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념’ 언급 범죄 축소 의도…경찰의 ‘성취향’ 해석도 잘못, 감형 여지
지난 18일 오후 검찰로 송치되는 n번방 개설자 문형욱. 사진=연합뉴스
문형욱의 얼굴이 신상공개 결정 후 처음으로 공개됐다. 5월 18일 오후 검찰 송치를 위해 안동경찰서를 나서면서부터다. 그는 미성년자를 포함, 다수의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형욱은 혐의를 대부분 인정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분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성폭행을 지시한 대구 성폭행 피해자 모친에게 직접 피해자의 사진을 보내며 협박한 바 있다. 다만 “범행 목적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잘못된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놓았다. 범행을 통해 받은 상품권이 90만 원이 전부냐는 질문에는 “네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준비된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18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문형욱의 ‘성관념’ 발언에 대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성범죄를 개인의 성적 일탈로 축소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관념’이란 정제된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형욱의 범죄는 잘못된 성관념 탓이 아니라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진 폭행”이라고 말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범행을 통해 얻은 것이 90만 원이 전부였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유도 ‘나는 조주빈과는 달리 이익을 창출 하지도 않았고 조직적이지도 않았다’고 강조한 것”이라며 “재판에서는 수익성과 조직적 범행 여부에 따라 양형이 고려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범죄의 무게와는 별개로 가해자의 반성하는 태도, 범죄로 얻은 수익성, 해당 범죄의 조직적 범행 여부 등에 따라 실제 재판에서는 생각보다 가벼운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경찰의 수사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언론을 통해 경찰이 문형욱의 범죄 동기를 ‘성취향’이라고 설명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경찰이) 그러면 안 된다. 성착취 범죄는 성적 취향으로 치부돼서는 안 될 일인데 경찰이 나서서 ‘성취향이었다’라고 해석하면 추후 재판에서 감형의 여지가 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성취향’이 아닌 ‘성도착’이란 단어를 썼어야 했다. 물론 문형욱의 범죄 동기는 성도착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 가학성 범죄”라고 말했다.
결국 가학성 범죄에 더 무거운 형량을 주는 방향으로 법이 집행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배 프로파일러는 “미국의 경우 재산권 침해보다 폭력 범죄, 특히 상대방을 괴롭힐 목적으로 행하는 가학적 폭력 범죄에 더 큰 처벌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형법에서는 일반적으로 재산권 침해에 따른 형량을 더 높게 주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도 수익을 올렸을 때 가장 큰 처벌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문형욱처럼 돈에 관심이 없는 범죄자였을 경우에는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수사대가 마련되고 ‘n번방 재발방지법’에 따른 성범죄 양형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