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생활비 부담 가중, 고율 조세에도 만성 재정적자…강경 치안 대책도 시위대 요구 수용도 해결책 안돼
프랑스에서 학교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으로 번지면서 전국적인 소요 사태로 확산됐다.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대 일부가 상점과 공공건물을 공격하고 차량에 불을 질렀는가 하면, 명품 매장과 슈퍼마켓 등 수천 개 사업장이 약탈을 당하거나 파손됐다. 심지어 리모주에서는 시위대의 방화로 인해 유서 깊은 시청사 건물의 시계탑이 무너지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단순히 폭력적인 청년들의 난동이나 이민자 갈등 문제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교육 기회의 불평등, 가계의 생활비 부담, 경찰의 강경 진압,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만, 정치적 교착 상태가 겹쳐 폭발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평화적인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과 방화와 약탈을 벌인 폭도 집단도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해외 언론들은 프랑스가 현재 직면한 위기는 시민들의 불만을 제도권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시위의 출발점은 지난 9월 말, 파리 북부의 노동자 밀집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들이었다. 학생들은 교사 부족과 낡은 학교 시설,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수업에 항의하며 등교를 거부하는 한편, 학교 출입구를 봉쇄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이로 인해 당시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거나 봉쇄된 학교는 파리 지역에서만 60곳이 넘었다.
시위에 가담한 학생단체들은 시위를 전국 학교로 확대할 것을 촉구했고, 그렇게 파리의 일부 학교에서 시작된 시위는 곧 보르도와 렌, 낭트, 리옹, 릴, 마르세유 등으로 확산됐다. 실제 시위 발생 일주일 만에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전국적인 시위에 동참하면서 규모는 더욱 커졌다. 프랑스 내무부는 10월 6일,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전국에서 25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주최 측 추산은 45만 명이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10월 17일이었다. 학생들의 요구에 공공부문 노동조합, 고물가에 항의하는 일반 시민들, 2018~2019년 노란 조끼 운동을 되살리려는 세력이 합류하면서 시위 규모는 날로 커져갔다. 내무부는 전국 참가자를 약 55만 명으로 집계했지만 노동총동맹(CGT)은 80만 명으로 추산했다.
학생들의 요구는 비교적 구체적이다. 교사를 충분히 배치할 것, 교사가 결근하면 대체 인력을 투입할 것, 낡고 비위생적인 교실을 개선하라는 것 등이다. 또한 학급 규모를 줄이고 지나치게 긴 수업 일정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대입 지원 및 배정 시스템인 빠르꾸르쉽이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파리의 한 학생인 마달레나는 BBC를 통해 “교사들이 몇 주씩 결근해도 대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성토하면서 “지난 폭염 때는 학교 건물 내부가 끓는 듯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생은 오전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수업 때문에 귀가하면 저녁 7시가 되고, 숙제할 시간과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학생들의 이 같은 분노에는 학교 시설만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미래를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도 담겨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통과하는 학생이 매해 늘고 있지만, 모든 학생들이 졸업 후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하지는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 입학 경쟁과 배정 절차에 대한 불신도 청년층의 압박을 키우고 있는 또 한 가지 요소다.
다만 BBC는 프랑스 정부의 교육 부문 지출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결코 적은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BBC가 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의 고등학교 학생 1인당 지출은 유럽연합 평균보다 높다. 프랑스의 교사 부족 문제는 물론 심각하지만 OECD 지표상 다른 나라보다 더 나쁜 수준은 아니며, 프랑스 교사의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즉, 예산 총액만으로는 학교 현장의 인력 배치와 시설 관리, 교육서비스의 질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대된 것은 고물가로 인한 생활비 부담이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위 참가자들은 연료비와 각종 생계비가 오르는 가운데 공공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노동조합은 물가 부담을 낮추고 임금과 연금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롤라(19)라는 학생은 ‘로이터’에 “생활비가 너무 가혹하고 연료 가격도 너무 비싸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이는 이번 시위가 단순히 교육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에 반해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 지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알자지라’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에는 540억 유로(약 80조 원) 규모의 지출 삭감 및 세금 조치가 포함됐다. 공무원 기본급 산정에 쓰이는 급여표를 동결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하지만 이런 정부 방침에 시민들은 공공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출까지 줄이면 교육과 복지의 질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줄여야 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생활비 부담과 공공서비스 요구에도 대응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프랑스가 고율의 조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재정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5.1%에 달했다. 이는 연금과 의료 등 사회보장 지출이 큰 데다 고령화에 따른 비용 증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에너지 위기 대응 지출, 국가부채 이자 부담이 겹친 결과다.
