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광 ‘정신적 지주’ 김채영 9단, 14승 2패 압도…2위 삼척 김은지 ‘개인기’, 5위 평택 3연승 ‘뒷심’ 눈길

#"멤버 교체 안돼" 믿음의 바둑 쾌거
개막 전, 부광약품을 우승 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부광약품은 지난 시즌 똑같은 멤버로 하위권인 7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올해도 오프시즌 동안 전력 보강은 없었다. 다른 경쟁 팀들이 전력의 절반이라 불리는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부광약품은 이마저도 없이 지난 시즌과 동일한 선수단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시즌의 뚜껑이 열리자 부광약품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대반전의 서막은 ‘믿음’에서 시작됐다. 올해 새로 부임한 이상훈 감독은 시즌 전 선수단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주장 김채영 9단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꿨다.
우승을 확정지은 후 이 감독은 “개막 전 선수선발식을 앞두고 주장 김채영 9단이 ‘지난해 멤버 그대로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고민이 많았지만 팀의 중심인 주장의 믿음을 따르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김채영 주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정규리그 우승 소감을 말했다.
주장의 믿음은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김채영 9단은 14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에이스의 품격을 증명하며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그의 굳건한 리더십 아래 신예들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지난 시즌 1승 10패로 부진했던 2지명 이나현 2단은 9승 7패를 기록하며 환골탈태했고, 최서비 2단과 백여정 초단 역시 승부처에서 귀중한 승리를 보태며 팀의 새로운 승리 공식을 만들었다.
‘김채영이 이겨야 승리한다’는 공식을 깨고 팀 전체가 강해진 부광약품은 12승 4패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2016년 이후 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 챔피언결정전에 선착하며 가장 높은 곳에서 도전자들을 기다리게 됐다.

부광약품이 ‘팀의 기적’을 보여줬다면, 다른 팀들은 ‘개인의 투혼’과 ‘막판 뒤집기’로 포스트시즌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여자바둑 랭킹 1위 김은지 9단은 올해도 15승 1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3년 연속 다승왕에 올랐지만, 그동안 팀 성적이 따르지 않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H2 DREAM 삼척을 맨 앞에서 이끈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극적으로 포항 포스코퓨처엠을 제치고 2위를 차지,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팀을 ‘가을 바둑’으로 이끌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도 승리, 팀의 정규리그 2위를 이끈 김은지는 “그동안 여자바둑리그에서 성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번번이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침내 올해 동료들의 도움으로 가을 무대를 밟게 돼 설렌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시즌 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던 평택 브레인시티산단은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시즌 내내 부진하며 4승 9패로 탈락의 벼랑 끝에 몰렸지만, 막판 3연승을 질주하는 놀라운 뒷심을 발휘하며 5위로 포스트시즌 행 막차에 탑승했다.
특히 포항과의 최종전에서 주장 스미레 4단이 상대 에이스 김경은 5단에게 대역전승을 거둔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 승리는 팀의 5위를 결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유력했던 김경은의 다승왕 경쟁에 제동을 거는 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비록 5위로 가까스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평택은 기존 스미레와 김주아 외에 중국 용병 우이밍 6단이 포스트시즌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돼 강력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밖에 김혜민 9단, 김경은 5단, 박태희 3단, 이정은 2단으로 짜인 정규리그 3위 포스코퓨처엠도 전력이 탄탄하다고 평가받고 있고, 정규리그 4위 영천 명품와인도 허서현 5단, 김은선 6단, 김수진 6단, 양쯔쉔 6단(대만)으로 구성된 라인업이 끈끈해서 충분히 우승을 넘볼 만한 전력이다.
포스트시즌은 10월 29일, 영천과 평택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으로 막이 오른다. 정규리그 4위 영천은 1승 또는 1무만 거둬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어드밴티지를 안고 싸운다. 평택은 두 경기 모두 이겨야 한다.
2025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는 9개 팀이 참가해 3판 다승제 18라운드 더블리그로 순위를 가렸다. 이후 상위 5개 팀이 스텝래더 방식의 포스트시즌을 통해 최종 우승 팀을 결정한다. 경기 시간은 시간누적 방식으로, 장고 대국은 각자 40분에 추가시간 20초, 속기 대국은 각자 10분에 추가시간 20초가 주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