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로맨스→로코→시대극까지 올라운더 배우로 우뚝… “2PM 팬클럽 출신 김민하, 처음엔 안 믿었죠”

11월 30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태풍상사’는 모든 것이 얼어붙은 1997년 IMF를 배경으로, 회사와 가정의 기둥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망하기 직전의 무역회사 사장이 돼버린 초보 상사맨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이준호는 미래보단 현재를 즐기며 살던 그 시절 ‘압구정 날라리’였다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회사 ‘태풍상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강태풍을 연기했다.
“강태풍은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에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웃을 땐 또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죠. 주위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이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은 감정 표현에 숨김이 없구나. 믿어도 되겠다’고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만드는 성격을 가졌다고 해석했어요. 그래야만 지켜봐주시는 시청자 분들도 태풍이를 더 응원해 주실 것 같았고, 태풍상사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강태풍이란 친구를 믿어보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 같았거든요.”

“많은 분들이 태풍이가 화내는 모습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어요(웃음). 문제는 화를 내는 것도 다 같은 분노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강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태풍을 연기하게 된 순간부터 머릿속 계산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힘을 빼고 바라보니 이 상황에 처해있는 내 자신이 너무 잘 이해되더라고요. 이렇게 계산 없이 그저 감정대로만 갔던 게 실제로도 많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강태풍의 강렬한 감정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역시 ‘빌런’이자 자칭 ‘강태풍의 숙명의 라이벌’, 표현준(무진성 분)의 악행을 마주했을 때였다. 유독 강태풍에게 이유 없는 적의를 드러내며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을 사사건건 방해하려 드는 이 악당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표현준의 눈에 강태풍은 그냥 눈엣가시니까 방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빌런이 주인공의 앞길을 막는 식의 반복되는 플롯이 없잖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이런 이유로 ‘당연히 방해할 수 있지’라고 이해했죠(웃음). 저희가 본 시청자 반응 중에는 IMF 당시 많이 힘드셨던 분들, 그리고 지금도 힘드신 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너무 크게 다가오는 것을 걱정하는 게 있었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공분을 살 수 있는 누군가가 서사 안에 확실히 있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논의도 있었고요. 감독님, 작가님과 ‘우리의 빌런은 어떤 인물이 아니라 IMF 그 자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런 것들 안에서 여러 각도를 통해 모든 사람의 감정을 녹여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반복돼서 식상해지는 문제 해결 과정이 이어졌어도 마지막까지 굳건한 시청자 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엔 ‘러브라인’의 덕이 컸다. 초보 상사맨 강태풍과 그의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성실함을 강력한 무기로 갖춘 능력 있는 여성 오미선(김민하 분)이 함께 키워가는 간질간질하면서도 달달한 풋사랑은 많은 시청자들이 주말을 기다리게 만든 ‘태풍상사’의 흥행 1등 공신이었다. 더욱이 김민하는 이준호가 가수로서 속해 있는 그룹 2PM의 팬덤 출신이었다니, 시작부터 이 둘의 케미스트리는 나쁠 수가 없었던 셈이었다.

‘태풍상사’는 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10.3%를 기록하며 이준호의 필모그래피에 또 한 번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 연말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캐셔로’로 슈퍼히어로 판타지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이준호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3’에도 주연으로 새롭게 합류하며 더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예고하고 있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연달아 손에 거머쥐게 된 흥행 주역이라는 책임감이 무겁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무게와 비슷한 양의 ‘여유로움’으로 저울의 맞은편을 채워가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군 복무로 제 20대와 30대가 나뉘어졌어요. 사실 그전에는 악착같이 ‘뭔가 만들어야 해, 이뤄야 해’라는 열망이 가득했다면 복무 이후에는 조금씩 그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으며 갖춰야 하는 미덕 같은 게 아닐까요(웃음). 군 복무를 마치고 했던 작품들이 모두 큰 사랑을 받았고, 제 배우 인생에 있어 앞으로 더 도전할 수 있고 연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됐어요. 그런 기회를 주신 것에 너무나도 감사할 뿐이고요. 내년에도 조금씩 더 여유로워지고, 생각이 유연해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기도, 표현하기도 더 편해질 것 같거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