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율 1%도 안돼 결국 ‘주요 사건’이 문제…“정치적 판단 작용 수사 유무죄보다 기소 여부에 관심”

#수사심의위 들러리 세웠던 이복현
삼성그룹을 겨눈 수사는 시작은 ‘당연’했지만 기소 여부를 판단할 때는 잡음이 상당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승계를 위해 한 청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시작된 분식회계·부당합병 의혹은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건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장)이 수사를 이끌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도 각각 차장검사와 검사장으로 지휘에 관여했다. 기소 때부터 잡음이 생겼다. 잇단 구속영장 기각에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렸고, 위원들은 10 대 3의 의견으로 이 회장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뇌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 회장을 기소했다.

당시 부장검사로 기소를 주장했던 이복현 원장은 2심 무죄 후 “(기소 논리가)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하고 단단히 준비돼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이례적으로 수사 책임자로서 공식 사과했다.
#주요 사건들 잇따라 무죄, 그 배경은?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황운하 의원과 송철호 전 울산시장 사건도 유사한 흐름이었다.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월 9일에는 장하원 전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도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선고됐다. 법조계에서 수사 초기부터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무리한 기소라는 지적이 나왔는데,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물은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이 기소한 사건의 1심 무죄율은 0.91%다. 1심 선고를 받은 피고인 63만 950명 가운데 5740여 명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는 2020년 0.81%에 비해 올라간 것이고, 10년 전인 2014년(0.56%)에 비해서는 1.6배 올라간 수치다.
설명의 여지도 있다. 수사에서 디지털 증거(휴대전화 등)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증거 채택 과정이 더 까다로워졌다. 또 검찰에서 한 진술조서도 증거 채택에서 배제되면서 입증이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기소’를 위해 증거를 짜 맞춰서 기소하는 특수수사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 검사가 ‘무죄’가 나올 수 있는 사건을 무리하게 기소하지 않지만 정치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수사들은 유무죄보다 기소 여부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는 것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른바 특수부 검사들이 잘 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윗선에서 ‘망신주기를 해야만 하는 대상’을 찍어주면 어떻게든 범죄 혐의를 찾아내 기소를 하는 것”이라며 “검찰 조직 내부를 설득해 기소를 하는데 성공하면 ‘잘한 것’이라고 인정받고 다음 인사에서 영전을 하고 기소를 못하면 실패했다고 하며 좌천이 되는데 증거를 만들어서라도 기소를 했던 게 특수부 검사들의 오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형사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검사가 ‘1차 판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무리한 기소나 수사를 자제하고, 필요하면 중재자의 역할도 하려고 한다”며 “정치적으로 위에서 ‘찍어준 수사’는 애초의 목적이 다르다 보니 특수 사건의 무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소 후 무죄가 선고되거나 오류가 발견될 경우 검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무죄가 선고되면 담당 검사가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고인의 변호사 비용을 어느 정도 부담하는 취지로 월급을 감하거나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시스템으로 구축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복현 원장만 해도 무리한 기소를 통해 삼성그룹이 수백억 원의 변호사 비용을 쓰게 만들어 놓고 정작 본인은 장관급인 금융감독원장으로 영전했으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안통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모든 사건이 유죄가 나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무죄가 나면 인사 과정에서 소명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절차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검찰이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의 칼잡이 역할을 내려놓으려면 스스로 무리한 기소를 자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