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파크] 투타 불균형에 눈물 흘리는 투수들…불운의 아이콘 ‘크라이’ 열전
불운의 아이콘 ‘크라이’ 별명의 원조 봉중근 해설위원의 선수시절. 이영무 기자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크라이’는 잘 던지고도 승리를 얻지 못하거나 패전을 떠안는 투수들에게 주로 붙여지는 별명이다. 평균자책점이나 탈삼진과는 달리, 승리는 반드시 타선과 수비의 지원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기록이다. 제아무리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와도 타선이 점수를 뽑지 않으면 승리투수가 될 수 없다. 주로 약팀의 에이스에게 따라 오는 불운이지만, 강팀선발진에 몸 담고도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는 투수들도 적지 않다.
#200이닝 던지고도 10승 못한 ‘켈크라이’
이 별명을 최초로 얻었던 인물은 봉중근 KBS N 해설위원이다. 그가 LG에서 선발 투수로 뛰던 2008시즌, 호투하고 마운드를 내려간 뒤 불펜 투수들의 난조로 경기가 뒤집어지는 일이 잦아서다. 평균자책점 2.66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도 두 자릿수를 간신히 넘긴 11승을 올렸고, 패전은 8차례나 떠안았다. LG팬들은 그런 봉 위원에게 ‘봉크라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안타까워했다.
그 후 한동안 잊혀졌던 ‘크라이’라는 수식어는 2015년 SK 외국인 투수 메릴 켈리의 등장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켈리는 입단 직후부터 모범 외국인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등판할 때마다 큰 기복 없이 호투를 이어갔다. 하지만 켈리가 잘 던지는 날엔 유독 타선이 침묵했다. 30경기에서 181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하고도 성적은 11승 10패. 서서히 SK팬들은 ‘켈크라이’라는 애칭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켈리가 재계약에 성공한 2016년에는 더 심했다. 31경기에 나서 무려 200⅓이닝(리그 2위)를 소화하고 평균자책점 3.68(리그 4위)을 올렸지만, 10승조차 채우지 못한 채 9승 8패로 물러나야 했다. KBO 리그 역대 세 번째로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도 10승을 올리지 못한 투수로 기록됐다. 1983년 최동원(롯데)와 1989년 김청수(롯데) 이후 17년 만에 탄생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동시에 ‘켈크라이’라는 별명은 켈리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확실히 굳어졌다. 서서히 승운이 따르지 않는 다른 팀 투수들에게도 ‘크라이’라는 수식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다.
다행히 켈리는 SK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2017년에 마침내 투타 엇박자의 늪에서 벗어났다. 팀 타선이 ‘홈런 군단’으로 폭발하면서 켈리도 함께 힘을 얻었고, 탈삼진 타이틀(189개)까지 가져갔다. 무엇보다 KBO 리그 진출 이후 최다인 16승(전체 3위)을 올리는 감격을 맛봤다.
그렇게 불운을 훌훌 털어버린 켈리는 지난 시즌 SK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4년을 함께한 뒤 올해 메이저리그 애리조나로 떠났다. 이어 4월 2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 등판 꿈을 이뤘고, 타선의 대량 득점 지원 속에 데뷔전 승리투수가 되는 감격도 맛봤다. 더 이상 ‘켈크라이’는 없다.
#‘윌크라이’ 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KBO 리그에는 ‘켈크라이’의 배턴을 이어받은 선수가 등장했다. LG 외국인 에이스 타일러 윌슨이다. 2018년 처음으로 LG 유니폼은 윌슨은 시즌 초반부터 ‘켈크라이’의 강력한 후계자로 떠올랐다. 등판하는 날마다 타선이 유독 침묵하거나, 득점 지원이 따른 날에는 불펜이 난조를 보여 승리가 날아가는 상황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서서히 ‘윌슨’이라는 진짜 이름보다 ‘윌크라이’라는 별명이 기사 제목에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윌슨 역시 26경기에서 170이닝(전체 3위)을 던져 평균자책점 3.07(전체 2위)을 기록하고도 10승 고지를 밟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9승 4패.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퀄리티스타트 20회를 해내고도 두 자릿수 승리조차 따내지 못한 셈이다. 지난 시즌 함께 선발로 뛴 차우찬과 임찬규는 윌슨보다 2~3점 가량 높은 평균자책점을 올리고도 각각 11승과 12승을 가져간 터라 더 안타까움을 샀다.
