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켐바이오, 창사 이래 최대 매출 달성…자금 조달 수요 크지만 대기업 인수 사례 제한적 전망
#오리온 인수한 리가켐바이오 최대 실적
오리온이 5485억 원을 투자해 지난해 3월 인수한 리가켐바이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259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341억 원)보다 269% 증가한 액수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지난해 영업손실 209억 원을 기록했지만 2023년(808억 원) 대비 적자폭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78억 원으로 2019년 이후 5년 만에 흑자전환했다.

오리온은 리가켐바이오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엔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과 김형석 오리온 신규사업팀 전무, 담서원 오리온 경영지원팀 상무가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다만 리가켐바이오 경영진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지난해 1월 리가켐바이오는 ‘오리온 투자배경 설명’ 자료를 통해 “미래 성장을 같이할 전략적 파트너 선정 시 가장 중요한 기준 중 첫 번째 기준이 자율적 경영보장이었다”고 밝혔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다. ADC는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에 고도의 치료 효능을 가진 약물을 부착해, 기존 항암 치료의 미충족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개발된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차세대 ADC플랫폼 기술인 ‘콘쥬올(ConjuALL)’을 보유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최대 실적을 낸 데는 오리온의 자금 지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3년 9월 리가켐바이오는 연간 4~5개 후보물질을 도출해 5년 안에 10~15개 임상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겠다는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 리가켐바이오는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집행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리가켐바이오는 “2~3년 내 기술이전 수익만으로 흑자 달성이 가능한 최초·최고의 바이오텍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용범 삼일 PwC 파트너는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는 ADC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의 리더”라며 “오리온이 인수하면서 리가켐바이오가 연구개발(R&D)에 매진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리가켐바이오는 지분 인수와 기술수출에 따른 선급금을 수령하며 약 7000억 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한 만큼 연구개발에 집중해 신약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종기업 간 결합 활성화 될까?

바이오 사업에 관심이 있던 기업 입장에선 저렴하게 기업을 인수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지난해 시장이 불안정해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펀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바이오 시장도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긴 하나, 자금력이 있는 회사들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에서 바이오 업체들의 몸값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에 제약·바이오 사업에 관심이 있었던 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인수에 나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대기업들도 미래의 시장 동력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나 AI(인공지능) 등은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궤도에 오른 기업을 찾기가 어렵다”라며 “미래에 유망한 분야 중 하나가 바이오 사업이다. 케미컬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있는 화학 업종도 바이오 산업을 영위하기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이 인수할 만한 100억~1000억 원 정도의 딜(거래)은 꾸준히 있겠지만 리가켐바이오 사례처럼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할 만한 바이오 기업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다.
대기업 주도의 M&A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서용범 파트너는 “미국에선 바이오 벤처들이 성장을 위해 나스닥 상장만 생각하지 않는다. M&A 등을 우선순위로 두고 R&D를 진행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바이오 벤처들에 자금이 많이 흘러 들어갔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기술특례상장만 바라보고 성장을 할 수는 없다. 바이오 벤처들이 성장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선 대기업들이 M&A를 할 수 있게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