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연기로 ‘액션 장인’ 다시 입증…“나무 같은 사람으로 박태중 표현하려 했다”

“촬영 마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거예요. ‘내가 이걸 해냈다!’(웃음). 촬영하는 동안 정말 고난도 작업을 했기 때문에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거든요. 이 작품이 유독 긴 촬영이기도 했어요.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1년 넘게 작업했을 거예요. 정말 잘 마쳤고, 잘 버텼고, 잘해냈다고 말하고 싶네요(웃음).”
‘조각도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태중이 어느 날 억울하게 흉악한 범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모든 것이 사건을 설계하는 ‘조각가’이자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인 요한(도경수 분)에 의해 계획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향한 복수를 실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복수극을 표방하고 있다 보니 지창욱은 평범한 일상에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 남자로 변화하는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설명했다.
“태중이는 극 중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이에요. 이런 인물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데, 그 모습을 얼마나 더 처절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목표로 삼고 접근했어요. 시청자들이 태중이에게 이입해야 하니까 그 감정에 잘 공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구현해 내는 게 제 숙제였죠. 감독님과 제일 많이 이야기했던 것도 이 지점이었고요.”

“작가님께선 박태중이란 인물이 나무 같은 사람처럼,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사람’으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억울한 태중이가 정말 통쾌하게 복수하길 원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복수를 하려는 사람인데, 동시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많이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술 감독님과 액션 콘티를 바꿔보기도 하고, 이 장면에서는 칼로 찔러야 하는데 칼을 안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도해 봤어요. 그러다 마지막 장면을 찍고, 태중이가 덤덤하게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보며 그제야 비로소 작가님이 말씀하신 ‘나무 같은 것’이 이런 거였구나 어렴풋이 느끼게 됐죠.”
태중의 삶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트린 요한은 도경수가 선보인 첫 악역 캐릭터라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지창욱 역시 ‘조각도시’의 서사에서 화자인 태중이 바라보는 요한의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강렬한 두 남자가 자아내는 작품 속 케미스트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조화를 이뤄냈지만, 반대로 촬영 내내 그는 이 조화가 잘 살아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도 귀띔했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 둘이 직접 붙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반엔 정말 저희가 만나는 장면이 없었거든요(웃음). 카 체이싱 신에서도 저와 (도)경수가 다 따로 찍어야 했어서 저도 요한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야 했고, 요한이 입장에서도 태중이가 어떤 표정으로 도망가는지 상상하며 연기해야 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우리 너무 안 만나는 거 아냐? 케미가 안 살면 어떡해’ 걱정이 컸죠(웃음). 같은 작품을 하는데 너무 못 보니까 가끔이라도 보면 ‘촬영 잘했어? 요즘 뭐해, 괜찮아? 힘들 텐데…’ 이런 얘기를 나누고(웃음). 그래도 편집과 연출, 캐릭터를 믿고 갔더니 다행히도 화면에서 굉장히 긴장감 있게 잘 표현돼 있더라고요. 경수도 요한이란 인물을 정말 잘 표현해 줬고요.”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항상 “액션 너무 힘들고 별로 안 좋아한다. 다음엔 절대 안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다음 액션을 기다리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말과 행동의 모순(?)이 계속되는 이유는 이처럼 ‘잘해낼 수 있다’는 보증이 곧 배우인 자신에게 큰 장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디딤돌 삼아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업을 만들기 위해 지창욱은 늘 ‘선택적 망각’으로 다음 작품에 임하고 있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웃음). 제가 액션 작품을 매번 하면서,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해요. ‘재미있겠다!’ 하면서 작품을 선택해 놓고 끝나면 ‘나 다신 액션 안 해야지!’ 다짐하고, 몇 년 뒤에 또 까먹고 다시 액션을 선택하죠. 사극도 비슷해요. ‘우씨왕후’에서 제가 전쟁 신 촬영을 마치고 숙소 들어가서 씻는데 갑옷 무게 때문인지 상체가 온통 피멍이더라고요. ‘진짜 사극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해놓고 또 ‘스캔들’ 찍었잖아요(웃음). 아마 몇 년 뒤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거예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또 다시 새로운 제 모습을 찾을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좋거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