올해도 ‘윌크라이’의 기운은 이어지는 모양새다. 출발은 지난해와 다른 듯했다. 시즌 개막전이던 3월 23일 KIA전에 선발투수로 나서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득점 지원은 여전히 2점밖에 받지 못했지만, 불펜이 2점 리드를 굳건하게 지켜 시즌 첫 등판에서 첫 승리를 따내는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올 시즌 첫 다섯 경기에서 따낸 승리가 단 2승뿐. 개막전 승리 이후 4경기에서 1승만 추가했다는 의미다.
윌슨이 역대급 스타트를 이어갔기에 더 아쉬운 결과다. 5경기에서 32⅓이닝을 던지면서 자책점은 단 1점. 평균자책점이 0.26밖에 되지 않았다. 역대 KBO 리그 선발 투수 개막 5경기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수치였다. 38년 역사에서 개막 5경기 평균자책점이 0점대에 머문 투수도 윌슨을 포함해 2006년 다니엘리오스(당시 두산), 2007년 장원삼(LG·당시 삼성), 2016년 앤디 밴 헤켄(당시 넥센)까지 단 네 명이 전부다. 정상급 외국인 투수를 보유하고 있는 LG로선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결과다.
다행히 윌슨은 시즌 여섯 번째 등판인 4월 21일 키움전에서 6이닝 3실점(2자책점)으로 다시 호투하고 시즌 3승 째를 추가했다. 올 시즌 들어 처음으로 두 경기 연속 승리투수로 기록된 순간이다.
다만 윌슨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가 4월 17일 NC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해 아쉬움을 샀다. LG팬들은 잠시나마 ‘제2의 켈크라이’가 탄생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켈리는 그 다음 등판인 23일 KIA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시즌 5승 째를 올려 걱정을 떨쳐냈다.
윌슨과 켈리 외에도 SK 문승원이 시즌 초반 새로운 ‘크라이’ 후보로 이름을 날렸다. 개막 후 3경기에서 8이닝 1실점-6이닝 무실점-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펼치고도 1패만 떠안았던 탓이다. 하지만 4월 20일 NC전에서 6이닝 4실점을 기록한 뒤 타선 지원 속에 승리 투수가 돼 ‘무승 징크스’를 탈출했다.
한화 정우람은 지난해 구원왕에 오른 최고 마무리 투수지만 팀이 계속 큰 점수 차로 이기거나 자주 패해 세이브 기회를 잡지 못한 케이스다. 개점휴업 상태를 이어가던 정우람은 팀이 21번째 경기를 치른 4월 17일 KT전에서야 시즌 첫 세이브를 신고했다. 당시 세이브 1위 조상우(키움)가 이미 10세이브를 쌓은 시점이었다. 리그에서 가장 든든한 소방수를 자주 볼 수 없는 한화팬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세이브였다.
류현진의 한화시절 야수들은 “어떻게든 이겨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진=일요신문
‘크라이’가 투수 개인의 불운을 상징하는 수식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슴 아픈 별명만은 아니다. ‘승자의 기록’으로 통하는 야구 역사에서 ‘능력 있는 패자’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허락하는 애칭이어서다. 많이 진 팀은 확실히 약하지만, 많이 진 투수가 무조건 약한 투수는 아니다. 많이 지려면 그만큼 많은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KBO 리그 통산 최다승 투수인 송진우 한화 투수코치가 통산 최다패 기록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한 시즌 최다패 투수들 가운데는 소속팀 에이스나 2선발로 활약했던 선수가 많다. 한 시즌 역대 최다패(25패) 기록을 갖고 있는 재일교포 투수 장명부는 1985년 청보에서 팀의 70패 가운데 25패를 떠안았지만, 반대로 팀의 39승 가운데 11승도 함께 만들어냈다. 롯데 전설의 에이스 최동원 역시 1983년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고도 9승 16패에 머물렀다. 하지만 야구팬들은 ‘1983년 16패 투수’가 아닌 ‘1984년 27승 투수’로 최동원을 기억하고 있다. 또 빙그레 이상군은 신인이던 1986년 평균자책점 2.63으로 팀의 2선발 역할을 했지만, 창단 2년 차인 팀 전력이 너무 약해 17패(12승)를 안았다.
이뿐만 아니다. 1995년 한화 구대성과 태평양 정민태는 나란히 14패를 당해 최다패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구대성은 그해 한화 주전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면서 선발투수로도 12경기에 나서 6번을 완투했다. 평균자책점은 3.54. 하지만 성적은 4승 14패 8세이브였다. 내로라 하는 KBO 리그 레전드 투수들도 눈물의 역사를 한두 번씩은 겪었다는 의미다.
2000년 이후 ‘눈물’로 가장 화제가 됐던 선수는 단연 KIA 윤석민이다. 그는 고졸 3년차였던 2007년 처음 풀타임 선발 투수로 뛰면서 3.78이라는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올렸다. 그런데 무려 18패를 안았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된 2000년 이후에는 역대 한 시즌 최다패 기록. 그렇게 많이 지는 동안 승수는 7승에 불과했다.
