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투자 작품이 경매 등장, 사기 전력자에 거액 대출 논란도…P2P 업체 “필요한 심사 거쳤다”

서정아트센터에 있던 미술품이 경매에 출품된 과정은 복잡했다. 서정아트센터는 자금이 바닥나자 미술품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미술품 투자자들에게 대출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대부업체에도 담보로 맡기는 미술품이 조각 투자를 받았다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이후 서정아트센터는 대부업체에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 그러자 대부업체는 담보로 잡은 미술품 소유권을 가져간 뒤 경매 시장에 내놓았다.
서정아트센터 이대희 대표는 아트테크를 빌미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편취한 점이 인정돼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8년을 선고 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 판결문에서 미술품 담보 대출은 이 대표 범죄사실 주요 내용으로 적시됐다. 1심 재판부는 “서정아트센터는 이미 투자자들에게 판매된 미술품을 대부업체 담보로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최근 미술 시장에서 사기꾼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미술품을 담보로 대출받으며 ‘자금 돌려막기’를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기를 당한 뒤 미술품을 찾기 더 어려워졌다. 일단 담보로 넘어간 미술품의 행방을 찾기 힘들다. 미술품 소재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겪게 된다. 담보를 가진 대부업체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술품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소유권 변경 이력이 기록된 공적 장부가 없다는 점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술품 유통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진전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미술품 투자 진입장벽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점차 낮아졌다. 이에 따라 미술품 관련 분쟁 양상은 다변화했다.
최근 11억 원 상당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A 씨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업체 B 사와 갈등을 겪고 있다. A 씨는 자신의 미술품이 어딨는지 찾아다닌 끝에 B 사에 담보로 잡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A 씨는 미술품을 돌려달라고 B 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B 사는 미술품을 담보로 맡긴 차입자에게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난색을 표했다. B 사는 자신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금을 모아 차입자에게 빌려주는 서비스다. P2P 업체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가 2020년 8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이 시행되면서 제도권에 편입됐다. P2P 업체를 운영하려면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하고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A 씨 미술품이 P2P 업체 B 사로 향한 전말은 이랬다. A 씨는 충남 천안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C 씨에게 미술품 3점을 매도하는 계약을 지난 6~7월 맺었다. 매매대금은 5개월간 분할납부 받기로 했다. A 씨는 C 씨 요청에 따라 매매대금을 완납받기 전 미술품을 먼저 넘겨줬다. 소유권을 넘긴 건 아니었다. 소유권은 매매대금 완납 후 이전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다.
C 씨는 미술품 3점 매매대금 약 11억 원 중 1차 대금 2억 원가량을 입금한 뒤 2차 대금 지급을 계속 미뤘다. A 씨는 C 씨에게 미술품 소재를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A 씨는 C 씨가 운영하는 천안 갤러리에도 찾아가 곳곳을 살폈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알고 보니 C 씨는 이미 A 씨로부터 가져간 미술품을 P2P 업체 B 사에 담보로 넘기고 대출을 받은 뒤였다.

B 사에서 C 씨가 가져온 미술품 소유권과 진품 여부를 어떻게 확인했는지도 A 씨는 의심한다. C 씨에게 미술품 소유권을 증빙할 서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A 씨는 C 씨에게 미술품 원본 보증서를 주지 않았다. A 씨가 C 씨에게 전달한 미술품 구매 인보이스(송장)에는 구매자 이름 등 개인정보가 가려져 있었다.
A 씨는 미술품을 되찾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았다. 우선 미술품 소유권이 또 다른 곳에 넘어가지 않도록 B 사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 법원에서 인용 받았다. 그러나 법원 집행관은 지난 9월 17일 가처분을 집행하지 못했다. B 사 수장고로 알려진 곳에서 A 씨 미술품을 찾지 못했다.
A 씨는 B 사 대표에게 전화해 항의했다. 그러자 B 사 대표는 “저희가 갖고 있는 건 맞다”며 “(미술품을) 보관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주소를 공유해도 되는지는 변호사랑 이야기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B 사 대표는 “미술품은 소유권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점유하고 있는 사람을 소유자로 보는 게 있다. 차입자가 ‘(작품을) 어제 샀다’며 본인 것이라고 했다”며 “담보를 정당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A 씨는 B 사 대표를 장물취득 등 혐의로 지난 10월 초 고소했다. A 씨는 고소장에서 “B 사는 단순한 미술품 중개업체나 보관업체가 아니라 채무자와 담보에 관한 정보를 확인해 투자자 자금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금융회사다. B 사는 담보 제공 권한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각 작품을 취득했다. 가처분 결정 집행도 면탈하고 있다”며 “갤러리는 위탁 판매 등을 위해 타인 소유 작품을 점유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소유자 또는 담보 제공 권한자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C 씨는 여러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 사기 행각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C 씨는 사기 등 혐의로 2025년 12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았다. C 씨는 B 사에서 담보 대출을 받을 당시 이미 사기 전과자였던 셈이다. P2P 업체는 차입자의 채무 등 신용 정보를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범죄 경력 확인 의무는 없다.
판결문에 따르면 C 씨는 자신에게 미술품을 구매하면 더 비싸게 팔아서 수익을 내주겠다는 ‘리셀 투자’를 권해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편취했다. C 씨는 현재 A 씨 외에도 또 다른 미술품 거래와 관련해 고소를 여러 건 당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P2P 업체 B 사는 과거 또 다른 사기꾼에게도 미술품 담보 대출을 내준 사실이 확인됐다. 사연은 비슷했다. 미술품 매매 대금을 완납하지 않은 채 16억 원 상당 미술품을 가져간 사기꾼이 B 사에서 담보 대출을 받았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2025년 2월 B 사 측에 미술품 소재를 묻는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B 사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 사건 피의자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 12년을 구형 받았다.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는 아직도 미술품을 찾지 못했다.
B 사는 미술품 담보 대출 과정에 관한 일요신문 질의에 “확인 가능한 사실관계와 관련 자료를 기초로 소유권 및 담보 제공 권한 등을 확인하고 작품의 진위 여부와 가치에 관한 검토·감정 절차 등 필요한 심사를 거쳐 대출 실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미술품은 공적 장부를 통해 소유권 관계를 일률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심사 과정에서 작품 소유권이나 담보 제공에 관한 분쟁 소지를 인지한 경우에는 대출을 실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법률대리인을 통해 답했다.
B 사는 논란이 된 개별 사례에 관한 구체적 질의에 대해선 “특정 개인에 대한 대출 여부, 대출 금액, 담보제공 내역, 개별 계약의 내용 및 심사 과정에서 제출된 자료 등은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므로 개인정보 보호 및 신용정보 보호 등 관계 법령을 고려할 때 제3자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