내가 타협한 것은 뭔가를 마실 일이 있으면 '제로 탄산음료'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수도승' 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취미 중 하나는 PC 게임이었다. "게임이 운동선수로서 가장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어린 친구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많이 하는데 나는 그건 못 한다(웃음). '스타크래프트'와 축구 게임만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린 친구들은 안하겠지만 30세 전후 연령대까지는 아직 많이들 하는 걸로 안다. 일단 K리그 내에서는 누구와 붙어도 자신 있다. 내가 1위라고 자부한다. 내 주종족은 테란"이라며 웃었다.
선수로서 열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김인성, 그는 "올해라고 특별히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어 "당연히 우승은 정말 하고 싶다. 쉽진 않겠지만 리그 우승도 하고 싶고 코리아컵 3연패도 하고 싶다"고 했다.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는 포항 팬들을 향해서는 "팀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따내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선수들이 힘도 받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올 시즌에도 많은 응원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끝으로 1989년생 뱀띠인 김인성에게 을사년을 맞은 각오를 물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운세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면서도 "다만 '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웃음). 하지만 운도 과정이 좋고 준비한 사람에게 따르는 것 같다. 나에게 운이 온다면 그걸 잘 잡을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서귀포=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