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에밀리아 페레즈’로 수상할지 관심…과거 인종차별적 발언들 소환되며 여론 싸늘
2021년 열린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순간, 스페인 출신의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일갈했다. 한국 배우가 주요 부문인 여우조연상을 차지하고, 흑인 감독인 트라본 프리의 영화 ‘투 디스턴트 스트레인저스’가 단편영화상을 수상하자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담은 글을 SNS에 쓰고 아카데미상을 맹비난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멕시코 갱단의 두목인 주인공이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성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담은 영화다. 주인공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역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배우다. 사진=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홍보 스틸컷](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897324240783.jpg)
주인공을 맡은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역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배우다. 트랜스젠더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만약 수상까지 한다면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하지만 애꿎은 윤여정 등을 지목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으면서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 자신이 성전환 수술을 한 소수자이고 ‘에밀리아 페레즈’ 역시 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그린 작품으로 아카데미상까지 노리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의 가치관은 그에 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는 오는 3월 12일 국내서 개봉하는 가운데 그가 지적한 대상 가운데 한국배우 윤여정이 포함되면서 관객의 반응도 싸늘하다.
#대체 어떤 글을 썼길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SNS를 통해 무슬림과 흑인 등을 비하하는 글을 여러 차례 쓰고 인종차별적인 시각을 자주 드러냈다. 특히 202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당시 “내가 아프리카계 한국 축제를 보고 있는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시위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SNS에 썼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는 2020년 5월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인권 운동을 뜻한다.
흑인 감독이 단편영화상을 받고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상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아프리카계 한국 축제’라고 아카데미상을 비아냥댔다. 당시 시상식에서는 중국 출신의 여성 감독인 클로이 자오가 ‘노매드랜드’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그는 무슬림을 겨냥한 듯 “딸의 학교로 픽업을 갔을 때 머리를 가린 채 치마를 발뒤꿈치까지 내린 여성들이 많다”며 “내년에는 영어 대신 아랍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무슬림의 전통 복장을 한 아랍계 여성들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또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할 당시 공개적으로 중국을 언급하면서 인종 차별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배우 마일리 사이러스가 과거 동성의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한 혐오 발언도 내놨다. 모두 SNS에 쓴 글을 통해 드러낸 시각이다.
이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발언들은 지난해 ‘에밀리아 페레즈’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다가오는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주요 부문 13개 후보에 오르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면서 소환되고 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프랑스 영화라는 한계에도 아카데미상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최다 부문 수상까지 노리고 있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미 트랜스젠더 배우 최초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만큼 수상한다면 역시 최초의 역사를 쓰게 된다. 사진=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인스타그램](https://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5/0207/1738897423480388.jpg)
1992년생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스페인의 배우로 2018년 성전환을 통해 여성이 됐다. 원래 이름은 카를로스 가스콘이었지만 수술 이후 이름도 바꿨다. 이번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실제 그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당국의 수사를 피하려고 성전환 수술을 받은 갱단의 델 몬테 역을 맡은 그는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내와 자녀들을 속이고 성전환을 한 그는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어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만, 정체를 밝힐 수 없어 황당한 일들을 벌인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실제 트랜스젠더인 만큼 자신의 상황을 역할에 녹여냈다. 덕분에 일약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함께 호흡을 맞춘 조 샐다나, 셀레나 고메즈와 더불어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칸 국제영화제가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공동으로 주연상을 수여하는 건 아주 이례적이다.
이를 계기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전 세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과연 아카데미상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미 트랜스젠더 배우 최초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만큼 수상한다면 역시 최초의 역사를 쓰게 된다. 하지만 과거 SNS에 쓴 글들을 통해 드러난 인종차별적인 시각과 혐오의 시선으로 인해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아카데미상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게다가 윤여정을 겨냥한 비난까지 확인되면서 국내의 여론도 냉소적이다.
논란이 확산하자 카를로 소피아 가스콘은 성명을 내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준 글에 대해 사과한다. 소외된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 (혐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며 “제가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소수자로서 모욕과 혐오와 학대의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면서 “저에게는 보호해야 할 딸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런 사과에도 미국 내 여론은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다가오면서 그를 향한 비판은 확산하고 있다. 이에 2일에는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불쾌함을 느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의 사과를 전한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만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스카(아카데미상) 후보에서는 물러설 수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인종차별 발언 논란의 화살은 넷플릭스로도 향하고 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 국가에서는 극장에서 개봉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영미권 국가의 판권을 넷플릭스가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판권 구매 과정에서 주연 배우의 ‘SNS 혐오 글’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은 넷플릭스의 부주의한 태도에도 비난이 쏟아진다.
상황이 심각하게 흐르자 넷플릭스는 미국 내에서 진행하는 ‘에밀리아 페레즈’의 홍보 활동에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참여를 배제하기로 했다. 5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넷플릭스와 가스콘 측은 소통을 중단했다”며 “넷플릭스가 가스콘의 홍보 활동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가스콘은 아카데미상 참석과 영화 프로모션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윤여정을 포함해 아시안 영화인과 흑인 감독을 타깃 삼은 혐오 발언이 빚은 결과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