좀 더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이렇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에 따르면 2025년 프랑스 정부 총수입은 약 1조 5616억 유로(약 2300조 원)였던 반면, 지출은 약 1조 7141억 유로(약 2500조 원)로 1525억 유로(약 228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조세 수입은 2025년 GDP의 43.6%로 EU 평균을 웃돌았지만, 공공지출 역시 GDP의 57.2%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부채에 따른 이자 지출 역시 약 647억 유로(약 96조 원)로 전년보다 11.2% 늘었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분열도 프랑스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요소다. 2024년 총선 이후 프랑스 의회는 어느 쪽도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 분열된 상태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정치적 교착 상태로 인해 어떤 정당도 시민들의 불만을 정책 변화로 연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은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와 의회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시위가 언제나 정책적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시위대에 양보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양보하지 않으면 불만이 더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는 거리 시위가 정부 정책을 바꾸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아 온 게 사실이다. 가령 2018~2019년 일어난 노란 조끼 운동은 유류세 인상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 경제적 불평등 문제로 확대됐다. 결국 당시 정부는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약 100억 유로(약 15조 원) 규모의 추가 지출을 승인했다.
이와 관련, 에든버러대 현대사 교수인 에밀 샤발은 ‘알자지라’에 “이번 시위는 노란 조끼 운동 이후 이어진 불만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와 노동자들의 임금 및 복지 요구가 한데 묶여 발생했기에 프랑스 정부에 특히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시위 참가자 전체를 폭력 집단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시위대 가운데 상당수는 평화적으로 가두시위를 벌이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상점과 공공건물을 공격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폭도들은 극히 일부다. 이들이 벌인 폭력 사태로 파리에서는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와 여러 은행, 디올, 셀린느, 라코스테 등 상업 매장이 공격을 받았고, 마르세유에서는 시청사 건물이 낙서로 뒤덮였는가 하면,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매장 등 명품 매장들이 피해를 입었다. 리옹에서는 관광안내소가 불타기도 했다.
폭력에 가담한 집단을 하나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정보기관은 여러 분파를 합친 극좌파 활동가들의 규모를 약 3000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경찰 연구자인 세바스티앙 로셰는 AP를 통해 “정부가 지목한 극좌 급진 활동가들만으로 이번 폭력 사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급진 활동가와 기회주의적 약탈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급진적인 활동가들은 은행이나 맥도날드 매장 등 자본주의와 세계경제의 상징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반면, 약탈자들은 주로 스포츠 의류나 전자제품 매장에서 물건을 훔치는 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르몽드’가 보도한 리옹의 상황도 이런 구분을 뒷받침한다. 실제 경찰은 현장에서 전통적인 시위 참가자, 지속적인 충돌을 목표로 한 조직적인 활동가, 혼란을 틈타 약탈에 나선 폭도 등 서로 다른 세 유형의 집단에 동시 대응해야 한다. 또한 리모주 시장인 기욤 게랭은 시청사에 침입해 불을 지른 이들을 가리켜 “대의를 옹호하는 시위대”가 아닌, 전투를 위해 조직된 사람들에 비유했다. 요컨대 평화적인 시위와 공공건물 방화는 분명히 서로 다른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소요 사태에서 또 다른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프랑스 경찰의 과격하면서도 미숙한 대응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탓에 군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는가 하면, 경찰이 평화적 시위 참가자와 미성년자에게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비판도 동시에 제기됐다.
일례로 ‘르몽드’는 당국이 10월 17일 시위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경찰 배치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에 따라 시위에서 경찰 등 법집행 인력 997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일곱 명은 중상이라고 보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당한 부상도 논란이 됐다. ‘알자지라’가 인용한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15세 학생이 경찰이 던진 충격 수류탄에 손이 절단됐는가 하면, 14세 학생은 근거리에서 발사된 최루탄에 턱이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다. 로셰는 3주간의 시위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섯 명이 손이나 눈을 잃는 등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경찰은 왜 이렇게 강경 대응을 하는 걸까. ‘가디언’은 그 이면에 프랑스 경찰의 역사 및 제도적 배경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경찰제도가 나폴레옹 시대의 중앙집권적 국가와 공화국의 정치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경찰은 국가 권위와 공공질서를 수호하는 강력한 기관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대규모 시위와 도로 봉쇄를 단순히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아닌 국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폭력 가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약속했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정부는 결코 폭력에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랑 뉘네즈 내무장관 역시 치안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정부는 일부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와 집회 제한을 도입했고, 추가 시위가 발생할 시에는 경찰을 지원하기 위해 군 병력까지 투입하는 대규모 보안 작전을 예고했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 정부에게 닥친 과제는 치안을 회복하는 데만 있지 않다. 202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이번 시위는 정치권에 더욱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8~2019년 노란 조끼 운동 당시에는 수십억 유로의 양보책을 내놓아 분노를 누그러뜨렸지만 지금은 의회가 분열돼 있고 재정 여력도 제한돼 있어 같은 방식의 해결책을 내놓기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이번 소요 사태가 마크롱 대통령 임기 말의 정치적 무력감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정부가 강경한 치안 대책만으로 사태를 관리하려 든다면 거리의 분노가 다시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반대로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재정 부담과 정치적 갈등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직면한 위기는 거리의 질서를 회복하는 문제를 넘어 높은 조세 부담을 감수하는 시민들에게 국가가 어떤 공공서비스와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번 소요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기저에 깔린 사회적 불만은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