당시 동료들은 “윤석민이 나가는 날엔 이상하게 경기가 잘 안풀렸다”며 “나중엔 타자들에게도 징크스가 생겨 점수가 잘 나지 않았다”고 회상하곤 했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하위권을 맴돌던 한화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야수들이 “류현진 등판일에는팀 전체에 ‘어떻게든 이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 오히려 공격과 수비 모두 평소보다 더 꼬이곤 했다”고 털어놓은 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든 그렇게 ‘지면서 배운’ 윤석민은 이듬해 14승을 올리면서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고, KIA는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우완 에이스로 활약했다. 데뷔 후 팬들에게 이름 석 자를 알리기는커녕 1승과 1패도 기록하지 못하고 사라져간 투수들을 생각하면, ‘많이 질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귀중한 행운일 터다. 이유 없는 불운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 패배에서 승리의 자양분을 얻는다면,경기를 마치고 흘리는 눈물도 값진 수확이 된다. ‘크라이’라는 애칭으로 그 아쉬움을 보듬는 팬들이 존재한다면 더 그렇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역대 최고의 불운, ‘최소 승리 사이영상’ 디그롬 10승 9패. 승수와 패수만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적이다. 5~6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간신히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한 여느 구단 5선발 투수의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승패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의 최종 기록이다.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 얘기다. 역대 최소 승수(10승)으로 사이영상을 거머쥔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 연합뉴스 디그롬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운이 없는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총 32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서 217이닝을 던지고 탈삼진 269개를 잡아내면서 평균자책점 1.70으로 시즌을 마쳤다. 이닝당 출루 허용은 0.912. 4월 12일(한국시간) 마이애미전에서 유일하게 4자책점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 31경기에서 3자책점 이상을 내준 적이 없다. 4월 16일 워싱턴전부터 9월 26일 애틀랜타전까지 29경기를 연속 3실점 이하로 마치면서 1910년 레슬리 콜(시카고 컵스)이 남긴 종전 단일 시즌 연속 3실점 이하(25경기) 기록을 무려 108년 만에 다시 썼다. 하지만 지독하게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29경기 연속 3실점 이하 기록을 세우는 동안 무려 9패를 쌓아 올렸다. 무실점 경기만 총 아홉 차례 나왔지만, 그 중 승수를 챙긴 경기는 3경기뿐이다. 20경기를 마친 시점의 평균자책점이 1.74였는데, 당시 승수는 겨우 5승에 머물렀다. 10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시즌 첫 20경기를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마치고도 7승을 넘지 못한 투수는 디그롬이 유일하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특히 8월 30일 시카고 컵스 원정경기와 9월 4일 LA 다저스 원정경기에서는 두 경기 연속 디그롬이 적시타를 쳐 팀의 유일한 득점을 만들어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심지어 다저스전 타점은 스스로 패전을 면하게 하는 동점 적시타여서 더 화제가 됐다. 디그롬은 결국 시즌 최종전인 9월 27일 애틀랜타전에서 8이닝 2피안타 무4사구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시즌 열 번째 승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고난의 한 시즌을 보낸 디그롬의사이영상 수상 여부는 오프시즌 메이저리그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디그롬의경쟁자인 맥스슈어저(워싱턴)역시 만만치 않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슈어저는33경기에서 220⅔이닝을 던지면서 18승 7패 평균자책점 2.53에 삼진 300개를 잡았다. 충분히 사이영상에 도전할 만 했다.디그롬이 ‘10승’과 ‘18승’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느냐가 최종 관건이었다. 하지만 사이영상 투표에 참여한 전미야구기자협회 회원들은 ‘다승’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능력에 주목했다. 슈어저보다 8승을 덜한 디그롬은 사이영상 투표에서 1위표 30장 가운데 29장을 받아 만장일치에 가까운 성적으로 수상자가 됐다. 2위표 1장까지 포함해 총점 207점. 슈어저를 압도적인 격차로 눌렀다. 1956년 사이영상이 만들어진 이후 역대 최소 승수 수상자다. 이전까지는 1981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와 2010년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기록한 13승이 가장 적었다. 1년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운에 시달렸던 디그롬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굳건히 마운드를 지킨 끝에 마지막 순간 가장 환하게 웃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메츠와 5년 1억3750만 달러에 연장 계약을 했다. 여기에 2024시즌에는 3250만 달러의 클럽 옵션이 걸려 있어 계약 규모는 최대 6년 1억7000만 달러(약 1900억원)에 달한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