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입은 유니폼만 13개…구광모 LG 구단주도 환영 메시지

처음 샌디에이고와 2년 보장 450만 달러에 계약 후 MLB로 향했을 때는 자신이 다양한 마이너리그 팀들을 돌며 정착지 없이,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채 외로운 생활을 반복하게 될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우석은 미국 진출 첫해인 2024년 샌디에이고가 한국에서 ‘서울시리즈’를 치를 때 동행했지만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대신 더블A 샌안토니오에서 뛰다 5월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마이애미로부터 타격왕 출신의 루이스 아라에즈 1명을 받고, 고우석 포함 총 4명을 마이애미 말린스에 내주는 1대4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런데 마이애미는 트리플A에서 활약 중인 고우석을 그해 5월 DFA(Designated for assignment) 처리한다. 고우석을 원하는 팀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고우석은 마이애미 구단의 마이너리그 소속 선수로 남았다.
2024년 7월 마이애미 트리플A 팀인 잭슨빌 점보 슈림프 선수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나이츠와의 경기를 위해 원정 팀 야구장을 찾은 고우석을 현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미국 진출 첫해였고, 첫해부터 트레이드를 경험한 터라 고우석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원정도 많고, 비행기로 이동한다고 해도 빅리그처럼 경기 전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경기 당일 이동이라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수단 버스를 타고 7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원정지로 향했던 경험도 들려줬다. 그는 트레이드로 샌디에이고에서 마이애미로 향한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런 모든 걸 신경 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예 예상을 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고우석은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직후 내슈빌 사운즈(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트리플 A)와의 홈경기에 1-9로 뒤진 8회 등판했는데 그때 구속이 96마일(약 154.4km/h)까지 나와 기대가 컸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레이드 직전까지 좋아지고 있는 걸 느낀 상태라 여기서 조금 더 노력하면 뭔가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선수들 콜업 되는 걸 보면서 나도 조금 더 노력하면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무리해서 훈련을 이어갔다. 눈앞에 무언가 아른거리다 보니 계속 훈련을 더하게 됐고, 피로 누적으로 체력이 떨어졌다. 당시 쉬면서 회복하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훈련으로 극복하려고 애썼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기술적인 부족함이 뒤따랐던 것 같다.”
고우석은 빅리그 콜업에 대한 기대보다 자신이 원하는 구위가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말한다. 휴식과 훈련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고 기술적인 부족함을 채우려고 한국에 있는 코치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훈련을 반복했던 게 체력 난조로 나타나면서 어려움을 안겨줬다고 설명했다.
고우석은 “한국에서는 쫓기는 마음보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여기선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안 하던 걸 많이 하고 자꾸 쫓기는 기분을 느낀다”면서 “새삼 LG에서 잘 관리 받고 야구했던 환경의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한 마디.
“힘든 일도 많지만 내가 해보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는다. 이렇게 야구와 삶에 밸런스를 찾아가는 걸 배우고 있다.”
고우석은 이후 더블A로 강등됐고, 그렇게 2024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고우석은 “이왕이면 기분 좋은 상황이 벌어지길 기대하며 미국에 온 것도 맞지만 각오 없이 여기로 온 게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어렵게만 느껴지진 않는다”면서 “그래도 힘든 점이 있다면 가족이랑 떨어져 지내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때 고우석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다. 혹시 LG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느냐고. 고우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아니고,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돌아가더라도 여기서 뭐라도 하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지금은 (LG로 복귀할) 명분이 없다.”
고우석은 미국 진출의 목표로 삼은 빅리그 마운드에 서려면 구속뿐만 아니라 타자를 조금 더 쉽게 잡아낼 수 있는 구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운드에서 폭발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자가 진단도 내렸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건강하고 꾸준하게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지금은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빅리그 무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2025년 12월 디트로이트와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고우석은 트리플A 팀인 톨리도 머드헨즈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4월 초 더블A 이리 시울브즈로 강등되면서 잠시 방황과 갈등을 반복했다.
이때 LG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마무리 투수 유영찬의 부상으로 마운드에 어려움을 느낀 LG는 차명석 단장을 미국으로 보냈고, 차 단장은 더블A에 있는 고우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고우석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우석은 고민 끝에 차 단장에게 “미국에서 더 풀고 싶은 숙제가 있다”며 정중히 거절 의사를 전했다.
고우석은 더블A에서 숫자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후 한달 만에 트리플A로 재승격됐다. 이후 19경기에서 27⅔이닝 3승 1패 3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2.60의 호성적을 거뒀다. 같은 기간 단 하나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디트로이트는 고우석을 MLB 40인 로스터에 올리지 않았다.
