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재보선, 유승민 지방선거 도전 유력…나경원 안철수 ‘신중’ 모드 속 ‘쉬어가기’ 관측도

가장 먼저 선택지에 표시를 한 것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다. 한 전 대표는 10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현재 지방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진행자가 ‘보수 논객 조갑제 전 대표가 한 전 대표가 선거판이 열리면 파격적인 곳에 출마해 몸을 던져야 한다는 조언을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저한테만 이렇게 다들 (몸을) 던지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농담이다”라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상황이 바뀔 수 있는데 너무 성급하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는 후속 질문을 받자 다시 분명한 의사를 드러냈다. 그는 “저는 그때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제가 그 생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지방선거 불출마 의사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전 대표의 최근 광폭 행보가 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9월 경남 거제·창원·진주 등 영남권 방문에 이어 10월에는 수도권 민생 투어를 진행했다. 그는 10월 22일부터 약 열흘간 화성·성남·군포·평택 등 경기 남부권에 머물렀다.
한 전 대표가 지방선거보다 재보궐 선거 쪽으로 방향타를 잡은 것은 지역 현안에 몰입해야 하는 지자체장보다는 국회 입성이 차기 도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26년 6·3 지방선거와 함께 열리는 재보궐 선거는 역대 최다였던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의 15석을 넘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10월 말 기준 보궐선거가 확정된 곳은 이재명 대통령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지역구인 충남 아산을 2곳이다.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최대 7곳에서 재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 또 현역 의원들이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로 확정돼 사퇴할 경우 보궐 의석이 8~10석가량 더해질 전망이다. 앞서 2022년 6·1 지방선거 때는 지방선거로 인한 보궐 의석이 7석이었다.
한 전 대표 시선이 서울 여의도를 보고 있다면 보수정당 ‘영원한 잠룡’으로 불리는 유승민 전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도전이 유력하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최상위 지지율이 나온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설이 강하게 나온다. 유 전 의원은 11월 4일 인제대학교에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주제로 하는 강연을 시작으로 정치 보폭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수도권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을 중심으로 ‘수도권 선거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취지의 출마 요청이 유 전 의원에게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 지도부가 유승민 차출론을 흘려듣기 어려운 지점이다. 서울과 경기에서 지방선거 초반 여론전 승기를 잡으면 전국 선거 구도가 유리해질 것이란 판단도 유 전 의원에겐 호재다.
또 다른 잠룡으로 불리는 나경원·안철수 의원은 다가오는 선거에 대해선 일단 신중한 모습이다. 쉬어가는 타이밍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출마만큼이나 쉬는 것도 중요한 결정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경원 안철수 의원의 스탠스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선택을 해냈다. 기업을 나와 정치에 도전한 그는 1996년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 거물 이종찬을 누르고 당선됐다. 기업인으로서 고속도로를 숱하게 만든 그였지만 정치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됐고 의원직을 사퇴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와신상담 끝에 그는 국회가 아닌 지방선거로 방향타를 잡았고 2002년 7월 서울시청에 입성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적지 않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복원을 밀어붙였다. 또한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버스 중앙 전용 차로 도입 등 서울의 대중교통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해 냈다. 그는 전국적 주목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는 정치 2선으로 물러나야 했다. 이 전 총재는 대안 부재론 속에 1998년 8월 전당대회에서 총재 자리로 다시 복귀했지만 원외 총재 자리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이 전 총재는 1999년 6월 3일 치러진 서울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 민주당과 자민련 공동후보였던 김희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선거 전 대부분 여론조사는 이 전 총재의 패를 점쳤다. 더욱이 대선주자로 나갔던 거물이 국회의원 지역구에 출마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 전 총재로선 정치적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선택이었다. 이 전 총재의 승부수는 통했다. 그는 원내 복귀를 통해 당을 재장악했다. 기세를 몰아 이 전 총재는 2000년 4월 총선 때 중진 물갈이로 입지를 다졌고, 그 후 2022년 대선 재도전의 기회를 받아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전 총재처럼 정면돌파형 선택이 언제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잘못된 선택으로 정치권 중심에서 멀어졌다. 2019년 2월 당대표 자리에 오른 황 전 대표는 2020년 2월 7일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상대는 여당의 이낙연 전 국무총리였다.
황 전 대표 선택은 무모한 것이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1위를 달렸던 이낙연 전 총리는 서울 종로 밑바닥을 다지고 있었고, 지지율 격차가 더블 스코어인 상황이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이 전 총리에게 패배하게 되면 대정부 심판 자체가 흔들릴 뿐 아니라 황 전 대표 개인은 대선주자로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황 전 대표는 이 전 총리에 밀려 종로에서 낙선했고 미래통합당으로 이름을 바꾼 보수정당도 여당에 대참패했다. 황 전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했고, 사실상 아직까지도 정치적 재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의 선택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실패했을 때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만큼 정치인의 진로 선택은 힘든 것이고 우리 현대정치사를 봐도 한순간 선택에 따라 누구는 대통령이 되고 누구는 평생 쌓아온 공직 경력마저 무시당하는 힘든 처지로 전락할 수 있는데 지금 국민의힘 잠룡들도 이런 이유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장고에 들어간 국민의힘 잠룡들의 선택지가 나온다고 해도 당내에서 정답으로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한동훈 전 대표의 경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출마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허들을 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한 전 대표 출마를 둘러싼 당내 갈등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거리가 가까운 서정욱 변호사는 10월 27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 “한 전 대표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부산시장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민주당 전재수,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 지역구를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면서 “당원 게시판 논란과 관련해 당원권 정지 1년 이상 징계를 당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출마는 불가능하다”면서 출마 불가론을 내놨다.
당내 친한계로 분류되고 있는 박정하 의원도 이런 기류를 반영하는 말을 했다. 그는 10월2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과연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당 주류가 한 전 대표를 재보선 때 공천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친한계 정성국 의원은 10월 29일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서 한 전 대표에 대한 배제 시도 가능성에 대해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한 전 대표 출마 시 계파 간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집권세력 지지율이 임기 초반인데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독자적 전략 판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당성부터 검증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한동훈 전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이 배신자 프레임에 또다시 갇힐 가능성이 만들어져 정치적 재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