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관리비 연간 700억…F1 경주장 골칫덩이…새만금공항도 예산낭비 우려
4대강 이포보 전경. 4대강 사업은 대표적인 예타 면제 실패사례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도 무분별한 예타 면제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대강 조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호 서울대 교수는 “(예타 면제로 만든) 4대강을 비판해놓고 문재인 정부에서 예타 면제를 실시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며 위원장직 사퇴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예타는 재정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의 경제성을 미리 검토하는 제도다. 지방은 경제성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때문에 과거 정권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일부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를 해줬다.
예타 면제가 무조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과거 예타 면제로 진행된 사업 중 현재 해당 지자체에 재정적 부담만 주는 천덕꾸러기로 변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타 면제 시설들의 현주소를 직접 살펴봤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4대강은 대표적인 예타 면제 사업 중 하나다. 4대강 사업의 홍수 및 가뭄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함께 조성된 수변공원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에서도 예산낭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진행하면서 3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전국 357곳에 수변공원을 만들었다. 국토부가 지난 2014년 전국 수변공원 이용 실태를 조사해봤더니 이용률이 기준 이하인 공원이 30%나 됐다. 1년 동안 단 1명도 찾지 않은 것으로 집계된 수변공원도 두 군데나 있었다. 수변공원 관리비로 들어가는 돈은 연간 국비만 400억 원에 지자체 비용도 300억 원에 달한다.
자갈이 가득한 4대강 수변공원 축구경기장.
경기 여주시에 위치한 이포보 수변공원을 찾아가봤다. 이포보는 그나마 수도권에 위치해 자전거 동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럼에도 곳곳에 시설이 방치되어 있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야구장과 축구장도 있었지만 운동장 바닥엔 자갈이 가득했다.
이포보 전망대 안내데스크는 텅 비어 있었다. 다리 건너 위치한 이포보 홍보관도 마찬가지였다. 안내 화면은 꺼져 있고 적막감만 감돌았다.
여주시에만 수변공원 14개 지구가 조성되어 있다. 수변공원이 조성된 첫해에는 정부에서 여주시에 관리비용으로 23억 원가량이 지원됐지만 지원금은 매년 줄어들었다. 지난해에는 6억 원이 지원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전남 영암 F1(포뮬러원) 경주장도 대표적인 예타 면제 실패사례다. 전남도는 정부와 국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예타 면제를 받고 2010년 F1 경주장을 만들었다. 축복이 될 줄 알았던 F1 경주장은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잡초가 무성한 전남 영암 F1 경주장.
당초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차례 대회를 여는 것이 목표였지만 4차례만 열고 흥행 부진으로 후반 3차례는 포기했다. 전남도는 경주장 건설비, 대회 운영비, 개최권료 등으로 8700억 원가량을 썼지만 결국 1900억 원이 넘는 적자만 기록했다. 대회 중단 뒤 2016년까지 경주장 운영수익은 고작 18억 6000만 원에 그쳤다. 전남도는 누적적자를 해소할 방안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평일 낮 찾은 영암 F1 경주장 주변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전남도는 조금이라도 운영수익을 내기 위해 경주장 주변에서 오토캠핑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객은 없었다. 경주장 출입구는 닫혀 있었고 관중석으로 들어가는 계단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1조 원가량 투입해 지은 경주장은 서서히 낡아가고 있었다.
전남도는 경주장을 임대로 운영하며 조금씩 수익을 내고 있지만 누적적자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편 이번 예타 면제 대상에는 새만금국제공항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새만금국제공항 건립 예정지에서 1시간 거리에 무안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이다. 무안공항은 이용객이 적어 유령공항으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 또 공항을 만드는 것은 예산낭비라는 지적이다.
무안공항은 예타 면제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지만 방문해봤다. 공항으로 진입하자 유령공항으로 불리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텅빈 무안국제공항 내부.
진입로에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실수로 정반대 차선으로 진입했는데 오가는 차량이 없어 4~5차로 도로를 한 번에 가로질러 주차장에 들어섰다. 공항 내 신호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아 신호등을 운영하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한국공항공사의 2017년 말 기준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무안공항은 158억 원 손실을 기록해 전국 공항 중 적자 규모가 가장 컸다. 무안공항은 연간 519만 명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지었는데 지난해 실제 이용객은 38만 명에 그쳤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지방공항 이용시 72시간 무비자 입국 허용 등 지원 정책을 펼친 결과로 늘어난 숫자다.
무안공항 관계자는 “지금 공항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이용객이 저조하다. 근처에 또 공항을 만든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면서 “최근 들어 이용객이 늘어나는 추세였는데 아무래도 (이용객 감소 등) 영향이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2년 만에 예타 면제 사업 금액이 총 53조 6927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미 박근혜 정부 5년간 사용한 금액을 훨씬 뛰어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타 사업 관련 주무 부서인 기획재정부(기재부) 내에서도 뒷말이 흘러나온다. 이번 예타 면제 사업 선정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불만이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나중에 뒷감당은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괜히 우리가 짐을 떠안을까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재부 일각에선 지나치게 청와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린다. 현 정권 내내 끊이지 않았던 ‘기재부 패싱’의 연장선상이라는 얘기다.
한 기재부 간부는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 선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용이 계속 수정돼 막판엔 누더기 같은 보고서가 올라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런 식의 사업 보고서는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재부 직원 역시 “실무진들 사이에선 ‘어차피 정해진 거 괜히 토 달아봤자 미운털만 박힌다’라는 얘기가 퍼져 있다. 그러니 최소한의 사업 적격성을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었겠느냐”라고 전했다. 파격적인 예타 면제가 당장은 달콤하겠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