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 플랜B’ 백3 지속적 실험…텅빈 관중석이 돌아오지 않은 민심 반영

동아시안컵은 FIFA가 정한 A매치 기간에 열리지 않는다. 이에 각 소속팀은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의 선수 차출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 역대 동아시안컵이 그랬듯 유럽, 중동 등지에서 활약하는 자원들 없이 대회에 나섰다. 이에 동아시안컵은 '실험의 장'이 된다. 새로운 전술을 테스트 해보거나 그동안 대표팀 경력이 없는 국내파 자원을 검증한다.
대회 중 취임 1주년을 맞은 홍명보 감독의 의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 운영, 전술 등에서 다소 정적인 행보를 걸어온 그는 이번 대회에서 적극적인 전술 실험에 나섰다. 첫 경기부터 마지막까지 중앙 수비수 3명을 기용하는 백3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좀처럼 백3와는 거리가 멀었던 홍 감독이다. 선수 시절 백3의 가운데 자리에서 활약하며 '영원한 리베로'라는 애칭을 얻었으나 지도자 생활에서는 백4 시스템을 고수해왔다. 연령별 대표팀 시절과 큰 성공을 안긴 2012 런던 올림픽, 최근의 울산 HD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홍 감독 이전의 국가대표팀 기본 수비 시스템 역시 백4였다. 이따금씩 원포인트로 백3를 내놓는 경우는 있었지만 3경기 연속 백3를 가동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홍 감독은 "확실한 플랜A(기존 전술)는 가지고 있다"며 "이번 대회에서 플랜B를 준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선보인 백3 전술은 약 1년 뒤 열리는 월드컵에서 유사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첫선을 보인 대회이기도 했다. 대회 엔트리 26명 중 13명이 A매치 데뷔의 기회를 받았다. 특히 일본을 상대로 출전한 이들이 '가용 자원'으로 간주된다. 이들 가운대 일부는 향후 유럽파가 돌아오는 대표팀에서도 기회를 받을 수 있다. 이전부터 대표팀에 소집되던 이동경, 이태석, 박진섭 등은 더욱 확실한 눈도장을 받은 듯했다. 홍 감독은 "눈여겨본 선수가 많게는 5명 이상"이라는 힌트를 남겼다.

3경기를 치르는 대회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최종전인 일본전이었다. '플랜B 테스트'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나선 홍 감독에게는 마지막 시험대였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래 유일하게 FIFA 랭킹이 더 높은 팀과의 맞대결이기도 했다. 그동안 약체만을 만나오던 홍 감독은 일본을 상대로 부임 이후 첫 패배를 안았다.
대표팀은 전반 10분도 되지 않은 이른 시점, 일본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0-1로 패했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의 테스트는 완성되지 못했다.
홍 감독은 패배한 경기 이후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선수들은 준비한 대로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결과가 아쉽지만 충분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도 같은 맥락에서의 발언을 남겼다.
홍 감독의 말대로 대표팀은 실점 이후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펼치는 듯했다. 후반전에는 몇 차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실제 일본의 기대 득점은 0.17, 한국은 0.67이었다. 슈팅 장면과 공격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 쪽에서 골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기력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들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최근 한일전 중 가장 대등하게 싸우기는 했다. 골키퍼 선방 등 일본에 행운도 따랐다"면서도 "일본이 득점 이후 단단한 수비를 보였고 우리는 공략에 실패했다. 공수 간격이 벌어졌고 중앙을 공략하지 못하는 모습이 많았다. 지고 있는데도 수비 지역에 숫자가 많았는데 상대 선수 사이사이 공간을 공략하는 모습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홈경기 아닌가.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어야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3경기 5골 1실점으로 2승 1패를 기록한 대회 전체를 돌아 보면서 "중국과 홍콩에 무실점으로 승리한 것을 칭찬해야겠지만 아주 큰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고 봐야할 것 같다"면서 "결국 라이벌 관계를 떠나 강팀을 만나는 한일전이 중요했다. 팀의 짜임새, 전술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최종전 패배는 단순한 1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일본을 상대로 패배가 확정된 이후 일부 관중들은 '홍명보 나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만족스럽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반응이었다. 앞서 열린 국내 A매치에서도 감독과 협회장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진 바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이번 대회에서도 이어졌다. 최대 흥행 카드로 간주되는 한일전에서도 경기장 관중석은 절반 정도(1만 8418)만 찼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기장 위치(용인미르스타디움), 궂은 날씨 등을 감안해도 저조한 흥행 성적이었다.
최근 A매치는 이전부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하락세를 보이던 국내 A매치는 2018년 월드컵 독일전 승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을 계기로 반등한 바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까지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예매 사이트가 먹통이 되고 연속 매진을 기록하는 등 경기장은 다시 뜨거워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공백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싱가포르, 팔레스타인 등 약체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도 6만 명 내외의 관중이 경기장을 채웠다. 하지만 2023 아시안컵(2024년 초 개최), 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등을 거치며 열기는 식어갔다. 지난 6월 열린 월드컵 예선 최종전은 서울월드컵경기장(수용인원 약 6만 5000명)에서 열렸음에도 관중이 5만에도 미치지 못했다(4만 1911명). 동아시안컵의 썰렁한 분위기는 이 같은 흐름을 더욱 잘 반영했다.
한일전은 이 같은 분위기를 희석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모든 불신을 날려버릴 수는 없겠으나 일부 부정적인 시선을 걷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의 패배가 나오며 최근 한일전 전적은 3연패가 됐다. 1954년 한일전 A매치가 집계된 이래 한국의 3연패는 역사상 최초다. 홍 감독과 정몽규 회장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안컵을 마친 홍명보호는 지속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다. 미국, 멕시코와 차례로 평가전을 치른다. 이들 모두 국제무대에서 강호로 평가 받는 국가다. 홍 감독 부임 이후 최초로 다른 대륙에서 치르는 경기이기도 하다. '월드컵 본선 모드'로 본격 나설 대표팀의 행보에 눈길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