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잠시나마 ‘하얼빈’ ‘소방관’ 제치고 주말 좌석 판매율 1위 기록…바디 호러 ‘서브스턴스’ 흥행 역주행
입소문만으로 흥행 역주행이 일어나는 건 종종 있어 왔지만, 이처럼 일반 관객들의 취향과 동떨어진 작품들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다. 심지어 이 같은 흥행에 힘입어 감독의 내한마저 성사된 상황에 비춰 “한국 관객들이 이제 진정한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로 인정받게 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최근 한국 극장가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흥행 역주행의 주역 가운데 하나는 첫 공개 후 무려 18년 만에 감독판으로 돌아온 ‘더 폴: 디렉터스 컷’이다. 사진='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컷](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16076854796.jpg)
‘더 폴: 디렉터스 컷’은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 분)가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분)에게 전 세계 24개국 비경에서 펼쳐지는 다섯 무법자의 환상적인 모험을 이야기해주는 내용을 그린 판타지 어드벤처 장르의 영화다. 2008년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는 2만 8000여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CG(컴퓨터 그래픽) 처리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영상미가 뒤늦게 입소문을 타면서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 국내 관객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이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2024년 12월 25일 감독판인 ‘더 폴: 디렉터스 컷’의 재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객들의 극장 관람 열망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다만 일부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긴 했어도 재개봉인 데다 예술영화에 가깝다는 장르적 특성상 배급사도, 극장도 큰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독 개봉을 진행했던 CGV는 일부 상영관에서 ‘더 폴: 디렉터스 컷’의 상영 시간을 일반 관객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아침 7시나 오후 10시 이후로 배정하는 등 티켓 판매에도 그다지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어코 매진 행렬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시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좌석 점유율 0.6%에 불과한 상황 속에서도 ‘더 폴: 디렉터스 컷’은 개봉 5일 만에 2만 관객을 넘어서며 비슷한 시기 개봉한 ‘하얼빈’과 ‘소방관’을 제치고 잠시 주말 좌석 판매율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이 직후부터는 실관람객의 평가와 소셜미디어(SNS) 리뷰가 확실한 입소문을 타면서 개봉 3주 차에 5만 돌파, 7주 차에는 누적 관객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재개봉 예술영화’로는 믿기 어려운 흥행 성적을 거뒀다.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의 타셈 싱 감독이 2일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내한 기자감담회에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16223773453.jpg)
2월 6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더 폴: 디렉터스 컷’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타셈 싱 감독은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이렇게 작품이 재조명을 받는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인터넷 덕분에 이 영화가 재발견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저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더 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타셈 싱 감독은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개봉 이후 뒤늦게 입소문이 터졌으나 작품을 다시 볼 방도가 없었던 팬들이 불법 다운로드나 중고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DVD를 구했다는 소식을 2023년에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다시 개봉하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팬들을 위해 이뤄진 재개봉인 데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눈에 띄는 흥행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타셈 싱 감독 역시 한국 팬들에 대해 뜨거운 애정을 전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이 재개봉 영화 흥행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냈다면, 또 다른 마이너 장르 영화의 흥행세도 눈길을 끈다. “최고의 미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호러 고어 영화 ‘서브스턴스’가 그 주인공이다. 왕년의 대스타였으나 나이가 든 지금은 TV 에어로빅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가 서브스턴스란 약물을 이용해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또 다른 자신 수(마거릿 퀄리 분)를 만들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중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바디 호러’(인체 훼손이나 변형 등을 다루는 공포물)이기에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로 꼽히는 이 영화 역시 입소문만으로 40만 명을 바라보는 누적 관객 수를 이끌어내며 흥행 역주행 신화를 완성했다.
![마니아들에게 어필하는 마이너 장르로 꼽히는 '바디 호러' 장르의 영화 '서브스턴스'도 엄청난 입소문을 타고 누적 관객수 40만을 목전에 두고있다. 사진=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6/1738816374230399.jpg)
익명을 원한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매번 나오는 얘기지만, 지금 관객들은 전에 없이 철저하게 ‘이 영화가 내가 낸 티켓 값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를 따지고 있다. 입소문에 영향을 받아도 결국 자신의 만족도를 어느 정도까지 채울 수 있는 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며 “예전엔 애국심으로라도, 혹은 감독이나 배우에 대한 팬심으로라도 작품을 선택하는 관객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한국 영화가 어려우니 그냥 무조건 많이 봐달라’고 호소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무조건 흥행만을 목적으로 한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의 흥행 부진과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라며 “팬데믹 이후 배급사나 제작사, 투자사 등이 수익 증대를 위해 흥행이 어려운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쪽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보여준 결과는 달랐다. 결국 ‘(흥행)될 작품은 된다’는 게 입증된 만큼 향후 배급, 투자 방향에도 조금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