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자원·군사적 가치 동시 부각, 러·미·유럽 각축…북극과 떨어진 중국도 탐사선 보내는 등 경쟁 가세

일례로 과거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전력이 북극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됐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극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조기경보, 미사일 방어 기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각국의 잠수함과 군용기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해빙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또 한 번 바뀌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군사적으로만 중요했던 북극이 이제는 에너지, 광물, 물류 운송에 유리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바다 위의 지름길’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은 대부분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야 했다. 이는 시간이나 거리면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아시아에서 출발해 남쪽의 인도양을 거쳐 홍해와 지중해로 다시 올라가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북극해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향하기에 훨씬 가깝다. 실제 2025년 북극항로를 이용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시범 운항을 했던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는 약 20일 만에 항해를 마쳤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 산하 북극항로 관리 측은 기존의 남쪽 항로를 이용했을 때보다 시간을 절반 가까이 단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두꺼운 얼음을 깨면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쇄빙선이 필요한 데다 높은 보험료, 특수 선박 건조비, 기상과 해빙이라는 변수를 모두 염두에 둬야 한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의 통제도 간과할 수 없는 걸림돌이다. 2025년 북극항로를 따라 운송된 화물량은 총 3702만 톤(t)이었지만, 이 가운데 국제적인 ‘통과 운송’ 즉, 러시아와 북극권을 단순히 통과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국제 화물은 약 320만t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러시아 북극권에서 생산된 석유, 가스, 광물 등 천연자원이었다.
다시 말해 러시아 입장에서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의 대체’이기 전에 자국의 북극 개발을 가능하게 만드는 거대한 물류망이다. 특히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 가운데 약 80%, 석유 매장량 가운데 약 17%가 북극권에 있다는 점은 러시아가 왜 이 지역을 포기할 수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북극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셈법이 다른 나라들과 상이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나 유럽의 선사들이 북극항로를 ‘짧은 지름길’로 바라본다면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자국 북부를 관통하는 ‘국가적 교통망’으로 본다.

북극을 바라보는 미국의 계산법은 조금 다르다. 미국에게 북극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당장 컨테이너선을 얼마나 빨리 유럽으로 보낼 수 있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군사와 안보 문제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통해 북극에 직접 연결돼 있으며, 그린란드에는 미군의 피투픽 우주군 기지가 진출해 있다. 이에 대해 영국 상원도서관 보고서는 이 기지가 미사일 경보와 우주 감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미국 입장에서 그린란드는 북극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섬이라는 지리적 의미를 넘어 북미와 유럽 사이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막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희토류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영국 미들섹스대학의 클라우스 도즈 교수는 미국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배경으로 국가안보와 미사일, 우주방어를 위한 전략적 위치,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자원 등을 함께 거론했다. 또한 중국의 북극권 투자 확대에 대한 견제 역시 미국이 그린란드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어떨까. 사실 유럽의 셈법은 러시아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에게 북극은 더 이상 먼 곳이 아니게 됐다. 러시아가 북극에 대규모 군사시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특히 러시아의 핵전력과 잠수함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극 해상로는 유럽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에너지 문제도 얽혀 있다. 러시아 북극권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와 석유는 단순한 자원을 넘어 러시아의 경제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유럽이 그동안 북극을 러시아와 다르게 ‘평화로운 협력 공간’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유럽이 북극 연구와 환경보호, 원주민 문제 등에 집중하는 동안 러시아는 군사기지, 쇄빙선, 항만 및 에너지 시설을 확대했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러시아의 손을 잡고 들어온 중국은 과학탐사와 경제협력을 빌미로 점차 북극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카트야 베고는 “유럽의 북극권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면서 외부 세력이 들어올 공간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당시 ‘근북극 국가’라는 표현은 서방국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의 주장을 국제사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비난에 물러설 중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 환경, 항로, 경제협력을 앞세워 북극에서의 활동 범위를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중국이 북극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역시 항로다. 해상 운송로를 수에즈 운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중국 입장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북극항로가 안정적으로 상업화된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기존 항로에 하나의 선택지를 더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빙상 실크로드’라는 개념을 내세운 배경도 여기에 있다. 바로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북극항로가 만나는 지점을 일컫는 개념으로, 이는 두 나라 모두에게 윈윈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라는 막대한 투자자가 필요하고, 중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가진 북극항로와 에너지, 광물자원, 항만, 쇄빙 인프라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극 진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1996년 국제북극과학위원회에 가입한 후 1999년 첫 북극 탐사를 실시했으며, 2004년에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뉘올레순에 황하연구기지를 세웠다. 그리고 2013년에는 북극이사회 옵저버 지위를 얻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중국의 진짜 속셈이 어쩌면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실제 처음에는 과학연구와 환경 관측을 목적으로 북극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깔은 점점 군사 전략 쪽으로 바뀌어갔다. 현대의 해양과학 기술이 군사력과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기에 어쩌면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 해군대학 중국해양연구소의 앤드루 S. 에릭슨 교수 등이 지적한 문제도 바로 이런 ‘이중 용도’ 가능성에 있다. 과학탐사선이 곧 군용 선박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오늘날 해저지도, 해양관측, 통신, 수중환경 데이터가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마일스 위는 중국의 이런 북극 활동을 ‘철저히 기획된 캠페인’이라고 표현했다. 서둘러 영토를 확보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연구, 국제기구 참여, 경제협력, 항로 개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전 세계가 북극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단순히 얼음이 녹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에게 북극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영토이자 경제개발의 마지막 방어선이며, 중국에게는 유럽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자 에너지와 광물,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투자처다. 미국에게는 본토를 방어하는 북쪽의 전초기지이자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전략적 공간이고, 유럽에게는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북쪽의 안보 문제가 현실이 된 곳이다.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춥고 척박했던 곳이 머지않아 가장 뜨거운 경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