고우석은 7월 1일 이후 옵트아웃의 일종인 ‘양도 조항(assignment clause)’을 행사한 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다. 트레이드 내용에는 ‘이적시 이적하는 구단의 26인 로스터 포함’이라는 조항이 있었고, 이 조항으로 빅리그 도전 3년 만에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고우석은 차 단장이 LG 복귀를 제안했을 때 미국에서 풀고 싶은 숙제가 있다고 말했던 건 빅리그에 대한 꿈과 미련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배웠던 야구가 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실현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배웠던 야구를 어려운 환경에서 해보고 싶었다. 그걸 경험한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감을 안고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지금 할 수 있게 됐다.”
고우석은 빅리그에서 4경기 1홀드 평균자책점 9.00(4이닝 8피안타 2피홈런 4실점)을 기록한 뒤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이후 미네소타로부터 DFA 통보를 받았고, 웨이버 공시 기간 그를 원하는 다른 구단이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DFA가 된 고우석은 미네소타 구단의 계약 이관을 거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고우석은 마이너리그 잔류 대신 FA를 선언했고, 마침내 LG 복귀를 결정한다.
9월 1일 한국에 도착한 고우석은 3일 LG 선수단에 합류했다. 시즌 도중 합류한 만큼 연봉은 5억 원에서 잔여 시즌 3개월분인 1억 5000만 원으로 의견을 모았다. 단 고우석은 KBO리그 규약상 포스트시즌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는 7월 31일까지 선수 등록을 마쳐야 했기에 올 시즌 정규시즌 외에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오를 수가 없다.
올 시즌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LG는 고우석의 합류에 큰 힘을 얻었다. 3위인 LG는 2위 삼성과는 4.5경기 차, 4위 KIA와는 2.5경기 차다(9월 4일 오전 현재). 장현식, 김진성 등 핵심 불펜 자원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태라 염경엽 감독으로선 고우석의 복귀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기만 하다. 실제로 염 감독은 현장을 찾은 취재진들과의 인터뷰에서 “(고)우석이가 오는 건 나한테 엄청 큰 도움이 된다”면서 “중간 투수들 기복이 심한데 우석이가 들어오면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커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고우석의 복귀를 반기는 이는 또 있었다. 바로 LG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구 회장은 구단을 통해 고우석에게 “미국에서의 용기 있는 도전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로 환영 인사를 전했다.
시즌 막판 플러스 요소, 고우석 활용 방안
LG 염경엽 감독은 고우석을 2이닝 정도 던지는 불펜 승리조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9월 3일 두산전에 등판할 수도 있었지만 시차 적응 등 컨디션 회복 차원에서 고우석의 등판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고우석의 복귀로 관심을 모은 선수가 있다. 현재 LG 마무리로 활약 중인 손주영이다. 염 감독은 고우석이 복귀해도 최소 올 시즌까지는 손주영에게 마무리를 맡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재우 해설위원은 조금 다른 시각을 전했다.
“지금 당장은 고우석을 마무리로 세우기는 어렵지만 정규시즌 마칠 때까지 고우석을 필승조로 올리고, 손주영을 마무리로 고집하는 건 LG의 현실에서 사치가 아닐까 싶다.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LG로선 선발 투수 한 명이 절실한 상황이고, 그렇다면 손주영을 다시 선발로 돌려야 한다. 손주영을 선발로 보내려 한다면 투구 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 LG가 KT나 삼성에 비해 선발 자원이 두텁지 않다. 아무리 마무리 투수가 중요하다고 해도 선발이 잘 버텨야 마무리가 나올 수 있다. LG가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선발 자원을 재정립하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본다.”
미국 무대 진출 후 스플리터 추가와 멀티 이닝 소화 능력까지 장착한 고우석에게 KBO리그의 ABS는 어떻게 다가올까. 고우석은 ABS가 도입된 2024년 샌디에이고와 계약해 KBO리그의 ABS가 이번이 처음이다. 송재우 위원은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전까지 볼로 판정됐던 고우석의 하이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게 됐고, 한두 경기 던지다 보면 바로 적응할 수 있는 터라 고우석이 미국 진출 이전보다 더 나은 성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다양한 팀들을 거치며 야구에 대한 배움과 깊이를 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고우석이 LG 마운드에서 그걸 어떻게 펼쳐 놓을지 정말 궁금해진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