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기사들 “1월 신설 평가지표에 과로 유발 원인 남아 있어”…물류센터 인력 관련 개선 조항 누락도 지적
클렌징 조항은 쿠팡이 정한 배송 처리 물량 기준치를 배송 영업점이 충족하지 못할 경우 계약한 배송 구역을 거둬들이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요건을 말한다. 일선 영업점들이 배송 기사들에게 더 빠른 배송 처리를 압박하는 근본 요인이자 기사 과로사 등 잇단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돼온 조항이다. 쿠팡 사측이나 정치권에선 이 협약 체결로 택배기사들이 처한 과로 압박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장 배송기사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지난 1월 새로 등장한 영업점 평가지표를 거론하며 체감상 배송 압박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번 협약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3조 ‘물류 배송 분야’에는 영업점 배송인력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지원을 확대하고, 영업점 계약서를 국토교통부가 공고하는 표준계약서와 동일하게 구성, 운영상 반드시 필요한 계약 내용은 부속합의서에 반영해 올해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택배 영업점의 즉시 계약해지 요건인 이른바 ‘클렌징 요건(조항)’ 10개 항목 전체를 삭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클렌징 조항 10개 항목은 △월 배송수행률 95% 미만 △고객 불만 접수율 0.5% 이상 △파손율 0.08% 이상 △반품 상품 회수율 90% 미만 △2회전 배송 미수행 2주간 2건 이상 △신선식품 수행률 95% 미만 △휴무일 배송률 70% 미만 △PDD(배송기한) 미준수 비율 0.5% 이상 △전체 프레시백(신선식품 보냉가방) 회수율 95% 미만 △긴급 프레시백 회수율 95% 미만 등이다. 이에 한 가지라도 해당되면 쿠팡은 배송 영업점과 계약을 즉시 해지하거나 배송 구역을 다른 영업점에 배당할 수 있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은 이번 클렌징 조항 삭제 효과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이연주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간사는 “클렌징 조항은 그동안 택배노동자의 과로 및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시민사회 단체에서 이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며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이 이제 드디어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영업점 계약서를) 국토교통부 공고 표준계약서로 작성하기로 했으며 택배노동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생활물류법이 (협약서에) 반영된 점, 클렌징 요건을 삭제하기로 한 점 등에서 이번 상생 협약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작 택배 노동자들 사이에선 협약 이전과 비교해 배송 압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박한 평가가 나온다. 특히 쿠팡로지스틱스가 지난 1월 신설한 서비스수준평가제(SLA)가 또 다른 압박 요소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쿠팡로지스틱스는 택배 영업점 재계약 시점에 △배송 미수행률 △반품 미수행률 △고객 컴플레인(불만) △고객만족지표 등 데이터를 반영해 평가 결과가 저조한 경우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이 가운데 ‘고객만족지표’에 △프레시백 회수율 △신선식품 오전 8시 이전 배송률 △심야 배송시간 미준수 발생 빈도율 등이 들어 있는데 이는 이번에 삭제된 클렌징 조항과 사실상 속성이 겹친다는 주장이다. 강민욱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택배 과로사를 일으킨 배송률 압박이나 프레시백 회수 등의 업무가 SLA 평가 지표에 남아 있다”며 “이렇게 되면 현장은 달라질 수 없다. 과로 유발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협약에선 물류센터 인력들의 과로도를 낮추기 위한 개선 조항이 아예 누락돼 관련 인력들의 불만이 치솟는다. 통상 쿠팡 물류센터는 하루 8시간 근무 시 식사 시간을 포함한 총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물류센터 인력들은 식사 시간을 빼고도 최소 30분의 휴식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요구다. 2020년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 작업 중 사망한 고 장덕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번 협약식에 참석해 “아들이 일했던 물류센터 노동현실에 대한 개선안이 협약서에 안 보인다”며 “30분 휴식시간 보장 등 내용을 추가로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쿠팡 측은 이번 상생협약문 그대로 클렌징 조항은 모두 삭제됐다고 확인했다. 현재 국회 주관 배달플랫폼 사회적대화기구에 참여 중으로, 더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