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통한 지배권 승계 법률적으로 용인한 셈…국내외 투자자의 국내 자본시장 신뢰성 하락 우려
[일요신문] 지난 2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받는 모든 혐의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각종 부정한 거래 혐의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재무제표 허위 작성·공시 혐의 △업무상 배임 혐의 등 검찰이 이 회장에게 적용한 총 19개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검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4년 9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혐의 관련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뒤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유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은 응당히 승복·존중하는 것이 맞지만 양사 합병의 배경이나 목적, 추진 과정, 합병비율 산정, 심지어 계열사인 삼성증권의 리테일(개인금융) 조직을 동원해 주주들의 찬성표를 적극 끌어모았던 행위까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에 물음표가 붙는다. 과연 국내외 투자자들이 이번 판결을 온전히 받아들일지, 국내 자본시장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후진적 지배구조와 거버넌스가 핵심 원인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법률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공고해졌을 것으로 보여 크게 우려된다.
당시 합병의 주된 목적이 양사 간 시너지 등 사업적 필요성보다는 이 회장으로의 지배권 승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될 만했다고 본다. 재판부는 양사 합병의 사업적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그것과 이 회장 지배권 승계 목적 중 무엇이 주된 목적이었는지까지 결론 낼 필요는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는 합병을 통해 지배권 승계를 도모하더라도 사업적 필요성이 인정되면 문제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합병을 통한 지배권 승계를 법률적으로 용인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당시 합병비율이 문제가 된 것은 이 회장 지분이 전혀 없던 구 삼성물산이 상대적으로 주가가 낮게 평가된 것이 핵심이다. 재판부는 관련 법령을 근거로 실제 주가를 기초로 산정된 합병비율이 의도적으로 조작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주요 증권사 분석보고서 작성·발표에 상당한 압력이 있었던 점, 구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외압 끝에 합병에 찬성한 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손해를 인정한 국제중재기구 판정 결과 등을 토대로 당시 합병비율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었다고 본다.
삼성그룹 깃발. 사진=최준필 기자물론 형사적 접근에서 주가와 합병비율 조작이 이뤄졌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장부상 가치 규모가 훨씬 작았던 제일모직의 사업전망·예측이 당시 충분한 입증 없이 지나치게 강조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증권사 보고서나 국민연금의 검토 과정 개입 등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부적절한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처벌 여부와 별개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부당 행위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검사 시절 해당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재판부를 충분히 설득할 만큼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관련법의 입법적 개선의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입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고 삼성물산 합병 건이 법이 부족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입법 미비로만 책임을 돌린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다. 삼성물산 합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과거의 사건’이 되겠지만 계속될 상고심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